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4_일이 생활이 되어버렸다
일이 생활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추진단에서 나름 큰일을 벌렸다. 제목은 <제주 밭 한 끼>. 누구나 먹는 채소 그중 제주에서 키워내는 채소만으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대외적 선전포고였다. 왜 이런 일을 하냐고? 일이니까. 그것보다도 제주에서 키워내는 채소들이 전국에서 가장 생산량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더불어 그 사실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슬프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제주산 야채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알고 있다. 최근에야 제주 당근이 가장 유명한 대표작물이 되었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당근, 월동무, 브로콜리, 양배추, 메밀이 전국 생산 1위이거나 1~2위를 다투는 작물들이다. 제주 사람들도 잘 모른다. 알든 모르든 그냥 생산해서 중간 도매상에게 넘기거나 농협을 통해 판매하면 되는 일들이다. 가격이 좋을 땐 좋지만 과잉생산이 되면 밭을 갈아엎는 일은 수시로 발생하는 일들이다. 특히 대농들의 경우 가격의 변동폭에 예민하기에 1만 원 받던 가격이 천 원을 줄 테니 넘길 테 면 넘기시오 하는 말도 안 되는 경우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해결하러 나선다고. 에이, 그건 아니고.
그런 일반적인 유통을 하는 농부들 말고 다양한 품종을 기르는 농부들의 비율이 제주에는 40% 이상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저런 밭에 여러 작물을 심어 온라인으로 팔기도 농부장 등 개별적인 유통을 하기도 하고 나름 고군분투하는 농부들이 많고 작물들도 사실 넘쳐난다. 근데 이런 작물들을 어떻게 하면 유통의 흐름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제주의 밭에서 나는 무수한 많은 작물들이 막연히 좋다는 것 말고 구체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중요한 도전 한 가지는 제주 밭작물이 사이드 메뉴(반찬 등)가 아니라 주식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이 과제와 문제의식이 <제주밭 한 끼>라는 캠페인의 기본 문제의식이었다.
11월 말에 크게 2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김녕의 식당을 빌어 그곳 셰프와 파인다이닝을 실시했다. 제주 5대 밭작물만으로 코스요리를 만드는 일이다. 이틀간 총 150명에 달하는 인플러언서들과 초대손님, 그리고 온라인 신청자들을 받았고 매 식사시간마다 온전히 제주산 야채로만 만든 6가지 코스요리를 손보였다. 나는 이날 행사의 호스트로서 매 타임마다 사업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 있게 제주 밭작물만으로도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맛있는 식사를 강요(?) 했다.
MBC방송 https://youtu.be/cdYSLPL28J8
"진짜 풀떼기만 줄거라?"
"돌아가면서 고기국수 한 그룻 먹고 가야하켜."
다른 인플루언서나 육지출신사람들 말고 제주 출신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고를 떠나 야채만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밥이나 반찬 어딘가에 고기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식사가 되냐는 생각이 팽배하다.
실제로 위의 두 가지 말투는 이틀간 파인다이닝을 진행하면서 제주 출신의 초대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행정의 국장이건 대변인이건 혹은 공사의 대표나 관계자이건 그 같은 의구심은 원초적으로 내재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초대자리에 얼굴을 비추는 제주식 행사참여의 관례에 따랐다. 간곡히 참석을 요청하기도 했거니와 국비로 사용되는 프로젝트이니만큼.
오늘 이글이 <제주 밭 한 끼>라는 캠페인을 소개하는 글이기도 하지만 사실 채식주의자도 아닌 내가 채식의 트렌드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주위의 권고와 판단에 따라 진행한 행사였다. 이날 파인다이닝의 음식들은 진짜로 맛이 있었다. 야채라는 사실만 인지하지 않으면 전채와 메인요리, 후식까지 제대로 된 식사였으니.
자신의 식사시간을 마치고 나가는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이거 또 언제 해요. 이 음식들 어디 가면 먹을 수 있어요? 그 음식들을 그대로 먹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부 후식과 전체요리는 캠페인 이후 그 레스토랑에서 고정 요리로 자리 잡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아주 관심이 있어하는 몇 가지는 너무나 많은 손이 가야 했기에 그리고 단가가 조금 쎄기때문에 채산성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고 전한다.
캠페인은 대 성공이었고 전국적인 미디어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도내에서도 관심이 컸고 내가 일하는 추진단의 입지도 어느 정도 좋아지게 됐다. 그러나 사실 이 행사는 내게 야채만으로 식사를 한다는 어려운 주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이 주제에 천착하는 한 나는 제주야채라는 소재와 어떻게든 연결된 수밖에 없다는 무언의 운명적 만남을 강요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했고 야채가 메인요리가 되는 방식 또 하나가 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이후로도 다른 팀들과 제주밭에서 나는 야채를 가지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상품생산 즉 밀키트와 가정간편식, 혹은 다른 류의 상품들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인가 야채가 나름 굉장히 익숙한 분야가 돼버렸다. 생전 요리 한번 해본 적인 없는, 물론 라면 끓이기 같은 거 제외하고, 나에게 조금씩 야채에 대한 거부감 대신에 식사의 중요 부분으로 차지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