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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Dec 15. 2019

일상의 기록과 의미

원도심 내의 새로운 공간에서 기획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옛 기록을 찾다가 떠오른 생각. 나의 일상은 얼마나 기록되고 있으며 후일 사용될 수 있을까. 내가 살던 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 흔적이 그다지 없음을 알고 나니 이 생각이 간절해진다. 요즘이야 SNS가 발달해 매일매일 먹는 음식과 다녀온 장소를 남기는 일이 엄청 중요한 행사가 되곤 하지만 조금만 되돌아보면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 말고 자신이 살던 곳과 하는 일 등 삶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도시재생을 이야기하다보면 사소한 이야기나 이전의 거리는 꽤나 의미있는 자원으로 쓰인다. 건물을 리모델링을 해도 그 건물의 기억과 흔적을 살리려 하고 사라져가는 어른들의 삶의 기억들도 많이 필요해진다. 별거 아닌 일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이 오늘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 기준으로 살펴보면 사람들이 살아왔던 집들과 거리, 건물, 혹은 흔히 스쳐 지나는 행위 등이 기록된 자료들이 거의 없음에 아쉬움 가득이다. 


아마 변화가 없으리라는 막연한 생각과 나중의 결과만을 생각하며 현재에 별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래서인가 당연히 늘 남아있을 것 같던 모습들이 뒤돌아보면 바뀌고 없어져 버렸음을 깨닫는다. 최근 아카이빙이라는 기록사업들이 의미를 찾게 돼 다행이지만 시간을 조금만 과거로 되돌려보면 없는 거 투성이다. 별로 오래된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도시재생 사업을 하다보면 과정을 중요시해야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러나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를 과정으로 이해해 주면 고맙겠지만 실상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한지 4년이 되어간다. 다행히 작년부터 결과물이 하나둘씩 선보이기 시작했다. 북초등학교의 김영수도서관이 마을도서관으로 탈바꿈해서 호평을 받고 있다. 고씨주택이 제주책방과 제주사랑방으로 문을 열었더니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작은 결혼식을 위한 대관문의까지 들어온다.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더니 도로번호판을 자율형으로 만들어 칠성로의 일부구간에 걸기도 했다.


구 기상청 공간은 W360으로 탈바꿈을 해 창업자들을 불러들이고 있고 산지천변의 유성식품 공간은 지역 주민들이 음식을 통해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케왓으로 탈바꿈했다. 공간이 새롭게 바뀌고 그 안에 콘텐츠가 하나둘씩 쌓여가고 있다. 감협 공간이었던 공간은 상생마당이라는 공간으로 바뀌어 새로운 사용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으로 변하든 지역주민이나 단체들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지가 변화의 관건이 될 것이다. 건물을 멋지게 리모델링했다는 수준에서 결과물로 남을지 시작과 달리 제주도 재생사업에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는지는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 차이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있고 기록되느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모든 공간들이 리모델링만 아니라 운영진을 어떻게 구성해야 주민과 함께 지속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만들어왔다는데 위안을 받는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숨결, 즉 일상이 그곳에 계속 남아있어야 공간도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모든 공간의 성과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기록되고 그 일상이 축적되어야 공간 역시 의미를 갖는 일이다. 그래서 그 일상의 기록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근 /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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