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에서 원래의 의도가 망각되는 안쓰러움을 느끼다
금각사를 나와 료안지로 가는 길은 10여 분만 걸으면 되는 거리지만 왠지 걸어가기에는 멀다는 느낌이 든다. 방문지에서 계속 걸으니 버스를 탈 수 있을 때 타보자는 생각이다. 료안지의 입구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료안지까지 도착하는 중간에 리츠메이칸대학이 있다. 이곳이 본교인지 분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알고 있는 분이 이곳의 교수인지라 이름이 낯설지 않고 반갑다.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듯 호젓함이 주변에서 강하게 배어 나온다
료안지는 호젓함이 그대로 묻어있는 곳이다. 입구도 이차선 왕복 도로에 바로 붙어있지만 마치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듯 호젓함이 주변에서 강하게 배어 나온다. 참 좋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젠 스타일의 대명사인 료안지에는 신비롭고 정감 어린 호수가 방문자들을 먼저 맞이한다. 금각사와 마찬가지로 짙고 깊은 초록의 이끼는 사람의 손이 안 닿은 숲 깊은 정령의 느낌마저 감도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 곳은 인공적인 정원의 가장 깔끔함을 자랑하는 젠 스타일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더욱 신경이 쓰인다. 오히려 금각사에 비해 정원은 자연스러움이 편안함과 연결되어 있다. 인공적인 느낌이 섬세하지 않다. 한국적인 느낌에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 정서가 이곳에 더 가깝게 닿아있기에 마음이 오래 머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가 다른 관광객들이 료안지의 정원을 보러 종종걸음으로 지나는 동안 호수의 이곳저곳을 한참 동안 기웃거리게 된다. 편안함이 있는 곳이다. 이끼와 호수와 그 사이의 잡목들도 그렇거니와 호숫가를 기대고 자리를 한 건물 역시 자연을 옥죄여서 만들어놓은 것과는 조금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어쩌면 내 정서가 이곳에 더 가깝게 닿아있기에 마음이 오래 머무는지도 모를 일이다.
호숫가 아닌 연못가를 한참을 기웃거리다 본 건물의 안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일본식 건물이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차분히 앉아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원래의 의도는 어쩌면 관람용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료안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본다. 1450년 선사로 창건되었으나 난으로 소실되어 1499년에 재건된 것으로 나와있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선(zen) 스타일의 돌 정원이다. 통상적으로 정원이라고 하면 돌이나 나무 그리고 물, 풀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 정원에는 15개의 돌과 흰모래가 전부이다. 갈퀴 같은 것으로 모래를 다듬고 무늬를 낸 정원이 전부이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 이 정원의 전부인 셈이다.
누구나 그 돌 정원이 보이는 뒤뜰에 앉아 잠시 잠깐이라도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바라는데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젠 스타일로 유명한 이곳 선사를 다녀갔다는 인증숏이 필요한 것이리라.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차분히 앉아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원래의 의도는 어쩌면 관람용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많은 관광객들이 마루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사이 정작 중요한 선방의 선승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실 관광지로만 이곳을 이용하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템플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정 시간이 지나 마루에서 일어서니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곳에서는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관람자의 마음에 담고 가기를 바라는 방식인데... 원래 선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관광으로 돈도 많이 모이겠지만 차분한 깨달음을 줄 수는 없는 일일까
두리번거리다 삐쭉삐쭉 자리를 벗어나며 나머지 이 선사의 정원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이미 마음이 깊은 모래 사이의 길에 담겨 있으니 다른 자연의 모습이 그다지 눈에 다가오질 않는다. 크지 않은 정원이지만 그것이 주는 인상은 어느 것보다도 강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명불허전이려니...
차분히 깔려 있는 돌길을 걸어 나가며 오늘 오후에는 어떤 것을 보아도 눈에 크게 찰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든다. 화려함보다는 언제나 은은함이 오래가는 법이라. 그 무기를 료안지에서 느끼고 간다. 참 묘한 곳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