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산간으로 이사 온 느낌의 두서없음.
부푼 꿈을 안고 내려온 제주는 아닐지라도 살다 보면 지역에 대해 장단점을 느끼고 이해하게 된다. 제주라고 예외는 아닐 터 내가 산 시간만큼 경험과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다. 때로는 땅굴을 파듯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감점을 추스르며 '내가 이곳에 왜 내려와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종종 있다. 반대로 어떤 이유에든 서울의 복잡함과 힘든 상황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안도감으로 하루하루를 지낼 때도 있다. 어디인들 이 같은 일이 없겠는가마는 역시 제주는 그 극단에 처해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섬 지역으로 형성된 독특한 사회문화로 인해 단순히 서울과 지방이라는 관계를 넘어 다른 지방과 달리 외떨어진 장소라는 생각이 미칠 때가 아주 자주 있게 된다.
그런 제주에 이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부턴가 '제주에 계속 살 거냐'는 질문은 받아왔지만 특별히 확실한 답을 할 수는 없었다. 왜 꼭 제주에 정착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는 한가. 아니면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 가면 할 일이 없어서 제주에서 그냥 지내요. 그런 시간이 되었네요."라며 막연하면서도 불확실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제주에서 지낸 지 10년은 아닐지라도 만 7년이 지나고 8년이 되어간다.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제주가 아니라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산 좋고 물 좋은데 내려와 그 흔하다는 암에 걸려 수술도 하고 피곤에 찌들어 지낸다. 지난해 겨울에는 너무 과한 스트레스로 인해 거의 한 달 이상 한잠을 잘 수도 없었다. 밤새 뒤척이다 더 이상 괴롭고 참을 수가 없어서 새벽녘 아니 새벽이라고 하기에 너무 깊은 밤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길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분명히 피곤해서 잠들고 싶어 눈을 감고 무작정 걷는다. 지나다 담벼락에 부딪히기도 하고 전봇대가 앞을 막기도 하고 주차해 놓은 자동차와 부딪히며 깜짝 놀라 눈을 떴다가는 그 차가 동네 어귀에 추자 해놓은 스타렉스라는 사실에 안심을 한 적도 여러 번이다. 느낌상으로는 내가 달려오는 차에 치인 느낌이었으니. 그만큼 넋이 나간채 밤길을 걸었다. 왜냐고? 그러면 피곤함에 지쳐 조금이라도 잠을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제주에 편히 쉬려고 온다는데 나는 왜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수많은 번민의 밤을 보내는 것일까.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 달이 다되도록 말이다. 주변의 숱한 걱정을 들으며 나 역시 내가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의 추천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가서 내 상태를 점검해 보기로 했다. 내 상태를 본 의사는 외부의 입력에 비해 몸과 마음이 너무 예민하게 곤두서 있기에 잠을 잘 수 없는 초각성 상태란다. 온몸이 긴장과 예민함으로 가득하고 정신 상태도 너무 스트레스가 많으니 무언가 가라앉히지 않으면 계속 예민함에 지쳐 결국 건강을 잃을 거라는 판단과 이를 완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들었다. 그동안 간간히 뺐어 먹었던 신경안정제였던가 수면제였던가 암튼 그것조차 효능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약효를 충분히 견뎌낼 만큼 나의 심리상태는 초 긴장상태였던 것이다.
우스웠다. 내가 주변의 일들에 그렇게까지 긴장하면서 살아왔던가. 나름 느긋한 성격에 무심한 듯한 모습으로 천하태평이라는 이야기를 꽤나 듣기도 했는데 말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같은 주변의 평가를 속으로는 거의 무시하곤 했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한 게 이번 기회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암튼 그런 12월이 지나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내 이야기를 상담사와 주절주절 이야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내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이 들어주면서 맞장구를 쳐주니까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꽤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 스스로 삶의 모습들이 진솔하게 정리가 된다. 12월을 그렇게 심리적인 불안 속에서 어쩌든지 나를 돌아보며 보냈다. 참 힘들게 사는 인생일세.
내 몸의 세포와 뉴런은 하루에서 수없이 파괴되고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라고 경고를 보내곤 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냥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 괴로움은 사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자초한 모든 것의 총아인 셈이다. 내 몸이 견뎌줄 줄 알고 밤새 일하기를 남발하기 일쑤였고 세상 모든 일들이 나의 관심사에서 벗어나질 않았으니 내가 속한 조직은 물론 도시재생, 마을 만들기, 환경 등 제주 내부의 일과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물론 국제적인 이슈와 우주의 종말에 대한 걱정까지 걱정도 팔자인 생활이 마치 무슨 자랑거리라는 되느냐 떠들어 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정작 그 사이 내 몸의 세포와 뉴런은 하루에서 수없이 파괴되고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라고 경고를 보내곤 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냥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첫 번째 고비가 결국 암으로 터졌고 몸에 칼을 댔다. 그 이후 다시 당뇨병이 찾아들었고 생명보험은 물론 손해보험사에서도 이 인간은 돈 들어갈 일만 남았으니 회사가 손해만 볼 뿐이라는 내부적 판단하에 더 이상 보험가입을 허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공교롭게도 질병이 발생하면 난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의 혜택을 입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의료보험 체계만은 워낙 훌륭하기에 여전히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기는 하다.
처음으로 돌아가 왜 나는 제주에서 사는 것일까. 우습게도 더 이상 서울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경제적인 이유나 부동산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연과 함께 익숙하게 살아가는 삶을 버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바다가 있고 숲이 있는 생활이 감동을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도시로 올라가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제야 내가 얼마나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실히 깨닫게 된다.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방에서 사는 나 스스로가 너무나 신기하고 뜻밖의 선택에 서울이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던 기억을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서울서 사는 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대도시의 삶은 세포 하나하나에 독소를 주입하고 있다는 확신이 서게 됐다. 물론 자연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한심한 생활일지라도 지금의 몸 상태라면 도시에서는 사그라들고 말았으리라는 생각이 가득이다. 이 육체라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근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의 치유 범위 안에서 보호받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반대로 이제는 내가 누리는 눈부신 삶의 터전과 환경이 너무 일상이 되다 보니 스스로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닫기도 한다. 얼마 전 늘 다니는 공항 뒤편의 해안도로를 달려 갑자기 도두항에 갈 일이 생겼다. 그날따라 눈발이 거세게 날리고 바닷바람이 너무 차가워 차마 차를 세우고 바다를 감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런 날일수록 바다의 색과 파도가 합쳐진 풍경은 어떤 사진이나 그림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과 자연의 오묘한 색감과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놀라운 사실은 그 같은 오묘함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으나 감성적으로 감동이 밀려오지 않더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에 놀라움이 있다. 정신이 들어 동행인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저 멋진 풍광이 멋있는 건 너무나 잘 아는데 마음속에 전혀 감동스럽지 않아요."
"너무 흔하다 보니 귀중함을 모르는 겁니다. 저 역시 매일 바다를 뼈저리게 체감하지만 정작 감동을 못 느낄 때도 있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이 너무 깊이 들어와 버린 때문일 겁니다"
산이 좋고 바다고 좋아 육지에서 비싼 비행기표와 어려운 시간을 내고 제주로 여행을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리만큼 나는 제주의 자연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참 오만한 판단이긴 하지만 스스로가 자연을 즐길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아니 육지인으로서 일에 매몰되어 있던 그 시절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여유로운 생활을 하리라는 그 당찬 기대는 나 스스로 변하지 못한 삶의 관성에 이끌려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모른 채 여전히 살고 있음을 알아차려 버린 것이다.
병에 걸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여전히 환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끊임없이 재촉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낮에 일을 마치면 저녁에 집에 가서도 계속해서 다음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으니 집에서 바라보는 멋진 바다 풍경이 이질적인 낯섦으로 다가올 밖에.
그날이 오면 지방에서 사는 자신에게 참 잘한 일이라고 위로와 칭찬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 조금은 나에게 관대해지면 좋겠다
22년 1월 4일 중산간 마을로 이사를 왔다. 이제 한 달이 지났고 도심보다 더 습기가 강하고 바람에 거세면 훨씬 추운 장소에 위치한 나름 전원주택이다. 멀리 함덕 앞바다가 앉은자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중산간 마을이다. 동네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저녁이 되면 야경을 바라보기보다 커튼을 쳐버리는 이상한 행동을 가끔 한다. 아직 집이 낯설고 스스로 여유로움을 가지지 못하는 이 괴상한 행동을 하면서 여전히 제주에 남아 새로운 삶과 인생의 마지막을 꿈꾼다. 어쩌면 아직도 나는 도시 속에 살고 있기에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수많은 일과 경제와 사회관계의 관성에 얽매여 지방이든 서울이든 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것일까.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으나 이제는 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여전히 무엇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기충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몸은 날로 쇠락해 갈 뿐이다. 언제쯤 아름다운 바다와 멋진 중산간의 풍광에서 스스로에게 감동을 느끼는 날이 다시 영화처럼 훅 들어올까. 그날이 오면 지방에서 사는 자신에게 참 잘한 일이라고 위로와 칭찬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 조금은 나에게 관대해지면 좋겠다. 그러려고 내려온 지방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