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그만둔 지 일주일부터 삶의 희열이 조금씩 느껴진다. 아침 출근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웬일인지 묘한 희열이 생기는 것이다. 남들 출근할 때 출근 안 하면 매우 초조해하는 게 정상인데 남들 다 하는 출근 대신 잠을 자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니 왜 기분이 좋을까. 그동안 아침에 출근하는 일이 꽤나 힘이 들었던 게다. 그래서인가 7시면 일어나서 멍 때리며 약을 먹고 혈당을 체크하고 출근을 준비하는 일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는데 괜히 조금이라도 더 침대에 누워있게 된다. 눈은 예전처럼 떠지는데 계속 누워있자니 불안감이 찾아든다.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게으름으로 가기 위한 여정에 생기는 당연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일이 처음에는 영 어색하더니 당연해지기 시작한다.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지라 금세 적응한다. 금세 늦잠 자며 생활리듬을 망가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건강이 안 좋아 사직을 한 게 되지만, 아직까지 그 이유가 가장 확실한 나의 대외적 상황이지만 이것만 강조해서는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이제 내가 더 이상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인정하면 모든 관계망을 단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몸이 안 좋아 쉬지만 곧 몸을 추스르고 다시 당신들 앞에 나타나리라는 가능성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이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현재 극복 중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왜냐고? 밥 먹고 살려면 여전히 내가 하던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입에 물고 타고난 것이라고는 흙밖에 없었고 살면서 그 주머니에 금을 가득 채우는데 실패한 대다수의 평범한 인생이었기에 60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머릿속에는 이번 달 다음 달의 생활비가 걱정의 태반 이상이다. 그럼에도 게으름의 달콤함을 바로 저버리기에는 여전히 미련이 많다. 아니 유혹에 휩쓸리고 싶을 뿐이다. 당분간은 그 유혹에 못 이기는 척 응해주련다. 늦잠도 자고 맘껏 게으름도 피우고 아침산책도 나가며 빈둥거리기도 하고 기타 등등 뭐가 또 있을까. 오전에 커피 한잔에 독서라도 할까. 그러면 내 처지가 좀 더 뽐이나 보이지 않을까. 부질없지만 치기 어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일요일 저녁 월요병이 생기지 않는 게 어디냐. 그것만으로도 꽤나 통쾌하지 않은가? 그래도 하던 데로 일요일 저녁에는 못다 한 빨래를 하고 밀려있던 셔츠들을 모아 다림질을 해보련다. 내가 직장인이라는 생활의 증거이기도 했으니.
출근을 하지 않으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사실 내 나이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삼식이가 되어 눈총을 받는 일이 아닐까 싶다. 갈 곳이 없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며 삼시 세 끼를 와이프가 해주는 밥을 먹고 지내는 생활. 농담처럼 이야기는 줄곧 해왔지만 내가 그 처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나에게도 없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더라도 일단은 출근하고 볼 일이다. 어디로? 아무데로.
그러고 보니 내가 추구하는 게으름의 대부분은 어쩌면 스스로 택하지 않아도 잠시 잠깐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일요일의 월요병이야 월요일에 출근하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고 오전의 한가함은 출근해서 한가하게 지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백수의 길을 빨리 손에 넣고 싶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를 다시 한번 실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면서 백수가 아닌 신분의 삶.
그게 어떤 생활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게을러져 볼 일이다. 게으른 자에게 건강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늦잠을 자기 위해 뒹글 거 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