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샘이 주는 메시지는 청정 제주가 자랑하는 물과 한라산의 이미지
한라산 영실은 한라산의 여러 가지 등반코스 중 하나 이상의 의미가 있다. 화려한 경관을 이야기하자면 제주도 어디에도 뒤쳐질 일이 아닌데다 이야기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영실(靈室)은 ‘신들의 방’이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바위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병풍바위라고 불리는 영실기암이 자리한 곳이다. 설문대할망의 아들인 오백장군들이 어미가 빠져 죽은 죽을 맛있게 먹었던 슬픈 사연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계절에 상관없이 국내 관광객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영실기암과 구상나무 숲을 지나면 윗세오름 휴게소에 이르기 전 반가운 장소가 있다. 노루샘이다. ‘돌들이 서있는 너른 들판’이라 불리는 선작지왓의 한 가운데에 있는 샘이다. 제주에서 바닷가가 아닌 산 중턱에서 샘을 만나는 일이란 아주 귀한 일이다. 더구나 한라산의 정상 부근에서 끊이지 않는 샘이 나온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여름 이곳을 오르면서 물 한 모금 마시던 시원한 경험을 기억한다. 입구부터 함께 오르던 독일인 부부가 이 샘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기억도 생생하다. 정기적인 수질검사를 한다는 것과 노루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제주에서 바닷가가 아닌 산 중턱에서 샘을 만나는 일이란 아주 귀한 일이다
다시 가을.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겠다는 기대로 노루샘에 도착했다. 그 갈증은 대장균 검출로 인한 음용 부적합 판정 표지판으로 좌절됐다. 윗세오름 휴게소까지 지친 걸음을 옮겨야 했다. 한 겨울을 지나 노루샘에 다시 관심이 갔다. 아마도 지난여름 이후이니 최소 2번의 수질 검사를 했을 것이다. 이를 아는 듯 주말마다 영실을 자주 찾는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공교롭게도 지난주에도 음용 부적합이 이어져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만나게 되는 노루샘은 먹는물 관리법에 의해 3개월에 1회씩 수질검사를 하면 되는 전국의 수많은 약수터 중 하나다. 음용 불합격이 될 경우 법에 따라 시설 보강 및 적절한 소독 등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음용을 못하도록 한다. 그 기간이 반년 이상이 돼 간다. 수질개선이 안되는데 어찌하랴. 대장균이 검출된 물을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탐방객들에게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나오는 샘물은 마실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다른 생각이 났다. 주변에 특별한 오염시설이 없어 보이는 한라산 꼭대기에서 솟아나오는 물도 먹을 수 없다. 제주의 물은 진정 깨끗한 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노루샘의 오염이 자연적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청정 제주를 중요한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노루샘이 주는 이미지는 수많은 약수터의 수질관리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노루샘은 청정제주의 얼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청정제주의 구호 대신 마른 목을 축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노루가 쉬어간다는 이야기가 더 반갑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년 이상 문제가 있었다면 왜 그런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를 위한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먹을 수 없는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그마한 노루샘 하나일지라도 그 샘이 주는 메시지는 청정 제주가 자랑하는 물과 한라산의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모양새다.
노루샘의 수질이 오염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수많은 약수터 중 하나를 관리한다는 생각보다 제주의 이미지를 관리한다는 생각을 할 시점이다. 반년이상 먹을 수 없게 된 샘물에 대한 해결 방안이 제시됐으면 좋겠다. 청정제주의 구호 대신 마른 목을 축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노루가 쉬어간다는 이야기가 더 반갑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라산국립공원에서의 하수 처리에 문제가 많다는 보도가 있었고 이것이 하천·습지를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청정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루샘 같은 곳에도 조금 더 세심하게 대응하기를 바란다. 약수터 하나 이상의 의미를 헤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