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흘일기3_강아지, 살곳을 선택하다

by 너구리

무미건조한 사무실의 시간을 보낸지 6개월이 되어간다. 매일같이 쓸것만 같던 일기가 6개월간 단 2건에 불과하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이정도로 과작을 하는 글쟁이는 아님에도 뭔가 하루의 일상을 쓸 일이 없어서가 아닌 게으름으로 글을 멀리하고 있다니.


한여름의 불볕더위위로 태풍이 불어 제끼더니 금방 가을이 된 듯하다. 그러다 다시 여름 날씨로의 회귀. 어느게 진짜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의 한치 앞도 마찬가지일게다. 관계를 맺는 것도 그렇고 인연이 맺어지는 방법도 뜻밖이다. 사람이야기가 아니다. 어느날 사무실로 찾아온 강아지가 인연의 주인공이다.


여느때와 같이 점심식사를 어찌할까 고민하는 평범한 날. 시내에서 약속이 없는 날이 드문 시절, 최근들어 매우 드문 경우지만 직원들과 함께 점심장소를 고민한다. 근처에 변변한 식당이라고는 한 두개가 전부인 지역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끼니를 해결하러 다니는 동냥아치 같은 기분이 들때가 종종 있다. 이날은 그것마저 귀찮은 날. 사무실에서 가장 자주가게 되는 식당을 선택한다. '메밀꽃제주'라는 와흘과 어울리는 식당인지라 메밀국수도 팔고 만두국과 김치찌게, 불고기구이 등 일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메뉴지만 손님은 늘 한가득이다. 다른 사람들도 찾다보니 갈데가 없어서 오게되는 가장 만만한 식당중에 하나일 게다.


직원중 한명이 병가로 궐석인지라 3명이서 천천히 대낮의 강한 햇볕을 받으며 식당으로 걸었다. 걸어봐야 2-3분거리인 식당인지라 주변에 둘러싸인 감귤밭이 언제쯤 주황색으로 바뀔지를 기대하면서 걷는다. 그 중간에 띄엄띄엄 중산간을 다니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한시간에 한대쯤 다니는 정류장이라 사실 정류장에서 버스를 보는 일이 흔치 않다. 버스정류장이라기 보다는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자 휴식의 장소라고 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정류장을 지나는 도중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 낑낑대는 하루강아지가 눈에 보인다. 저 녀석은 뭐지 기껏해야 막 젖을 띤 듯한 진짜 새끼 강아지다. 모든 것이 두려운지 경계의 눈빛과 애처로운 눈빛이 한가득이다. 순간 삐쩍 바른 몸뚱이와 얼굴이 여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바우와운가 하는 만화 캐릭터처럼 볼품없이 생긴 전형적인 제주 똥강아지스러운 녀석이 나름 소심한 자기 목소리를 낸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눈을 마주치거나 쓰다듬거나 하면 안될것 같다. 길을 잃은 것 같지는 않다. 버스정류장의 의자밑에서 낑낑대는 녀석이 동네 강아지일리가 없다. 돌아다니는 들개이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그냥 지나서 식당을 향하기로 한다.


"눈길주지 말고 밥 먹고 오는 도중에도 저녀석이 있으면 아는체 하자."


마음 여린 직원들을 다독이며 식당으로 향한다. 이래저래 밥을 먹고는 왔던 길로 다시 걷는다. 밥먹는 동안 강아지의 존재를 잊었는데 정류장앞을 지나자 그 녀석의 존재가 생각났다. 그대로 있으려나. 그대로다. 대신 같이 걷던 직원과 눈길이 마주쳤는지 슬슬 기어나오더니 사람을 따라오기 시작한다. 먹잇감을 물은 하이에나처럼 내 뒤를 쫒는다. 저리가라는 위협에 이번에는 옆사람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직원 한명이 잠깐 손길을 닿은 것이 계기를 마련해 준 때문인가. 녀석이 어떤 이유인지 우리들을 따라 걷는데 중간에 멈출 생각이 없다. 행길을 건너는데 차가 오고 있다. 부리나케 녀석을 몰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다. 그래도 여전히 뒤를 쫒는다. 와흘리사무소 안으로 들어오니 넓은 공터에 지세상을 만났다. 그럼에도 경쾌한 발걸음이 아니라 여전히 경계하는 눈초리와 배고프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만 돌아가라는 말을 하고는 있지만 모두들 조금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다. 돌아가라고 갈곳이 있을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이녀석을 어쩐다. 사무실이 있는 2층을 오르는데 녀석이 따라나선다. 웬만한 강아지들은 처음에 계단을 오르는게 꽤나 어려울텐데 녀석은 한두번 발길을 옮겨보더니 머뭇거림없이 2층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사무실앞에 다달았다. 문을 여는 순간 사무실안으로 들어온다.

20210923_151105.jpg <꺼리낌없이 2층 사무실 앞으로 걸어들어오는 강아지.>


모든게 끝이 났다. 녀석이 자신의 살 집을 선택했다. 누구 때문에 따라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자신이 어디에 붙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느낌이다. 사람들이 모질지 못하다보니 내칠수 만도 없는 노릇이다.

"유기견센터에 연락할까요?"

누군가 그런 물음을 던졌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다 입양이 안되면 안락사당할텐데."

일단은 임시보호를 하기로 결정했다. 녀석은 자신을 돌봐줄 인간과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고는 그 자리가 마치 자신의 원래 보금자리였던 듯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 다만 꼬리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지 아래로 잔뜩 내려가서 경직된 모습이다. 우선 무언가를 먹여야 겠다. 물을 먹이고 있지만 하루강아지에게 먹일 음식이 사무실에 있을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녀석의 행태를 살펴보기로 하고 서로간에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저러다 또 사라져버리면 그때는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을 터이니 자유롭게 방목하며 나다니게 하고 녀석이 돌아오면 내치지는 말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임시로 우유를 사다 먹이기로 했다. 헐레벌떡 숨도 쉬지 않고 한그릇을 뚝딱 다 먹어치운다. 언제 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던 강아지가 버스정류장 의자 밑에서 꼼짝 못하고 있을리는 없다. 누군가가 놓고간 유기견이 분명하다. 사람은 참 야속하다. 키울 수 없다고 내버리고 그나마 버스정류장이니 이런 저런 사람들이 다니면서 발견되라고 내려놓고 간것이 분명하다. 나쁜놈이다. 아니 년인가. 그게 뭐 중요하랴. 녀석의 살 곳을 스스로 선택한게 중요하지.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알리니 지인들이 들어온 생명은 내치는 것이 아니라 거두어야 한다며 이참에 키우라는 의견을 내비친다. 굳이 그런 이유때문이 아니라 사무실에 어린 강아지가 생기니 갑자기 조용하던 사무실에 생기가 돈다. 모두가 어찌해야 할 바는 모르겠으나 모두들 신경이 꽤나 쓰이는 눈치다. 당장 녀석의 먹거리와 잠자리가 걱정이다.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들이 거의 없어 잘 알지못하니 강아지용 통조림을 사다 우유와 먹이며 일단 방치하기로 했다. 내일 이 강아지가 남아있을지 자신이 없다.

20210923_151144.jpg <얼굴이 뾰족한게 제주견 같아 보이지는 않아 보이는 녀석과의 첫 조우시의 모습>

다음날 녀석이 사무실 앞에 나타났다. 어찌 알았는지 마당에서 놀다가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확실히 자신의 터전에 찜을 했다고 해야 하나. 리사무소 마당에 강아지가 생기니 앞집 아이들에게 놀이감이 생겼다. 갑자기 2층까지 올라와서는 강아지를 데리고 가버린다. 뭐라고 말은 못하고 녀석들이 키우겠다고 부모를 졸라 좋은 가정에 입양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한가닥 기대를 해본다.


퇴근 무렵이 되자 아이들이 강아지를 놓고 가버렸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금요일 오후다. 주말에 녀석이 지낼일이 걱정이다. 어찌하든 아이들이 데리고 놀아줄 것 같기는 하고 그럼 간단한 먹이는 줄텐데 나머지 시간에 대한 강아지 먹이가 걱정이다. 주말이 고비인것은 분명하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한 후에 녀석이 모습을 나타낸다. 반갑다고 해야하나. 코가 꿰었다고 해야하나. 일단은 사무실과 리사무소 안마당을 자신의 터전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주말에 어쩔 수 없이 잠깐 들렀을때는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었는데(근데 내가 왜 이녀석을 걱정하며 주말에 사무실에 들러야 하지?) 그래도 무사히 생존해 있다는 점에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이름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로 하자. 직원 한 명이 와흘의 대표작물인 메밀로 하자고 한다. 너무 밋밋하다. 더 직관적인 이름이 생각났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타났으니 네 이름은 '버스'다. 암놈이니 '스양'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사무실에 식구가 늘었다. 채용공고를 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와 업무대신에 살 집으로 삼았다. 걱정이 산더미다. 뭘 어찌해야하나...




keyword
이전 04화와흘일기2_바람이 불면 겨울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