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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08. 2019

제주 서부의 풍광이 궁금하다면?_금악오름

하늘을 날고픈 이들의 요람

애초에 이곳을 목적지로 삼지는 않았지만 기억 남는 오름이기에 차를 돌리기가 쉬웠다. 이효리 때문에 나름 유명세를 탄 오름이고 그 이전에 제주 서부에서 가장 도드라진 오름 중 하나인지라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근데 왜 망설여졌을까? 사실 금악 지역의 오름을 안 오려는 이유는 공교롭게도 이 동네의 돈사로 인한 악취가 발길을 붙잡는 경향이 강하다.  그곳에 가면 어떤 상태에서 돈사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금악은 악취와 동일시된다는 점에서 돼지돈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을에 대한 이미지를 무지막지하게 깎아버린 셈이니...돈사 악취는 사실 상상 이상이다.

생이못

자주 마르는 못이어서 생이(새)나 먹을 정도의 물 또는 새들이 많이 모여들어 먹던 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입구에 자리한 생이못과 나무들은 아무리 새들이 먹을 정도의 물이 나온다고 하지만 조금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물이 말라버린 채 푸른색 녹조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힐긋 생이못을 쳐다보고는 제 갈길로 간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한 오름인지라 이미 초입부터 시멘트 포장이 잘 되어있다. 오름을 오르는 편안함은 좋을지 모르겠으나 정상까지 시멘트길을 밟고 오르는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 편이다. 중간중간에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사람과 장비를 싣고 나르는 차들이 계속해서 반복 운행을 하다 보니 오름 탐방객들은 중간중간 길을 비켜주는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르다 보니 흙으로된 사이길이 나온다. 내려올 때는 저리로 내려와야겠다.


벚꽃이 만발하고 이제 지기 시작한다. 핑크빛 꽃과 푸른 잎새가 교차하는 시기다. 하루 이틀 만에 모든 계절의 변화가 다 이루어질 것이다. 화려한 섬의 모든 길들이 벚꽃으로 물든 시간이 서서히 지고 나면  푸르른 신록의 계절이 다가올 것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코앞이다. 그전에 벚꽃과 어울린 풍경이 애틋하다.

미세먼지 때문인가 주변의 풍경이 불투명한 공기 속에서 아스라하다. 나름 멋진 모습이기는 하지만 이 모습은 새벽의 안개로 인한 것이어야지 미세먼지로 인해서야 영 개운치 않다. 아스라한 오름과 그 앞에 심어진 삼나무 숲들이 첩첩히 가려지는 게 묘한 농촌의 풍광을 자아낸다. 마치 남도의 어느 농촌마을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갑자기 지리산 노고단 언저리에서 아래의 농촌 지역을 바라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육지에 가보고픈 모양이다.

새싹도 자신의 생명력을 힘차게 뿜어대고 엊그제까지 차가웠던 공기도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이미 공기가 따뜻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지난주까지 너무나 차가운 기온을 보이던 터라 공기가 차갑지 않은 게 이상하기까지 하다. 4월 중순을 코앞에 두고 이런 느낌을 갖는 것조차 이상하기도 하지만...


정상에 오르니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능선의 곡선이 꽤나 이쁜 오름이다. 다랑쉬나 용눈이처럼 한눈에 능선이 보이고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것이 역시 이름 있는 오름 값을 한다. 가운데 물 웅덩이가 있었을 텐데 가뭄이 심하다 보니 흔적만 남아있다. 아직은 초록의 풀들이 자라지 않은 상태인가 억새의 느낌이 강하다. 웅덩이의 흔적은 마치 헬리곱터 착륙장이라도 되는 듯 원을 그려넣고 있다.


가능하면 곡선이 잡히는 능선을 잡아보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보지만 그 능선이 내 마음처럼 잡히지 않는다. 멀리서 차들이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또 누군가를 태우러 내려가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단의 무리들이 장비를 꺼내 주섬주섬 비행을 준비한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장소라 해서 별도의 장치나 표시가 있을까 했는데 전파탑 옆에서 장비를 펴고는 몇 발자국 옮기니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다. 너무 싱겁게 공중에 떠오르는 모습을 보니 이게 뭐지 싶다. 공중에 떠있으면 좋으려나 아니면 고소공포증 때문에 무서우려나... 예전 같으면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 텐데 그다지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늙었나?

내려가는 길이 호젓한 흙길이어서 다행이다.  오름에 오르고 내려가는 느낌이 이것이다

사람들을 뒤로하고는 한 바퀴 능선을 돌아 아까 샛길로 난 길의 출발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포제단 가는 길이라는 표시판이 서있다. 내려가는 길이 호젓한 흙길이어서 다행이다.  오름에 오르고 내려가는 느낌이 이것이다. 내려가는 도중 오르다 발견한 두릅 생각이 났다. 아차! 두릅이 눈에 보였는데.... 내려오다가 따가기로 생각했었는데 이 길로 내려가면 다시 콘크리트 길로 올라야 할 판이다. 이상한 것은 그 두릅이 길 옆에 서너 그루가 서있었음에도 아무도 따가지 않고 있다. 여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두릅의 존재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비만 한번 내리면 온 제주도 산야가 고사리 열풍으로 몸살을 앓을 시간인데...


내려가는 도중 일단의 나이 든 아줌마 아저씨들이 수풀 속을 헤매고 있다. 벌써 시즌이구나. 모두들 봉지 한가득 고사리를 꺾고 있다. 아직 가뭄이 심해서인가 고사리가 크지 않다. 비만 한번 내리면 온 제주도 산야가 고사리 열풍으로 몸살을 앓을 시간인데... 그 시작을 보았으니 4월 한 달은 외부로 나가는 족족 고사리와의 전쟁을 벌이는 수많은 사람과 차들로 가득할 것이다. 또 길을 잃는 삼촌들 소식도 여지없이 나타날 것이고...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는 산책길이 나쁘지 않다. 날 좋을 때 한번 더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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