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팔로스를 떠나기 전
다음 주면 에콰도르로 간다. 동경 125도의 동티모르에서 서경 78도에 위치한 에콰도르까지 가기 위해 유럽을 거쳐 서쪽으로 203도를 돌아 여행하게 됐다. 태평양을 지나면 160도만 가면 되긴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항공권을 끊다 보니 그렇게 됐다.
동티모르에서도 가장 동쪽인 로스팔로스에서 출발하여 딜리 - 발리 - 싱가포르 - 프랑크푸르트 - 바르셀로나 - (7시간 휴식) - 보고타 - 키토 도착. 그리고 다시 키토 - 보고타 - 바르셀로나 - (5시간 휴식) - 취리히 - 싱가포르 - 발리 - (10시간 휴식) - 딜리 - 로스팔로스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비행기는 총 12번 타고 환승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100시간이 훌쩍 넘는다. 너무 훌쩍 넘어서 정확한 시간은 따로 계산 안 해봤다.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냐 묻는다면, 즉 왜 직항이나 1,2회 경유편을 이용하지 않느냐 묻는다면 그런 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런 건 없다. 일단 딜리에서 나갈 수 있는 외국도시가 세 군데뿐이다. 발리, 싱가포르, 다윈. 이 중에서 대부분은 싱가포르를 거쳐야 하는데, 딜리-싱가포르 항공편도 운항이 잦지 않고 가겨도 비싸다.
그리하여 머리를 굴리고 수백 번의 검색을 거듭한 결과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티켓을 따로 끊으면 가격이 더 싸다는 걸 발견했다(마드리드도 되고, 도쿄도 되고 암스테르담도 된다. 다만 바르셀로나 편이 좀 더 싸고 시간이 잘 맞았다). 이런 예약 방식을 '분리발권'이라고 한단다. 그냥 통으로 끊고 체크인도 한 번만 하면 되는 '예약발권'보다 불편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같은 거리라도 총 항공료가 더 쌀 수도 있다. 당연히 안 그런 경우도 있고.
그런데 발리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가려니 직항보다는 또 경유편이 더 싸다. 그래서 경유 2회 추가. 바르셀로나에서 키토까지 역시 경유편이 더 싸다. 그래서 경유 1회 추가. 이런 과정을 거쳐 딜리-키토 항공편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티켓값 대비 1200만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시간과 고생 추가는 덤.
어쨌든 이렇게 세계를 반주하게 됐다. 반만 돈다. 나머지 반은 나중을 위해 킵해놓을 예정이다. 만약 십수 차례의 비행기를 타고서도 살아 있을 수 있다면 환승하기 위해 들르는 공항의 인상기를 차례로 써볼까 한다. (알랭 드 보통은 히드로 공항에서만 7일을 지내며 글을 썼지만 나는 8군데의 공항을 들르며 글을 쓸 예정이니 내가 이겼다! 이건 예정만으로도 충분히 이긴 거다!)
첫 번째 관문은 로스팔로스에서 딜리 가는 일이다. 자동차로 약 5시간 정도 걸리지만 시외버스를 타면 승객을 태우기 위해 빙빙 돌기 때문에 지난번엔 14시간 걸린 적도 있었다. 수 차례의 비행기 탑승보다도 더 걱정되는 로스팔로스-딜리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