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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일본 겉핥기 5_게이샤의 추억과 후시미 이나리

색감과 여우 신으로 환상 속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장소

by 너구리

일본 그중 교토를 대표하는 관광지를 꼽으라면 어디를 꼽을까? 많은 장소가 있지만 후보지중 1,2위를 다투는 장소에는 언제나 후시미 이나리가 포함되어 있다. 교토역에서 나라선을 타고 단 두정거장만에 사람들 대부분은 주저 없이 기자를 내린다. 역을 벗어나는 순간 익히 많은 곳에서 본 이미 익숙해져 버린 주황색 일본 신사의 표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역에서 내려 멀리 갈 일도 없다. 길 바로 앞이 후시미 이나리라니.... 너무 가깝다.

일본의 신사는 언제부터 주황색을 사용하게 됐을까. 갈 때마다 궁금하다


한때의 무리들이 신사안으로 들어가지만 그 앞에서부터 약간의 요염하면서도 제멋대로인 여우 신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일본의 신사가 조금은 무미건조한 느낌이지만 색감의 강인함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본의 신사는 언제부터 주황색을 사용하게 됐을까. 갈 때마다 궁금하다.

입구에는 오래된 사찰에 가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지하수가 사람들을 맞는다. 다만 한국의 지하수와 다른 것은 여기의 바가지는 모두 박을 쪼갠 모양이나 스테인리스 재질이 아니라 대나무로 만든 넓적한 모양에 손잡이를 끼워 넣은 것이고 무엇보다 음수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 음수를 먹으려 입에 가져다 대는 게 익숙한데 절대 마시지 말라고 그림이 붙어있다. 손만 씻으라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을까. 일본의 지하수는 마시기에 적당하지 않은가. 아마도 일본 사람들도 예전에는 마시지 않았을까. 암튼 마음을 정갈히 한다는 기분으로 살짝 손을 씻고는 신사안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보니 관광지 교토의 위상을 실감 나게 한다


사람들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3월 초의 맑은 날씨이기도 하지만 또 오늘이 토요일이니 외국 관광객과 일본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보니 관광지 교토의 위상을 실감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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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신인 이나리 신이 여우 신이라는 설정이 어디서 유래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독특한 설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궁금하다. 일본 전역에 3만 개 정도의 이나리 신사가 있는데 이나리 신사의 본점이 이곳이란다. 특히 정월인 1월 1일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니 오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무언가 복을 기원하러 올 게다.


일본에서는 신의 위계 중에 제일 위에 있다는 정일위에 위치하는 이나리 신은 당연히 오곡의 풍요를 관장하는 농업의 신이다. 이후 농업뿐 아니라 상업. 사업, 가내, 안전, 교통, 예능 향상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나리 신의 사자가 여우인 셈이기에 여우 신사라고 부른다. 그래서인가 나름 여우 신의 모습에서 자태가 나온다. 단순히 들판에 서성이는 여우와는 다른 품격을 심어놓은 것이리라.


나름 여우 신의 모습에서 자태가 나온다. 단순히 들판에 서성이는 여우와는 다른 품격을 심어놓은 것이리라.


이나리 신의 신발이 꽤나 세다고 일본에서는 인정을 받는 때문인지 진짜로 많은 사람들이 구복의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줄을 매달아 종을 울리는 행위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줄을 서있고 그것이 지나면 옆에는 다양한 부적스러운 나무판에 무언가를 비는 내용을 써서 붙인다. 다양한 부적 용품을 파는 매장에는 사람들의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여기서 이를 보다 보면 무언가 나도 소원을 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나름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아니어도 빌 수 있는 곳은 많은데 굳이 일본의 신사에까지 와서 구복할 일은 없는 셈이다. 아무리 관광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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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의 구복 활동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후시미 이나리 탐방이 시작된다. 산전체를 신사의 상징으로 낸 길을 따라 걷는 행렬에 동참하는 일이다. 2006년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에서 게이샤가 되기 전 여배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이 신사에서 촬영했기에 더 유명해진 주황빛 신사 길을 걷는 일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로 일본 게이샤에 대한 영화인데 주인공이 장쯔이와 양자경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암튼 사람들을 따라 길을 나선다. 주황색 나무기둥이 촘촘히 계속해서 이어지며 사람들을 이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걷고 있지만 영화처럼 아무도 없는 시간에 이곳을 걷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안개 낀 시간에 걸으면 그 오묘함이 극에 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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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을 지나고 나니 드디어 주황색 나무터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뛰어가고 싶지만 사람들이 꽉 막혀있는 길이라 그럴 수가 없다. 사람들에 이끌려 걸어가는 순간순간 뒤를 돌아본다. 역시 모든 것이 돈으로 이루어진 기둥이다. 우리나라 사찰에 기와에 글씨를 써서 건물을 올릴 때 돈을 내듯 여기는 봉헌을 하며 돈을 내는 사람들의 이름을 나무에 새겨 이 터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래서 걸어 올라갈 때는 아무런 글자가 보이지 않았지만 걷는 중간 뒤돌아 보면 누가 돈을 냈는지 알 수 있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를 알고 나니 조금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모든 것이 다 돈이라는 사실과 돈의 액수에 크기가 다를 테니...


도대체 이 나무 터널을 어디까지 이어가려는가 안내도를 보니 산 정상까지 이 길을 이어갈 모양이다. 처음에 보였던 새롭고 신선한 기분이 중간을 넘어가면서 모든 패턴이 같아지고 나니 신선함이 조금은 시들해진다. 굳이 산의 정상까지 다녀와야 할 이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패턴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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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쉼터에 사당이 하나 나타난다. 나 같은 심정을 알기 때문인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함인 듯 역시 시들해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구복의 과정을 거치게 하기 위해서 사당이 마련되어 있다. 신관이 직접 나와 무언가 행사를 치르는 중이다. 일본 영화나 만화에서 종종 보던 그 복장 그대로를 입고 제사를 지내는지 무언가 신에 대한 행동을 엿보인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함인 듯 역시 시들해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구복의 과정을 거치게 하기 위해서 사당이 마련되어 있다


그 옆에는 다양한 구복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마련되어 있다. 여우 모양의 나무 펜던트를 만들어 어딘가에 묶어놓던가 사 가지고 가게 하는 것도 있고 믿음을 들어주는 돌인 든 사람들이 돌 앞에서 기도를 하고 돌을 쓰다듬고 돌을 잠시 들었다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나로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될지언정 그 행동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는 생기지 않는다. 사진 찍는 용으로는 더없이 좋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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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길을 가다 지칠 무렵 중간에 내려오는 길로 나선다. 주황색 기둥이 없으니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 이게 자연스러움이지'

너무나 인위적인 기둥에 색깔이 한 가지로 지속되니 마음에 부담이 생겼던 모양이다.

신사의 끝을 내려와서 마지막으로 이나리 신이 다시 한번 도구를 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름 정감이 가는 표정이다. 참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일본인들이 아닐 수 없다. 사물에, 자연에 이토록 뜻밖의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전국적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집요함이 독특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오히려 색깔이 화려하지 않은 이나리 신이 훨씬 정감이 간다. 한국적 정서인가.


신사를 나오니 다양한 먹거리가 자리한다. 일본식 경단에, 타코야키, 아이스크림, 이름을 모를 다양한 먹거리들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나도 일행과 함께 타코야키를 사서 덥석 입에 물어본다. 너무 뜨거워 입안의 껍질이 벗겨지는 느낌이다. 젠장... 타코야키에는 맨날 속는다. 안이 그토록 뜨겁다는 걸 알면서도 왜 매번 잊어버리는 것일까...

사물에, 자연에 이토록 뜻밖의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전국적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집요함이 독특하다는 생각이다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위한 버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부리나케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람들이 줄을 선다. 바닥에도 줄 서라는 표시가 명확하다. 이렇게까지 줄을 서있어야 하는지... 어쩔 수 없이 줄을 서고 버스를 기다린다. 이렇게 줄 서며 살다 줄을 안 서면 이상할 것 같기는 하다... 아프면 어쩌란 말이냐 줄 서지 않고 잠시 앉아서 기다리면 어때서... 하루 종일 버스 타기 위해 줄을 서야 할 듯하다.


재미있고 독특한 경험지임에는 분명한 후시미 이나리... 색도 그렇지만 여우는 오랫동안 생각이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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