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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an 22. 2020

"펭-하!"와 세대공감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어지럽다 못해 무섭기까지하다. 블록체인같은 신기술 용어도 어렵고 밀레니얼세대니 ‘90년대생’이니 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는 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확생’이나 ‘워라벨’의 의미와 생활방식을 이제 겨우 이해하나 싶었는데 ‘인싸’와 TMI같은 말이 앞을 막는다. 이 역시 최신 트렌드가 아닌 철지난 이야기라고 질책도 분명 있을 게다. 


주변 지인의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펭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펭-하!’라고 인사하면 나 역시 모던해질 수 있을까. 내 또래 이상의 세대들은 뭔말인가 싶기도 할게다. 모르거든 찾아보시면 좋고. 

젊은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계속해서 나타나서 사라지고 있지만 펭수라는 캐릭터는 젊은 어른들의 캐릭터를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조차 하다. 펭수는 이미 외교부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권위의 벽을 가볍게 넘어가더니 지상파 방송국은 물론 연말의 각종 시상식에 참석하고 연말 보신각 타종에 서울시장과 함께 참석하는 등 절정의 인기를 구가중이다. 펭귄가면을 쓴 2m크기의 낯선 캐릭터가 진정 스타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고 바둑의 일인자가 됐을 때나 인격형 인공지능이 가족을 대체하거나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서 느끼는 신기함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밀면 똑같이 미세요. 당기면 똑같이 당기세요."

"나이가 중요한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린이고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 거에요."

"눈치챙겨. 그냥 눈치보지 마시고 본인이 원하시는대로 살면 됩니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행복해지는게 중요한 겁니다."

"성공의 기준이 언제부터 밴이었는데? 성공은 부유함으로 따지지 않는다."

자신감. 자신감은 자신한테 있어요. 근데 아직 그거를 발견을 못하신거에요."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고리타분한 격언 대신 즐겁고 흥겨우면서면 자신만만하게 펭수는 이야기하고 그의 말에 20-30대만이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흥분한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는 말을 자주한다. 문익화목사나 김수한 추기경 같은 분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했던 역할이 끊겨버렸다. 대체불가일 뿐 아니라 그 자리자체가 사라져버린 격이다. 


많은 이들은 그 같은 역할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스승이나 선생이 주는 어록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경험과 답답함들을 공감하고 속시원히 이야기해주는 동료 같은 캐릭터를 찾아 호응하고 지지한다. 공교롭게도 그 당사자가 펭귄의 탈을 쓴 캐릭터다.


그 안의 진짜 사람이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 예전 같으면 그 안의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학교와 직업을 가졌다는 등 수많은 이야기가 이어져 갔을테지만 지금은 캐릭터 자체에 이야기가 쌓이면서 새로운 인격체로 삶의 흔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검찰개혁을 말하고 정부여당과 야당을 응징해한다는 구호가 난무한다. 모든 이슈가 사회주도권을 가진 세대의 이야기에 온통 가리워져 있다. 우리사회의 미래를 넘겨줄 세대들이 갖는 관심과 궁금증에는 관심이 적다. 과거를 깨고 신세대가 나오는 일은 참 어려운가보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를 세대는 조만간 ‘공각기동대’의 마지막 멘트처럼 전혀 뜻밖의 선언을 할 날이 곧 올지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사람)이 아니야”(I am not what I(human) was.)


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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