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_1
어느 날인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이없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 곧바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으니 이를 바로 아내에게 알렸다. 아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말한다.
"알았어. 그럴 수 있도록 요리와 다른 것들은 준비해 줄게"
뜻밖의 상황이지만 이왕 엎지러 진 물이다. 시도해보는 수밖에.
물론 나는 그런 선언을 한 다음날 사업 미팅이 있었고 그 미팅 후 점심식사로 설렁탕을 먹었다. 작심 하루도 안 되는 행동이다. 그래도 채식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채식주의가 아니다.
그럼 뭔데?
난 생존을 원한다.
죽어가는 내 몸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단순한 생존이 어쩌면 곧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내가 사는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죽는 암은 아니라지만 방치하면 죽을 뻔했던 암수술을 받은 지 3년 반이 지난 시간이다. 그동안 별 탈없이 지내왔지만 현상적인 측면에서 암세포를 제거했으니 정기적으로 주변으로 암세포가 번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검사를 받는다. 6개월에 한 번씩 뼈 촬영을 하고 MRI를 찍는다. 몸의 다른 곳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별일 없었다. 검사 결과 암이 다른 조직으로 전이된 결과는 없었다. 하지만 피에서 나타난 수치는 암세포를 찾아내지는 못해도 몸속 어디선가 암세포로 전이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는 수치가 나왔고 결국 호르몬 치료를 선택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치료를 조기종료 하 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방사선 치료를 2달간 매일 받았다.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호르몬 치료만으로도 몸은 황당하게 망가진다. 여성의 갱년기와 아주 동일한 증상을 겪는다.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며 열이 나고 땀이 주르륵 흐르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몸이 식는다. 몸의 상태가 왠지 불안하고 안정이 되지 않는다. 해매일 겪는 이런 경험은 농담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이모니제이션'의 결과라고 말을 하곤 한다. 이모화가 진행되었다는 의미로 쓴 말이니 성 정체성 상실에 대해 스스로에게 조롱의 말을 건네는 중이다.
그 사이에 내 몸은 다른 방향으로 많이 망가졌다. 암 진단과 함께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이자 아무나 막걸리는 당뇨가 왔다. 수술 전 피검사로 알게 된 당수 치는 그 후 병원에서의 극단적 처방을 진행했고 안정적인 약을 통해 관리 중이지만 상황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먹지 말라는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었고 당 수치는 평상시 약을 먹어도 당뇨환자로 분류되는 수치까지 나빠지고 있었다. 3개월이나 6개월마다 만나는 의사에게 혼쭐이 나곤 했지만 잠시 긴장한 며칠을 제외하고 나면 나의 생활은 변함 없이 그냥 그랬다. 피검사를 하면서 잠시 좋았던 적이 있으면 그다음 검사에서는 여지없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 결국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과로 등이 겹치면서 몸의 리듬이 완벽히 깨졌다. 한 달 반이 넘도록 밤에 잠을 못 자고 밤거리를 헤매다 지쳐 집에 돌아와 쓰러져 한두 시간 잠드는 상태를 지속했다. 낯에는 그동안 밀린 일과 과도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느라 계속 몸을 돌렸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1년이 다됐다. 여전히 수면제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행히 수면제의 강도를 조금씩 줄이고 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당 수치가 극도로 나빠져 예정되지 않은 시간에 병원을 찾아 강도 높은 혈당약을 처방받았다. 그럭저럭 당 수치는 최대치를 꺾으며 다소 가라앉는 듯했지만 여전히 해결이 안 되는 점이 하나 나타났다. 중성지방이 기준치보다 3배 이상 높다. 의사가 내게 묻는다.
"검사 전날 술 드시건 아니에요?"
"아니요. 안 먹었는데요"
"이런 수치가 나오려면 2가지 경우밖에 없는데. 전날 술을 마셨던가 과일을 많이 먹던가. 여자분들이 이런 경우가 가끔 있죠."
"술은 안 먹었으니 후자의 경우일 가능성이 있네요. 제가 과일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의사는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관리를 잘하라며 처방전을 내리고 진료를 마쳤다.
이후 3개월이 지난 게 약 2주 전이다. 나는 의사에게 혼날 각오를 하고 진료실을 찾았다.
의사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일이 있는 거죠?"
"네?"
"공복혈당 수치도 나빠지고 당화혈색소도 안 좋아지고 다른 피검사도 다 그렇고 정상적인 범위에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요?"
나는 당연히 그러려니 생각하고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의사에게 혼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통과의례였기 때문이다.
'이런 수치가 어떻게 가능하지? 이거 설명이 안되네. 술 마신 것도 아니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의사가 나에게 말을 꺼냈다.
"어떻게 이런 수치가 나올 수가 있을까요? 지난번에 중성지방 수치가 3배가 넘는다고 주의하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심각해요. 13배가 넘어요."
"네?"
"기준치가 150인데 이 XX 씨는 1920이에요. 이러면 곧 췌장이 망가져 췌장염이 걸려요. 그다음은 더 나빠져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고요."
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남기며 약을 바꾸자고 처방을 내린다. 약의 종류가 늘었다. 중성지방을 잡아야 한단다.
난 이날 나오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과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아님 다른 무언가를...
무엇보다도 췌장염과 이후에 이어질 췌장암은 무서운 소리였다. 솔직히 지난해 사촌형님이 췌장암으로 고통 속에서 일찍이 돌아가셨고 장인 어른 역시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셨는지를 알고 있기에 겁이 났던 것이다.
내 몸은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체중은 1년 사이에 5kg 이상이 늘었고 식욕은 식탐으로 변했으며 약 없이는 잠을 못 자고 늘 피곤해하며 오십견이 와서 여전히 양쪽 팔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 중이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 것인가. 잘 모르지만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다. 물론 여전히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나는 최근에 희망사항 몇 가지를 품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체중을 줄여야겠다. 체중이 줄지 않는 한 나의 몸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맞는 옷이 없어서 가을부터 바지들을 모두 새롭게 사들이고 있지만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수면제 없이 잠을 청하는 호사를 누려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가능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온 책상에 널려있는 각종 약들을 줄여보고 싶어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감기몸살 약, 사실은 아내의 코로나 처방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면제를 먹었다.
내 몸에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와중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