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무언가 가벼운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의 정체에 대해 잘 파악이 안 된다. 새로운 조직에서 일을 시작했음에도 그 일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지라 정작 자리에 앉아서는 다른 생각과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너무 오래 앉아있는가. 그저 앉아서 머리만 사용하려다 보니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상당히 오랫동안 이곳으로 출근을 해야 하지만 스스로 가두어놓은 고립무원의 상태인 듯 아직 몸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몸은 어디에도 없다. 머리만 계속 이곳저곳을 날아다닐 뿐이다.
바깥의 풍경은 사실 이채롭고 편안한 마음마저 준다. 리사무소가 위치한 제주시 조천읍 와흘은 그저 한적한 나무들이 바람에 설렁설렁 흔들리는 모습만 보이고 꽤나 멀리 높아 보이는 바농오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 한라산의 정상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곳까지 머리를 돌리기에는 나의 허리가 그다지 유연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마음만으로 한라산을 가슴에 품고 지낸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한다. 이미 한차례 몸을 망가뜨렸으니 걱정이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논리적으로 이를 모를 리 없지만 마치 머릿속은 청년세대라도 되는 듯 왕성한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길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갑자기 내가 왜 이곳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 번쯤 되돌아볼 시간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사실 걱정스럽다. 매일매일 약속이 많고 바쁜 시간을 보내는 일에 스스로 자위한다. 나는 한가한 인간이 아니야. 그러나 사실은 혼자의 시간과 주변의 정리를 견딜 수 없기에 여전히 어지럽히는 선택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정리하는 두려움이 엄존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면 수없이 많은 회한과 잘못을 직면하게 될 터이니 이를 외면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간다고 굳이 색다른 것이 없을 진데 열을 내며 나아가는 스스로에게 가끔은 어이가 없을뿐더러 지친 모습에 스스로 좌절한다. 그리고는 묻게 된다.
나는 어디까지 왔는가.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혹시 내일 당장 내 삶이 끝나게 되면 이 모든 것의 쓸모는 어찌할 것인가. 억울해서 죽을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억울함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니 말이다. 나보다 젊은 나이에 이 생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얼마나 억울해했을 것이며 얼마나 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을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질책한다.
어느 날 문뜩 하늘을 보니 벌써 봄이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여름의 문턱에 와있는데 나는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에서 허덕이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란다.
삶의 균형에 대해 생각이 미친다. 몸만 키운다고 새로운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이요. 마음만 계속 신경 쓰고 산다고 세상일이 변하지 않을진대 여전히 잔머리 굴리는 선수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육체를 보면서 문뜩 멈추어서 내 몸을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체중이 터무니없이 늘어나고 있다. 몸에서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이 이곳저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다. 체형은 e.t 체형으로 변해가고 조금만 신경 쓰거나 힘을 쓰면 에너지의 고갈이 무척 심해 다른 일들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가끔은 사슬을 끊어야 할 모양이다.
주변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몸의 독소를 빼는 일을 해보라는 제안이다. 디톡스 다단계 판매의 영업 술인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가 영업하는 것이 아닌 서울 동생의 조언이라 하니 자신도 그 시험대에 몸을 맡겼고 꽤나 좋은 결과를 맞이했다는 주장이다. 웃으며 3일의 시간을 벌기로 했다. 평생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몸에 대한 충격을 주려한다. 3일간의 금식과 얄궂은 가루를 물에 타 먹기로 해본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시간이 늦어질까 적절한 타이밍을 정하기로 했다.
몸을 비우는 게 적절한 판단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음속의 혼란을 잠재우고 차분히 하루를 보내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조그마한 단초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마음의 혼란은 언제나처럼 몸을 망치는 일이니 말이다.
202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