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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Dec 21. 2017

어쩌다 만난 세화 바다의 노을

런 노을을 바다와 함께 볼 수 있는 것 흔치 않은 행운이다

철은 지났지만 계절의 순간은 언제나 기억이 강하다.


세화 근처에 살면서 세화 바닷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이어도 좋고 가을은 물론 온 계절의 맛이 있으니 그 행운은 계속된다. 어느 때가 되든 바닷가에 편안하게 서성이는 시간이 되면 가끔 행운의 바다를 만난다.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이야 이쁘지 않을 곳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세화 바다에서 서성이는 느낌은 바다와 오일장 그 옆의 자그마한 세화항에 이르기까지 거칠지 않게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해는 아직 자신의 작열함을 채 태우지 못하고 머뭇머뭇 이승에서의 안타까움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여름이 채 지나기 전 여전히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여행용 트렁크를 끌며 숙소를 찾아 나서는 사람, 삼삼오오 서성이는 여성들, 느지막이 산책을 나온 주민들 등 여러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일요일 저녁 하루 종일 집안에서 서성이다 온몸에 좀이 쑤셔 차를 몰고 바닷가를 찾았다. 이미 시간은 7시가 넘어섰지만 해는 아직 자신의 작열함을 채 태우지 못하고 머뭇머뭇 이승에서의 안타까움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좋은 하늘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는지 길거리와 방파제 위에 계속 모여든다. 관광객들의 '허'자 번호판 차량이 곳곳에 주차한 후 해변가를 서성인다. 나이 든 삼촌 둘이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방파제에 앉아 새들처럼 재잘거리며 해너미의 시간들을 즐기고 있다. 나 역시 불현듯 주택가 옆에 차를 세우고는 몸을 서서히 웜업하고 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찾은 해변인데 순간 관광객 모드로 전환되는 자신을 느낀다. 아직까지 바다에 오면 관광객의 모습이 더 편하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바닷가로 움직인다. 방파 제위로 올라가 5일장과 집들 너머로 펼쳐진 황금빛 노을의 아스라한 하늘을 우러러본다. 여기가 어디인지 순간 헷갈린다. 노을의 멋스러움이 심상치 않다. 어떻게 변해갈 하늘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방파제 위로 계속해서 올라온다. 하늘을 보며 서로 웅성이는 모습도 보인다. 예상보다 빛의 변화가 빨리 일어나는지 카메라로 하늘을 찍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모습을 보고는 지나는 차들 역시 이게 뭐지 싶었는지 차를 세우고 같이 하늘을 바라본다. 휴거라도 일어난 듯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있으니 내 모습도 이상할 일이 없는 상황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찾은 해변인데 순간 관광객 모드로 전환되는 자신을 느낀다. 아직까지 바다에 오면 관광객의 모습이 더 편하다

하늘의 빛은 밝고 투명한 노랑에서 점차 붉은 기운이 거세어 간다. 이윽고 온 흰색이 아닌 자신만의 색으로 그름띠를 물들이고 있다. 황금색인가 아님 오렌지색인가. 자연의 색을 말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 어떤 말로 색의 느낌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윽고 붉은 노을이라는 말이 맞도록 하늘과 바다 그리고 도시를 차례로 물들다. 말은 붉음인데 오렌지에 더 가깝다. 색의 스펙트럼에서 느껴지는 파노라마는 한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바다에 노을빛이 물들었는데 빨간 핏빛이 아니라 정겨운 오렌지색이다. 색의 느낌은 강렬하되 정다운 감정처럼 사람의 마음에 여운을 길게 남긴다.

자연의 색을 말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일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어떤 말로 색의 느낌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먼 곳에서 숨은 우주선에서 광선을 쏘아대는가 짙은 오렌지와 노란색의 변이가 하늘을 가득 채운다. 이런 노을이 있구나. 그냥 붉은 해가 떨어지는 노을은 가끔씩 바라보지만 온 하늘과 바다, 그리고 마을까지 물들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해 질 녘은 경험하기 힘든 순간이다. 행복한 순간이라는 감정이 저절로 생긴다. 괜스레 마음이 들떠 이곳저곳을 걷다 마지막 항구와 맞닿은 방파제에 이르러 같은 풍경을 우러른다.


야간작업용 등을 단 고깃배의 모습과 일몰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보여준다. 지금이야 어떤 모습을 가져다 놓아도 운치가 있는 순간이다. 나 역시 이곳에 있다는 것이 멋진 일이 아닌가.

행복한 순간이라는 감정이 저절로 생긴다. 괜스레 마음이 들떠 이곳저곳을 걷다 마지막 항구와 맞닿은 방파제에 이르러 같은 풍경을 우러른다

시간은 찰나처럼 금세 지나더니 까만 어둠에 묻혀 노을의 기억을 영원히 닫아버리고 말았다. 달도 기다리다 못해 노을이 제 모습을 접기 전 급하게 남쪽 하늘 중천으로 일부이긴 해도 모습을 보인다. 보름달이 아닌 게 다행인가 아니면 아쉬움인가. 달은 노을과의 앙상블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보인 노을이 다시는 오지 않을 내 인생의 또 다른 한순간일 테니 나는 얼마나 노을의 색채처럼 불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아니 안녕한 것 말고 얼마나 정열을 불태우는 하루를 보내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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