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4월 11일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초 ‘앞으로 공무원이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 국민에게 불편을 주거나 권익을 침해하고 국가재정에 손실을 끼칠 경우 최고 파면까지 징계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공무원들은 일을 하지 않는 걸까?
매일 저녁 제주도청사에는 밤늦게까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주말 저녁조차 이 불은 잘 꺼지지 않는다. 내가 아는 부서에 관한 한 그렇다.
그런데 반대로 업무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의 속도가 더디고 종종 의사결정자의 의도와 달리 엉뚱한 방향의 정책이 서슴지 않고 나온다.
3월 내내 제주도청의 한쪽 회의실이 몹시 시끄러운 분위기다. 물으니 주제별로 관련 부서의 주무관과 담당 국장, 과장들이 난상토론 중이란다.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면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자 일하는 방법이기도 한 분위기를 이해하는지라 의아했다. 자신이 책임을 질 수도 없는데 콩나라 팥나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다고 그대로 따라줄 사람들도 아니다. 그래서 부서의 벽을 넘는 일은 어렵다.
이 때문인 듯 정부 3.0 역시 초점이 소통과 협력이다. 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고, 조직 간 칸막이를 없애며 소통·협력을 강화하는 정부운영의 패러다임이다. 민선 6기도 협치를 내세우며 민과 관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전환을 꾀했었다. ‘협업행정’이다. 기능적으로 구분된 국·실의 업무영역의 서로 겹치는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나왔다.
각 국·실은 업무적으로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렇지만 도내의 다양한 이슈가 한 부서에만 국한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특히 예민하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부서 간 업무가 겹치는 부분은 점점 많아진다.
원도심 활성화라는 주제를 두면 당연히 디자인건축지적과나 문화정책과가 주요 부서가 될 것이고 여기에 경제정책도 결부될 뿐 아니라 신항과 관련된 해운항만과 등도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부서는 물론 관계기관 간의 협력을 무시하면 업무의 공백이나 차질 현상은 쉽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기존의 관행에만 따를 경우 나타나는 정책방향과 실제 나타나는 정책 사이의 괴리도 자주 보인다.
올해 초 제주공항의 폐쇄와 관련된 상황은 두고두고 대표적인 예가 된다. 관련 매뉴얼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관련된 기관이 부재한 것도 아니었다. 공항공사는 공사대로 자신들의 영역만 이야기했고 제주도는 관할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태 발생의 후처리에만 신경 썼다. 민간항공사는 유연성 없이 자신들의 편의만 생각했다. 그 결과 추운 엄동설한에 수천 명이 공항 바닥에서 며칠씩 잠을 자야만 하는 난민 신세가 됐다.
도시관리계획 역시 정책결정자의 철학은 반영되지 않은 채 기존의 관행에만 따른 용역을 발표해 지사로부터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제주도 내의 주요 현안을 보더라도 부서 간 혹은 외부 유관기관과의 연계는 너무나 불가피하다. 특히 도정 정책의 방향이 우선시 되는 부분일수록 정책방향 숙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협력 행정'에 대해 도정 내에서 관심이 크게 부각되는 모양이다. 명확한 주무 부서 없이 상호 어정쩡한 관계로 유야무야 되거나 시간만 끄는 상황을 극복해보겠다는 의지라는 설명이다.
부서 간 이기주의에 익숙하고 협력을 위한 칸막이를 없앤다는 협력행정에 대한 시도가 하루아침에 이뤄질리는 만무하다. 그래도 그 같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반갑다. 열심히는 하는데 잘하지는 못한다는 지적을 받거나 불통과 협력 부재의 대표적 표상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문턱은 한 번 넘기 어렵지만 넘기 시작하면 장애물도 아니다. 난상토론이 일상화되기를 기대한다.
<제주일보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