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Mar 12. 2020

홀로되기의 시작1

이제 삼일째다. 무언가 시작하고 작심 3일을 이야기하는데 백수가 되면 매일같이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3일째가 되도록 몸이 움직이질 않고 있다. 아침에 뭉그적 거리는데 마누라로부터 호통이 떨어진다. 뒹글 거리지 말고 운동이라도 다녀오라는 요구다. 


'아무렴 그렇지.'

이런 불호령이 떨어질 줄 예상하고 있었지만 언제가 될는지는 몰랐다. 단지 멀지 않은 시간일 것이라는 점만 막연이 확신하고 있었다.


시간은 째깍째깍 쉼 없이 제 갈길을 가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이 제갈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이제는 때가 되었노라고 결심하고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아직은 혼자 남는 것의 두려움보다는 이전 관성에서 하나씩 벗어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 위치를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 이 무감각의 시간이 이어질는지.


이제 3일을 넘어 한주를 향해 가고 있다. 여전히 명현현상 때문인지 몸이 피곤하기 그지없다. 아침에는 습관성 기상으로 깨고 있지만 일어나야 하는 강박관념이 사념이 되어 남아있을 뿐 굳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스스로 최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머뭇거리는 시간이 늘어간다. 몸과 마음은 딴 세상에서 제각각 서성이고 있을 뿐이다. 


시간으로 따져보면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인데 몸에 각인되어 있는 깊이로 따지면 어느 직장생활이나 젊은 시절의 동일한 길이의 시간 보내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만큼 긴장하면서 살아온 시절이다. 그래서인가 몸이 극도로 약해지기도 했거니와 결국 암이 걸려버린 것이 아닌가 말이다.


시간이 나를 구제하지 못할 바에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사는 삶이 우리의 인생에서 좀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조직을 그만두고 세상에 나가려 보니 세상이 다시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모임이나 관계망에도 나를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하나둘씩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어떤 결과를 예상할 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내팽개쳐놓았던 수많은 관계들과의 씨줄과 날줄을 하나씩 연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강박관념이 생겼다는 것은 역으로 상호 관계의 중요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 사람과 무작정 직장인으로서의 관계 이전에 업무가 됐든 인간관계가 됐든 쌓아놓은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면서 쌓아놓은 관계들이 직장을 나서는 순간 물거품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관계의 결과가 어떻게 종말을 맞이할는지 예상되지만 그 예상을 넘어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좋은 기회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사람과 관계가 여기서 벗어나서 멀어질 것을 잘 안다. 그래도 괴로워하거나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이상의 무엇을 하기 위해 본질을 꿰뚫어야 하는 관계가 아니던가. 대신 조금은 뭔가 가져가면서 쌓아 올릴 수 있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좋기도 하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어두웠던 얼굴의 그늘이 다시 엉망이 되어가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동안 찌든 모습들의 숨겨진 본성이 얼굴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순간적인 악화가 그다지 싫지 않다. 독을 뺀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명현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그 결과가 무엇이든 최후의 모습을 드러내고는 나에게서 멀어질 나쁜 결과일 것임을 믿고 서서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나씩이든 한꺼번에 닥쳐오든 올 일은 오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제주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만들어 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인가 언뜻언뜻 비치는 파란 하늘이 왜 이리 새로운 느낌일까.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리라.


제주에서의 삶이 육지처럼 아득바득한 삶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나도 모르게 영겁의 세월을 살려는 듯 뒷날의 모습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 긴장과 무미건조함이 계속되리라고 믿었다. 착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지만 다시 되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오래 걸렸다. 그래도 이루어진 일이니 기쁜 마음이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내가 내 본질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내일은 무슨 일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게 될까. 연인의 집 앞을 서성이듯 설래이는 마음이야 어찌 표현하리오.


2020년 3월 초

매거진의 이전글 "펭-하!"와 세대공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