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전시와 보너스 그림들
구겐하임에는 그때그때마다 이루어지는 기획전과 상설전이 동시에 열린다. 이번에는 포르투갈의 예술가인 조안나 바스코첼로스(Joana Vasconcelos)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끔 나오는 이상한 괴물을 연상시키듯 알 주머니를 잔뜩 쥐고 있다가 인간의 몸에 기생충을 살포하는 외계 생물이거나 굳이 기생충을 품고 있지는 않아도 바닷속 혹은 어느 깊은 숲 속에 숨어 있을 법한 괴물과 촉수를 연상시키는 전시물은 이전의 선입관이 만들어놓은 상상 속에 나를 가두고 말았다.
전시장 곳곳을 다니며 이 전시품이 어떤 특징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지 그때그때의 모습을 체크해야만 했다
바스코첼로스의 이 작품은 어찌 됐듯 한 곳에서 그 실체를 결코 볼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미술관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이어서 전시 중인 관계로 색은 물론 형태 자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전시장 곳곳을 다니며 이 전시품이 어떤 특징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지 그때그때의 모습을 체크해야만 했다.
이 모든 전시물들이 전부 이어져 있다는 점은 작가의 지난한 작업의 놀라움을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뜨개질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일일이 손으로 뜨개질해서 만든 작품이라니. 소재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것을 잊는 작업들이 뜨개질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조금 아연실색할 수준이었다. 난생처음보는 형태의 전시작품이지만 과감히 미술관에 이것이 전시되는 현대미술의 특징이 새삼 놀랍기 그지없었다.
제목은 'I am your mirror'. 제목과의 관계는 도통 알 수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내적인 익숙함은 도시의 전망에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자꾸 외부의 도시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사진 속의 풍경들은 삶의 모습이 솔직히 담겨 있지만 아무래도 예술작품들은 해석의 여지가 많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역시 예술적인 분야에는 문외한이 아니던가?
안의 공간은 아무런 제약 없이 열려있지만 멈춰서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나 스스로 갖게 되는 선입견 때문이다
뜨개질로 만든 어마어마한 작품을 차치하고서도 구겐하임은 상상력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묘한 전시 여러 개를 널려놓았다. 철창처럼 빛이 내려오는 공간 앞에서 사람들은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사실 선입견에 불과하지만 그 안의 공간은 아무런 제약 없이 열려있지만 멈춰서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나 스스로 갖게 되는 선입견 때문이다. 철창으로 막혀있거나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섣부른 판단. 이를 극복하는 몇몇이 이 안으로 들어가는 보고서야 뒤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내 생각을 비워야 하는데 어찌 그게 마음대로 될 일이던가.
이번에는 상상의 나래가 한껏 펼쳐진 방.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몰래몰래 찍어보지만 왠지 쉽지 않다. 금박으로 만든 몸체와 프레임에 깃털로 날개를 만든 헬리콥터부터 소통이라는 이름하에 전화기를 늘어뜨려놓은 모습까지 다양한 상상의 예술품들이 존재하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아쉬움만이 가득하다. 현대미술관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무지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도 나는 예술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니다.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하면 나 역시 예술가가 아닐까. 전시 예술을 우습게 보고 있는 한 사람의 생각은 이렇다. 내 마음대로 해서 마음대로 해석을 붙여보자... 한번 해봐야겠다.
상설 전시중인 serra의 the matter of time. 해석을 하지는 않으련다. 녹슨 철근을 다양한 형태로 전시해놓은 작품으로 공간 사이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왠지 기분이 묘하다. 진짜 시간의 굴절을 지난 느낌마저 든다.
serra의 전시장 끝 무렵에 언뜻 창이 있어 밖을 내다보니 고가 다리 밑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바스크 여인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 강 너머에 보이고 사람들은 강가를 씩씩하게 걷고 있다. 묘한 대비다.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몇 작품들을 포함해 루소, 르노와르, 모네, 마네 등 인상파 작가들로부터 피카소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빼곡히 전시 중이다
그나저나 이곳에 와서 만난 행운 아닌 행운이라면 한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고흐부터 피카소에 이르는 근대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 중이라는 사실.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몇 작품들을 포함해 루소, 르노와르, 모네, 마네 등 인상파 작가들로부터 피카소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빼곡히 전시 중이다. 한참을 둘러보며 다시 처음부터 두 번의 관람을 하며 행운이라 여진다. 어디 원본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겠는가. 파리의 루브르나 오르세 혹은 암스테르담의 미술관도 아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들을 작품을 만나게 되다니 다행이다.
더 이상 관람할 여력이 없어졌다. 머리가 상상과 인과성을 계속 담기에는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 이제는 그만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 졌다. 미술관 밖으로 나와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득실득실하다. 뭐지? 자세히 살펴보니 오토바이 동호회의 공식 오프라인 모임이란다. 오토바이 동호회 치고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너머로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야외 놀이를 보며 그늘에 앉아 휴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냥 스페인의 변방에 위치한 농촌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빌바오에 오면서 이들을 새롭게 보게 됐다
여유로운 시간. 현대미술관이 동호외의 회합의 장소가 되고, 그 옆에서 생활 속의 어린이 놀이터가 함께 공존하는 이 도시가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무엇보다도 스페인이 아닌 바스크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강대국 사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며 여태껏 버텨온 이 소수민족의 저력이 궁금하다. 구겐하임 미술관도 그렇고 게르니카라는 스페인 내전의 희생지도 이곳이고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본진도 바스크 민족이다. 이 민족을 새롭게 보게 된다. 지도상에서는 그냥 스페인의 변방에 위치한 농촌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빌바오에 오면서 이들을 새롭게 보게 됐다. 역사에 이름이 남는 민족들은 다 그 이유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