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제주 Wat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Mar 16. 2016

알파고와 미래진영 ... 디스토피아를 위한 발걸음?

인공지능이 SF(Scientific Fiction)의 영역에서 현실로 들어왔다. 그것도 극적인 상황을 만들면서 '훅'하고 들어왔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결이 연일 화제다. 인공지능의 최첨단 현신을 보는 놀라움과 그 가능성에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배어나온다.


거즈로 상처를 누르고 반창고를 붙여놓아도 피가 계속 흘러나올 상처다


유럽의 체스나 퀴즈 등에서 이미 가능성을 충분히 보였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바둑에서는 '아직'이라거나 '글쎄...'라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인공지능은 이 기대를 여지없이 부수며 한층 정교해진 논리와 집요함으로 다가왔다. 아직은 부족한 면도 보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칼로 깊게 베인 느낌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혈은 되겠지만 찰과상은 아니다. 거즈로 상처를 누르고 반창고를 붙여놓아도 피가 계속 흘러나올 상처다. 흘러나온 피가 온 거즈를 빨갛게 물들이며 짙은 핏빛으로 변할 아물지 않을 상처다.


알파고의 집요함을 보면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 영화 '채피'에서와 같이 인공지능으로의 의식전환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행복한 결말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유토피아(Utopia)가 아닌 오히려 디스토피아(Dystopia)를 묘사하는 영화를 훨씬 먼저 떠올리게 된다. 완벽하면 완벽한 데로 인간세상을 대체할 가공할 능력이 걱정이고 불완전하면 할수록 그것이 만들어 놓을 재앙에 대한 우려가 함께 나온다.


언뜻 생각해봐도 누구나 아는 터미네이터를 비롯해 인간이 멸망한 이후에도 살아남는 미래상을 보여주던 AI(인공지능)나 월-E라는 영화도 떠올리게 된다. 인공지능 로봇의 독자적인 자각을 통해 새로운 종(Species)의 가능성을 보여준 아이로봇, 엑스마키나 란 영화도 생각난다.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을 배경으로 SF의 한 쪽길을 열었던 '브레이드 런너'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대라면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면 완벽한 데로 인간세상을 대체할 가공할 능력이 걱정이고 불완전하면 할수록 그것이 만들어 놓을 재앙에 대한 우려가 함께 나온다


수많은 예측이 결국 논리적인 부분이나 계산 능력에 대해 인공지능이 갖게 될 우월성을 언급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인공지능의 판단에 의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냉정하고 무미건조하게 운영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알파고가 보여준 냉정함과 집요함이 차지하게 될 미래 진영의 일반적인 예측이다.


인공지능이 메인이 되는 인간의 미래가 무미건조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특히 정책결정에서 합리적 판단이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할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인간 세상의 행복과 불행지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다른 한 가지. 인공지능에 대한 가능성의 주요한 초점은 인공지능이 언제 스스로의 자의식을 갖게 되느냐 하는 점이다. 육체에 프로그램이 이식되고 수많은 논리와 사실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자의식이 형성될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겪게 되는 갈등의 가장 극적인 부분이 이 시점이라는 것이다.

브레이드 러너 포스터


좀 더 극단적으로 2000년대 중반에 나온 SF 드라마인 '배틀스타 갤럭티카'가 떠오른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인 사일런이 인간 세상을 압도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까지 이른 상황이 배경이다. 논리적인 능력은 물론 감성적인 능력까지 스스로 만들어내며 사실상 새로운 인류이자 더 우월한 종으로 자리매김한 인공지능을 다룬다. 인류가 맞닥뜨린 생존을 건 전투와 이후 신인류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류가 생존 이외의 삶을 생각하며 자의식을 확장해 나왔듯 인공지능 역시 어느 날엔가는 그 같은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날이 올 것이다. 기술발전의 속도를 고려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날들보다 더 빨리 앞당겨져 올 것이라는 판단도 가능해진다.


어느 순간 인공지능은 인간의 육체와 같은 실체를 갖게 될 것이고 스스로 독립된 개체임을 들어 자기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 경우 그 인공지능을 인간과 같은 별개의 종으로 구분 짓게 하는 경계가 생기는 셈이다.


바둑의 승패를 두고 새로운 종 운운하는 것이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실생활 속으로 들어온 알파고를 보면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연시했던 기준과 윤리가 무너질 날들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재근=제이누리 논설위원]

매거진의 이전글 정책따로 업무따로 ... '습관성 행정'의 안타까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