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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02. 2024

느닷없는 일기 5_서울 도심을 걷다

인사동과 종로거리를 헤매다

도시의 길거리를 걷다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적이 있었던가. 평생을 살면서 멋진 산과 바다, 경치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연습이 필요 없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반면 도시를 거닐다 갑자기 도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은 잘해볼 일이 없다. 늘 똑같거나 비슷하다는 생각은 물론 그다지 기록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 와서 무언가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할 때 당시의 이미지 기록이 한두 가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그럴 때면 그 시점의 사진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설사 하루 중 몇 장의 기록이 남아있더라도 그 시점의 감정과 후에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순간과는 너무도 다른 감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필요로 하는 풍경도 확연이 다르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서울의 한복판을 거닐었다. 어스름 저녁부터 하루를 지내고 난 아침나절에 다시 한번. 얼마만이던가. 서울에 올라오는 일이 띄엄띄엄해졌다. 서울 집으로 올라오던 게 2-3주 만에 한 번씩에서 두세 달만의 한 번도 힘들고 6개월의 한 번도 될까 말 까다. 그것도 병원에 가기 위한 방문이니 더더욱 서울의 거리를 거닐어 보기 힘들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 중심가의 평일저녁거리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코로나19 시절이 마지막 기억이었을 테니 사람들은 생기가 없고 모든 표정이 마스크 안으로 숨어들었으며 서로에게 의식적으로 멀어지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거리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그렇게 거리는 생동감을 잃었다. 그 기억 속에서 2년이 흘렀다. 지난해 봄부터였으니 어쩌면 1년 남짓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바라본 서울의 거리는 경기의 황당한 망가짐 속에서도 생기 넘치고 발랄한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곳곳을 채우고 있는 북적거리는 모습이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너무나도 흔하게 외국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점이다. 국제적인 도시가 확실히 되긴 된 모양이다.


나는 인사동 거리를 좋아해서 서울에 가면 늘 그곳을 들른다. 물론 병원을 찾는 일정이 없는 경우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잠깐이지만 익선동의 좁다란 골목들도 왔다 갔다 하며 이유 없는 배회를 즐기곤 했다. 특별한 이유? 그런가 없다. 복잡함 속에 잠시 머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낙원상가 밑의 고깃집에 덜컥 자리를 잡았다. 수없이 많은 고깃집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터라 더 나아가 정신을 잃기 전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빠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만큼 먹거리의 양은 잘 별 볼 일 없이 적다. 내가 사는 제주도라고 별거는 없지만 고기의 양이 이렇게 적었나 싶을 정도로 몇 점 주워 먹으면 고기가 동이 나는 아쉬운 양적 진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앞뒤로 가득 앉아서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다시 한번 상대방의 말을 되묻는 과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신이 나서 저녁을 먹었건만 이제야 7시 30분이 넘었을 뿐이었다. 이제 저녁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시간이건만 벌써 파장이 다가오고 나니 서울의 거리를 느끼고 싶어졌다. 낙원동에서 나와 익선동 입구인 종로3가역을 지나다 보니 너무나 많은 고깃집에 수많은 테이블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의 북적거림이 온 공간을 가득 메우고 나니 다시 한번 그 분위기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웃음 한번 띄우고는 수많은 인파를 뒤로 한채 종로거리를 건넌다. 이 골목은 종로바닥 번화가의 끝자락에 해당된다. 단성사와 피카디리가 영화관의 명성을 뒤로한 채 커다란 부동산 임대 업으로 수많은 사무실과 업소들을 가득 채운 멍청한 빌딩이 되어버린 현실을 인식하며 내가 얼마나 오래전 인물인지를 다시 되새긴다. 


"그 당시 피카디리와 단성사는 만남의 광장이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빌딩 중 하나에 불과하구나"


혼자 말을 되뇌며 종로를 지나 청계천에 이른다. 청계천에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청계고가 시절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도심이 되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청계고가 철수 이후 청계천 복개를 반대하던 상인들이 지금은 어떤 입장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청계고가 옆에 놓였던 건물이 당시에는 참 별 볼 일 없이 보였건만 지금은 시내 최고의 입지가 되었을 터고 빌딩 역시 새옹지마의 운명이 느껴진다. 


청계천으로 내려가 걷다 보니 옛 기억들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였던가. 잘 모른다. 그저 과거의 다른 모습이 연상되는 묘한 상황이 내가 이곳의 이방인임을 다시 한번 깊게 각인되는 순간이다. 물이 흐르는 계단에 앉아 상대편과 멀리 빌딩의 한복판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본다. 무엇이었던가. 내가 청춘을 바쳐가며 이 서울에서 살던 시절 나는 무엇을 위해 발버둥거렸던 것일까. 그리고 지금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옛 추억을 되새기는 뒷방 늙은이 티를 내는 이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 젊은 시절로 가고 싶은 걸까. 못다 이룬 꿈을 꾸던 시절로 가고 싶은 걸까. 어쩌면 서울이 나의 고향인 것은 아닐까. 종로나 시내에 나오게 되면 결국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는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던 그 시기가 생각나는 걸까. 그럼에도 그 시절이 나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일까.

이같이 허망한 밑도 끝도 없는 추억을 향한 망상의 지속은 종로 뒤편의 거리에 이르러서는 최고치에 이르렀다. 종로주단이 있던 골목은 여전히 술집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삐끼들은 여전히 호객행위를 하고 외국인들이 이곳저곳을 서성이는 모습이 너무 자주 뜨인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처음 유흥가라고 나와서 거닐던 거리였던 게 종로서적 뒤편 이곳 종로주단이 있던 거리였으며 그 옆으로 영어를 배우겠다고 어학원에 등록하며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나왔던 거리이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과 희망이 없이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조금씩 준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회상하고 있다. 회상하고 싶지 않다. 그냥 다시 한번 그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종로서적이 예전의 그 자리가 아니라 종각지하상가 궁평동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듯 아무런 방문객 없이 출입구가 닫혀있는 모습을 보며 꼭 나와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원래 시작했던 낙원상가와 인사동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겠다. 이곳은 너무 조용하니 철시한 느낌이다. 아직은 철시하고 싶지 않은 게다. 조금만 더 돌아다닐까. 그렇다고 나에게 남는 거라고는 발바닥으로부터 전해오는 묵직한 피곤함 뿐일 테지만 오늘은 왠지 그 무거움이 삶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가볍게 날아다니고 싶은 마음 한 가득이다. 부질없으면서도 가끔은 회상질은 무거운 머릿속을 망각의 시간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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