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흘일기2_바람이 불면 겨울냄새가 난다

by 너구리

매일쓰는 일기가 되어야 하는데 생각대로 안될 줄은 알았지만 여전히 한자한자 써내려가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이제는 어느정도 이곳으로 출근하는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최소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부딪힐 일은 없다. 3명이서 시작한 추진단이 한명이 더 늘어 4명이 되었다. 그럼에도 올해 해야할 일은 아무런 진척이 없다. 남을 탓하거나 욕하기도 지쳐서 혼자서 사색에 잠겨야 하는 순간들이 계속된다. 굳이 내가 작심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하루종일 말없이도 수 있는 환경이다. 대신 확실히 예민해지는 것이 있다. 기후와 자연에 대한 반응이다.


어제까지 26도에 이르는 날씨덕에 곧 여름으로 내달릴줄 알았는데 갑자기 조석변개하는 하늘의 기운덕에 주춤한 마음이 생긴다. 와흘의 날씨는 특히나 그렇다. 중간산에 자리한 위치인데다 2층짜리 건물이기는 해도 주변이 둘러서 내려다 보이거나 멀리 한라산이 아스라하게 보이는 느낌으로 보면 여지없이 조용한 숲속이나 깊은 산속에 묻혀있는 기분이다. 실상 제주시내에서 20여분, 봉개에서는 10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그만큼 도심과 농촌의 분위기 차이는 두드러진다.


주변의 한적하고 농촌스러운 분위기로 인해 시간이 날때마다 주변을 돌아다닐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출근한 이후 한번도 주변을 마음먹고 돌아다녀본 기억이 없다. 역시 결론은 게으름의 소치다.


출근후 처음으로 리사무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사무실 바로 앞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가니 다 먹고나서도 시간이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대로 사무실로 직행해서 또 다시 컴퓨터 화면을 본다면 농촌마을로 출근을 하게되면서 보여주는 내 모습이 얼마나 위선적일까. 차로 길을 지나거나 외진 장소에 올때마다 이런곳에서 살게되거나 일하게 되면 얼마나 한가롭고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것인가를 무한반복해 왔지만 실제로 그같은 상황에 맞닥뜨리자 철저히 주변 환경을 외면하는 행태는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역시 잡은 토끼는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이곳에 안주하게 됐으니 언제든 주변을 걷거나 음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때문인지 너무도 무심할 만큼 주변을 둘러보고 다니지 않는다.


와흘은 제주에 내려와서 행정과 함께 처음으로 방문한 마을이다. 마을사업이라는 것을 진행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생각과 계획을 듣고 함께 논의했던 첫 자리이기도 하기에 늘 의미깊고 감회가 새로웠던 곳이기도 하다. 그 장소에서 근무를 하면서 그당시 보았던 예쁜 정원을 거의 2개월이 되도록 전혀 둘러보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


오늘은 천천히 걸어보련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음이 여전히 연못에 닿아있지 않다.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무언가 아직도 불안한 요소가 마음 한구석에 가득이다. 그 무엇의 정체를 찾아내야 한다. 직장생활의 틀이 더이상 안맞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뭔가 내가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아니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생각해도 여전히 자연은 배경화면에 국한되는 느낌이다. 천천히 생각해야한다. 연못안에 세워진 정자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여전히 가시방석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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