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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May 16. 2017

딜리에서 키토까지 공항인상기 #1

작은 공항만의 매력, 동티모르 딜리 국제공항

지난 4월, 에콰도르로 놀러 갔다왔다.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에콰도르 수도 키토까지 비행기 여섯 번을 타야했다. 싼 티켓을 찾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거친 여덟 개의 공항을 생각하며 인상기를 남겨보려 한다. 


드디어 발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에콰도르까지 총 여섯 번의 비행기 중 첫 번째 비행기다. 물론 로스팔로스에서 딜리로 오는 시외버스에서부터 여정은 시작됐다. 음악과 돼지와 먼지가 함께한 7시간을 뚫고 딜리에 도착했고 이제는 딜리를 벗어나 인도네시아 군도 위를 날고 있다. 둥둥 거리는 음악도 없고 돼지도 없고 먼지도 없는 하늘을.     


동티모르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딜리 공항은 무척 작다. 취항 노선도 적고 그러니 이용객도 적다. 하루에 많아야 서너 편의 노선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부대시설도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버스터미널이라고 부른다.      


동티모르 입국할 때 한번 이용한 것 외에는 딜리 공항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이번엔 출국이 목적이니 공항에 미리 와서 머무르며 찬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아니, 실은 공항 건물 옆 버거킹 2층 자리에서 상추가 떨어진 탓에 패티와 빵과 마요네즈만 넣은 햄버거를 먹으며 활주로를 구경하기만 했다. 그랬다. 그게 좋았다. 옆 건물 2층에서 공항 활주로를 한 눈에 담는 것. 그게 가능한 공항이라 좋았다.  마침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온 비행기가 갓 착륙하여 승객을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비행기는 승객들을 맨 활주로 바닥에 부려놓았고 사람들은 열심히 걸어 공항 터미널로 들어가고 있었다.      


딜리 공항에 다시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에콰도르를 향한 아주 긴 여정의 첫 관문이기 때문이었다. 전체 여정이 너무나 멀고 길어서 딜리에서 발리까지의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은 그저 마을버스를 타고 광역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딜리 공항은 그런 착각에 딱 어울리는 공항이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체크인을 해야 했다. 딜리 공항은 체크인 카운터가 다른 공항처럼 외부에 있지 않고 엑스레이 짐 검사대를 한 번 거쳐서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나중에 보니 발리 공항도 그랬다). 그래서 입국할 때는 못 봤던 모양이다. 처음 본 체크인 카운터도 참 단촐했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그곳을 보고는 노량진 수산시장이 떠올랐다. 딱히 수산물 냄새가 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노량진 수산시장 자체보다는 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식당 건물이 떠올랐다. 7,80년대의 낡은 티를 간직하고 있으며 아무리 깨끗하게 쓸고 닦아도 먼지 한 톨 치워지지 않는 그런 곳. 비슷한 곳으로는 옛날 옛적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가 있다. 두 군데 모두 지금은 리모델링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노량진 수산시장이니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니 하는 오래된 건물을 떠오르게 하는 딜리 공항이 무척 좋았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 죄악시되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를 지닌 탓일까.      


체크인 카운터 바로 옆에 있는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후 몇 걸음만 지나면(정말로 단지 몇 걸음만) 순식간에 단 하나뿐인 탑승 게이트가 나오고, 그 게이트가 열리면 승객들은 마치 외국 정상순방길에 오르는 대통령마냥 택시웨이를 직접 걷고 계단을 올라 비행기에 들어간다. 손은 흔들지 않는다. 배웅 나온 장관들이 없으므로. 참, 면세점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본 기억이 없다. 아, 뭘 보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본 바로 그 작디 작은 매대, 남부터미널 청주행 게이트 옆에 있는 매점 같은 그 매대가 면세점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사실 그 역할과 기능을 따지자면 공항은 단출할 수 없는 곳이다. 당장 격납고의 정비 시설만 하더라도 시내의 카센터와는 차원이 다른 작업을 할 것이고 관제, 출입국 시스템, 세관 절차 등 온갖 기술과 행정 시스템이 집약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딜리 공항의 겉모습은 무척 단출하다. 사람들이 터미널 같은 공항이라고 비웃는다. 심지어 나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겉모습이야 어찌되었든 공항은 공항이다. 아무리 허술해보여도 항공권 한 장 없이는 게이트나 활주로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실은 공항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airside라고 불리는 제한구역을 품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공항이다.      


그러나 딜리 공항은 특유의 단출함 덕에 자신의 은밀한 구역을 슬쩍 드러내준다. 옆 건물 2층에 올라서기만 해도 자신의 활주로 속사정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소박함은 딜리 공항만의 매력이다. 활주로 위 아름다운 구름들은 덤이고. 작고 소박하고 낡고 허술한 딜리 공항은 이렇게 또 하나의 비행기를 다른 나라로 띄워 보냈다. 매일 그렇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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