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째에 들어선 일본여행은 체력을 점점 지치게 만든다. 평소에는 제대로 걷지도 않다가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니다 보니 저녁에는 피곤이 밀려온다. 시간이 아까워 너무 늦게 일어날 수가 없다. 이제 마지막 날인 셈이다. 고민끝에 몇몇 장소는 어쩔 수 없이 방문을 포기했다. 어차피 관광지 교토를 둘러보기로 한 이상 대표적인 관광지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 금색으로 번쩍이는 금각사가 오늘의 주요 방문지다.
일본의 대도시는 지하철 중심의 도시인데 교토는 옛 도시라 그런가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중심이다
아침 날씨가 영 심상치 않다. 오사카의 경우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영 찌뿌듯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가는 길에 우산 하나와 일회용 우비를 챙겨나간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를 타고 금각사로 떠난다. 이제 교토에서 버스 타는 게 익숙해졌다. 하루 반을 보내고 나니 편리함과 노선도 대충 눈에 익는다.
금방 도착할 듯한 거리인데 30분이나 걸린다. 버스가 천천히 가기도 하지만 도시를 돌아서 가다 보니 꽤나 시간이 걸린다. 일본의 대도시는 지하철 중심의 도시인데 교토는 옛 도시라 그런가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중심이다.
일단의 사람들이 금각사 앞에서 우르르 내린다. 그들을 따라가면 된다. 금각사 앞의 관광지의 포스가 느껴지는 번화함이 있다. 다만 다른 지역에 비해 입구가 약간 넓다. 입장권을 끈고 금각사 앞에 들어서는 길목에 연한 초록의 이끼가 바닥에 잔뜩 깔려있다. 나는 이런 색의 생경한 자연스러움을 매우도 좋아한다.
단지 관광지로서의 화려함은 있을지언정 깨달음으로서의 사찰의 의미가 다가오질 않는다
입구에 들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너른 연못에 이미 알고 있는 금각사 건물이 바로 나타난다.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바로 목적지에 다 달았다. 금박으로 입힌 건물의 색채가 화려하지만 너무 외부적인 이목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에 정감이 가진 않는다. 단지 관광지로서의 화려함은 있을지언정 깨달음으로서의 사찰의 의미가 다가오질 않는다. 그래도 인증숏을 위한 사진 찍기에는 좋은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찍는 포인트가 거의 동일하다. 수많은 사진의 모습이 인물만 다르고 배경이 같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각사라는 이름의 연원이야 건물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금각사은 원래 이름은 킨카구 로쿠온지(金閣 鹿苑寺)가 정식 명칭이다. 일본의 불교 종파인 임제종 소코쿠지파의 선사란다. 그 종파가 어떤 성격인지 알 수는 없으나 꽤나 세력이 있는 종파이리라. 대표적인 건물인 금각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전이라고 한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사실도 있다. 금각을 중심으로한 정원과 건축은 극락정토를 이 세상에 표현했다는 설명이 담겨져 있다.
예전 금각사를 방문했을때는 이 느낌을 알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정원의 느낌이 한결 더 짠하게 마음에 다가선다
금각사의 정원은 화려함과 더불어 현란함이 강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마음과 조금은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서 예전의 스님들은 어떤 생각과 깨달음을 얻었으려나. 차분함보다는 색채로 인해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으려나...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래 머물고 싶은 심정이 사그라든다. 오히려 금각보다는 정원이 한결 마음에 와 닿는다. 예전 금각사를 방문했을때는 이 느낌을 알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정원의 느낌이 한결 더 짠하게 마음에 다가선다.
혹시 집을 짓거나 하면 정원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니 사소한 개천과 바위 나무와 이끼들이 훨씬 마음속으로 빨리 들어온다. 역시 필요가 있으면 사물이 달라지는 법...
금각사의 뒤쪽 정원을 거니는 동안 비가 오락가락한다.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기도 그렇고 벗고 다니자니 몸이 축축해지고 영 불만 가득한 날씨다.
정원을 거니는 동안 금각사에는 사리탑으로 인해 오히려 진정한 이 사찰의 가치가 조명되지 않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각사 때문에 유명해진 장소이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상징적인 건물과 연못에 비친 모습만 유명해질 뿐 아기자기한 일본식 정원의 덜 화려한 부분이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늦게나마 그들의 가치가 내 마음에 오랜 잔영을 남기게 되어 다행이다.
한국의 사찰이나 고궁등에 다양한 색채의 단청이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일본은 이 황금색 색칠이 아닐까
다른 관광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 금각사의 나들이는 잔잔하게 끝난다. 비록 기념품 판매와 입구의 정갈함이 눈길을 사로잡더라도 감흥을 받을 일이 없다. 금각사는 한번 찾아오는 곳으로 족하다. 일본의 많은 사찰이나 성에 칠해져 있는 다양한 황금칠이 우리와의 차이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의 사찰이나 고궁등에 다양한 색채의 단청이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일본은 이 황금색 색칠이 아닐까.
화려함보다 단아함이 훨씬 잔영이 남을 옆의 료안지로 가야겠다. <끝>
※ 난 금각사의 입장권이 고풍스러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이점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