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놓고 볼 때 일본의 역사를 언급하는 일은 편한 내용이 아니다. 임진왜란의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인 일본 전국시대를 언급하게 되면 온전히 역사적 사실만으로 바라보기에 쉽지 않다. 그래도 중국의 삼국지연의만큼 재미있고 다양한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다. 오사카성은 이 도시를 찾게 되면 한 번은 둘러볼 수밖에 없는 장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세상을 호령하던 장소였던 만큼 그 성의 크기와 상징성은 슬쩍 넘어갈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이성을 다녀와서 기록해 볼 수 있는 사진은 성의 겉모습과 성에서 바라보는 경치밖에 없다는 점이 새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성 내의 모습들은 대부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야 사진 촬영을 하는 게 어렵지 않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도둑질하듯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른 한 가지 예전에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권자를 누렸던 성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이 박물관화 되어버리고 대외적인 관람만을 목적으로 새롭게 치장된 오사카성은 돌아보면 볼수록 매력이 높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오사카성을 다녀와본 게 아주 오래전이다. 1991년도니 과거를 말해 무엇할까 보냐마는 그때 역시 일본의 역사를 잠시 잠깐 둘러보면서 오사카 성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7층 꼭대기까지 옛날식 복도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주하던 공간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느꼈던 것이 윗대가리 한번 보려면 아랫것들은 엄청 수많은 관문을 지나야 만 가능하겠으며 실제로 7층까지 올라 자객이 들어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박물관화 되어버리고 대외적인 관람만을 목적으로 새롭게 치장된 오사카성은 돌아보면 볼수록 매력이 높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찾은 오사카성은 옛적의 입구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들어가는 순간부터 너무나 관광지의 색깔이 짙었다. 다만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눈여겨보게 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최종 접전을 벌였던 대전투. 전국시대의 양측 세력들이 총동원돼서 싸웠던 전투를 세키가하라 대전이라고 부른다. 이 전투에서 도요토미가가 패하고 세력이 움츠려 들다가 1615년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오사카 겨울 전투와 오사카 여름 전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사실이다.
당시의 상황을 그렸던 아주 커다란 병풍을 부분별로 묘사하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도슨트가 매우 흥미롭다. 한 시대의 정권이 새로운 권력자에게 넘어가는 마지막 전투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했던 그 병풍의 면면이 오롯이 기억에 남는다. 두려움에 떠는 여인들, 훈도시만 입은 채 강을 넘어 도망치는 무사, 목이 잘린 남편의 시체를 붙잡고 목놓아 우는 여인, 여인과 남자들이 가지고 도망치던 물건들을 다시 빼앗는 산적들, 이 틈에 또다시 도망치는 사람들 등 다양한 군상들이 병풍에 묘사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한 시대의 정권이 새로운 권력자에게 넘어가는 마지막 전투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했던 그 병풍의 면면이 오롯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전투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있지만 역시 당시 전투의 최고 관심은 온통 빨간 복장을 한 사나다 유키무라의 전투부대 장면일 게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고 전력이기도 했던 이들은 한때 도쿠가와의 본진으로 진출할 정도로 파죽의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역시 중과부적으로 예봉이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부대들이 죽을 쑤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법.... 이후로도 이 부대는 일본의 다양한 이야기에 전설처럼 자주 무서운 부대로 등장한다. 오사카 시대를 새롭게 연 오다 노부나가의 이야기가 빠져있는 게 오사카 성을 보면서 얻게 되는 아쉬움이랄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성 역시 박제화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오사카 성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북적이기는 해도 괜히 을씨년스러운 분우기가 있다. 조용한 해자 위를 떠도는 배도 그렇거니와 강이 아닌 해자라 잔잔하지만 아무것도 있을 리 없는 물길과 성벽의 대비 속에서 아스라함을 자아낸다.
오사카 성은 에도 시대를 통해 도쿠가와막부의 일본 지배의 서쪽 거점의 역할을 한 곳이다. 지금의 성 역시 도요토미 시대의 성이 아니라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에 의해 10년여간 새롭게 개축된 곳이기도 하다. 옛적의 모습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는 지배층의 상징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용한 해자 위를 떠도는 배도 그렇거니와 강이 아닌 해자라 잔잔하지만 아무것도 있을 리 없는 물길과 성벽의 대비 속에서 아스라함을 자아낸다
나가는 길에 일본식 건물이 몇 채 보이기는 하지만 사원이나 다른 곳처럼 다양한 건물 대신에 권력자의 풍모를 보이려는 듯 너른 정원과 단아한 건물 몇 채만이 전부인 듯싶다. 성의 성주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주변의 부수적인 건축물들은 이미 현대화되었으리라...
권력의 희로애락을 담은 성을 뒤로하며 돌아볼 때마다 화려함보다는 무상함이 먼저 다가서는 것은 어쩌면 시간 앞의 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역사의 진리 때문이리라. 이야기로서는 재미있지만 당시의 삶은 조선이나 일본이나 참으로 팍팍했으리라... 차분히 성을 등지고 현대 문명 속으로 걷는다. 지하철역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