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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09. 2019

정치는 생물이라더니

한라일보 2019.5.7.

청와대 올라온 한 자유한국당의 해산 청원이 170만명이 넘는 상황을 본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다.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회자되던 말이 다시 한번 입증듯하다.  다만 그 장소가 정치권이 아니라 밖에서 이루어지는 점이 다르다. 


3년 여 전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시발점이 청치권이 아닌 촛불집회에서 촉발이 됐던 것과 비슷하다. 


정당해산 청원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점은 청원에 동의하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 숫자의 증가는 촛불정국의 프레임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촛불집회의 시작이 처음부터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질지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치가 움직였고 결굴 탄핵이라는 전례없는 상황을 이끌었다. 


패스트트랙으로 유발된 정치의 갈등이 또 다른 국면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이전처럼 사건의 결말을 TV뉴스를 보고 술자리 안주로 삼는 수준에서 벗어나 다시 정치적 행동으로 야기되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그 장소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으로 옮겨 붙었을 뿐이다. 이미 SNS가 정치의 장이 된 지는 오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매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때 가짜 뉴스가 온 매체를 장악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을 빙자한 포장술이 온 SNS를 떠돌며 진영에 유리한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일에 집중했었다. 그러던 미디어의 흐름이 유시민과 홍준표의 유투브 대전으로 미디어 전쟁을 진행중이던 터라 또 다른 국면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공급자 중심의 정치평론은 속시원한 감정을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정치가 살아있음보다는 정치의 외연이 확대됐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반면 청와대 청원은 프레임의 확산을 꾀하면서도 이로 인한 파괴력을 극대화하고 있어 정치가 살아있음을 실감케 한다.


그 이유는 시민들이 설문정치에 참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을 전달하고 환호하는 것은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여기에 실질적인 숫자가 붙으면 정치인이나 정당에게는 매우 민감하고 신경이 쓰이지 일이다. 1년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숫자로 드러나는 지지와 반대는 득표수 및 의석과 직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청원의 숫자만으로 내년 총선을 예단하기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의 숫자가 정치를 좌우했듯이 숫자가 남기는 후유증은 해프닝 이상이다. 


이미 온라인이나 SNS가 정치의 핵이 된지는 오래됐다. 그러나 그 흐름이 가짜뉴스를 비롯해서 유투브 등과 같이 정치인이나 여론 선도층 중심으로 방향을 이끌려 한다면 그 파괴력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불특정 다수가 공식적인 숫자로 환산되는 방법이라면 그 힘은 배가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청와대 정당해산 청원은 실질적인 유효성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플랫폼으로서 청와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어느덧 삶의 곳곳을 장악하고 있는 플랫폼을 잘 이용하면 정치가 계속 생물이 되어 살아있을 뿐 아니라 큰 무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 되려면 정치권 밖의 정치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재 근/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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