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Dec 21. 2022

3. 뭘 먹어야 하지?

채식주의지가 될 수 있을까3._냉장고 털기

얼떨결에 던져본 채식선언을 지켜야 한다. 뭐부터 하지? 뭘 먹고 뭘 먹지 말아야 하는지? 캄캄하다. 우선 냉장고를 열어본다.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결정하기로 한다. 당장 저녁식사부터 해결해야 한다. 얼마 전 지인이 건네준 말고기가 냉장고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음... 이건 물거너 간 음식이고. 계란이 눈에 보인다. 굳이 안 먹어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계란도 거들도 보지 않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 집에서 달걀을 삶아놓고 간신으로 먹었다. 나름 이상한 음식을 먹지 안으려고 고구마와 계란을 쪄서 다른 과자류를 멀리하려던 계획이었다. 삶은 계란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손이 가서 곧잘 활용했던 음식이다. 


지난번 육지 탐방 다녀왔을 때 사 가지고 온 치즈가 아직 남아있다. 치즈라... 갑자기 맛이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냉장실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음식은 콜라다. 탄산음료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그래도 제로콜라와 제로 사이다가 새롭게 출시되면서 당뇨가 있는 나로서는 나도 가끔은 탄산음료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로 쾌재를 부르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림의 떡이다. 단맛을 멀리하기로 했으니 한 박스 사다 놓은 제로콜라가 남의 음료가 되는 순간이다. 아직까지 그 음료에 손을 대고 있지 않으니 잘하고 있는 것이겠지. 


냉동실 문을 여는 것은 사실 어떤 결과를 자아낼지 뻔히 알기에 겁이 먼저 난다. 여름철이 지났지만 가끔가다 불현듯 입이 궁금해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냉동고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거야 계절 탓을 하고 넘길 수 있다. 문제는 다른 한쪽이다. 알면서도 괜히 가슴이 찔린다. 당연히 냉동 만두가 여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쯤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호떡이다. 프라이팬에 구워먹으면 좋으련만 그 안에 유혹할 수 없는 설탕 덩어리의 달콤함과 한가운데 호두 알갱이가 화룡정점을 찍고 있는 걸 알지만 지나치게 설탕 덩어리임을 알기에 한 번 먹고는 나름 멀리했던 음식이다. 그 곁을 지나다 보니 에어프라이에 넣고 돌리면 기름기 가득하면서도 매운맛의 닭날개와 닭봉이 나를 언제든 기다리고 있다. 이것도 꽤나 많이 먹었었는데 이제는 그만 인연을 멀리해야 한다. 아마 아들이 내려오면 나머지를 먹어줄 테지. 그때가 언제가 될 런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을 두고 냉장고 본래의 기능대로 보관해주어야 한다. 즉석식품은 언제나 먹거리가 애매할 때 식사 대용으로 손쉽게 대체했던 먹거리다. 이제 그것들과 좋으나 싫으나 이별이다.


솔직히 아직까지 미련이 남는 것 중 한 두 가지가 남아있다. 해산물을 안 먹는 것이 옳은지는 여전히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홈쇼핑에 주문을 해놓고 채 소비되지 않은 간장게장과 고추장 게장이 하나씩 남아있다. 언제가 먹을 날이 다리 오려나. 잘 모르겠다. 내 결심이 무너지면 아마 제일 먼저 게장을 꺼내 밥과 함께 먹으리라. 그리고는 냉동실에서 켜켜이 쌓여 구이 혹은 조림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생선, 즉 갈치가 있다. 지난가을 오랜만에 갈치낚시를 가서 남들 4~50마리 혹은 70마리까지 잡는 동안 열심히 뱃멀미를 하며 구토와 싸워가며 잡아온 갈치들이다. 윗집 지인 어머니가 손질을 해 주셔서 반나누기를 하고는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던 물건. 한 번인가 구워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당분간은 저 녀석과도 이별이다.


그렇게 냉장고 털이를 하고 나니 내가 손대지 않던 야채칸의 물건들만 남았다. 그중 일부야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만 그동안 아내가 반찬을 하기 위한 내용물이었지 내가 저것들을 주식으로 삼으며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던 차라 약간의 당혹감이 앞선다. 저들과 굳이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좋으나 싫으나 친해져야 한다. 내 식사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굳힌다. 



"근데 다 좋은데 저것들을 매 끼니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하냐고? 난 요리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인간인데. 뭘 먹고살아야 하나?"


갑자기 냉장고에 먹다 남은 마지막 찐 고구마 생각이 났다. 지난번에 고구마를 찌다가 잠이 들어 찜기를 홀라당 태운 기억 속의 고구마다. 바닥 한켠에 탄 흔적이 선명한 놈이다. 그래도 한 개 두 개를 먹다 보니 마지막 하나 남았다. 오늘은 어떻게든 저 놈하고 친하게 지내야 할 판이다. 


아무런 대안이 없지만 주변에서 말로는 많이 도와준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씩 나타나고 있으니 그들을 믿어보며 식당을 소개받고 식사에 대한 작은 관심을 갖기고 한다. 여전히 뭘 먹고 사느냐는 오리무중이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1. 내 몸 상태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