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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May 21. 2017

[동티모르 이야기] Mai ita kanta

6개월만에 독립기념일 리코더 공연을 하다. 

작년 11월 28일, 로스팔로스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중앙정부에서 주관하는 독립기념일 행사를 로스팔로스에서 한 것이다. 독립기념일마다 각 Municipio(주)에서 행사를 여는데, 중앙정부 주관 행사는 매년 지역을 달리하면서 개최한다. 이날에 우리 학교 아이들이 리코더 공연을 하기로 했다가 당일에 무산이 되어 아이들이 크게 실망한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https://brunch.co.kr/@jetiti/11에 쓴 적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허무하게 공연을 못하게 되어 선생님들 나를 위로한다고 '내년 5월 20일 독립기념일에 또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5월에 딜리에서 떼뚬어 교육을 받는 기간에 독립기념일이라고 하루 휴일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또 11월 28일 독립기념일 행사를 했으니 매년 두 번씩 독립을 기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독립과 관련한 기념일이 총 세 개다. 하나는 5월 20일, 정식 명칭은 Dia da Restauração da Independência인데,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여 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또다른 날로 8월 30일(Dia da Consulta Popular)이 있다. 이날은 1999년 인도네시아로부터 완전 독립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치주로 남을 것인지를 국민투표에 부친 날이다. 11월 28일은 1975년에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날이다. 정식 명칭은 Dia da Proclamação da Independência인데, 독립선언일이라고 번역되는 듯하다. 


지난 5월 초 교장선생님이 이번 행사 때도 공연을 해야 되니 준비를 해달라고 말했다. 물론 작년에 일어난 일을 서로 아니까 교장선생님이나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이나 비교적 신경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행사장까지 아이들을 태울 트럭(여기서 안구나Anguna라고 부르는)도 빌려놓았다고 했고 주청에 가서 공연팀 등록도 확실히 해두었다고 했다. 반면에 내 입장에서는 정작 아이들을 연습시킬 시간이 별로 없었다. 2학기 개학하고 한달도 채 안되는 시기에 독립기념일이 있는 데다 학교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연습 기간이 1주일도 채 안되었다. 다행히 작년에 연습해둔 것을 아이들이 잘 기억하고 있어서 준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준비한 곡 다 반주 음원에 맞춰서 연주하는 거라 더 부담이 없기도 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반주 음원이 별로 신통치 못했다). 


사실 내딴에는 다른 걱정이 있었다. 바로 위의 반주 음원을 트는 문제였다. 일단 동티모르에서는 이런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으니 음악을 어떻게 트는지, 과연 틀 수는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준비해놔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딱 떨어지는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 나름대로 하나는 USB에 파일로 담고 핸드폰에도 넣어서 준비해갔다. 


행사 당일 아침 선생님과 공연하는 아이들과 함께 안구나를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 다행히 도착해서 음향장비를 확인해보니 내 핸드폰과 믹서를 연결해서 음악을 재생할 수 있었다. 다만 곡이 세 곡이어서 내가 직접 조작을 해야 할듯했다. 


첫 순서는 국기게양식이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느라 광장에 도열해있던 학생 두어 명이 쓰러지기도 했다. 다행히 지역보건소에서 의료인력이 와있었다. 의외로 준비가 철저하다. 하긴 이런 동원 행사를 워낙 많이 하니 이런 건 당연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 9시부터 시작된 국기게양식이 한없이 늘어지고 국기게양식이 끝나고도 경찰들의 무술시범, 줄다리기 등등의 체육행사를 했다. 언제 호명될까 싶어 정렬해있던 아이들도 기다리는데 지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때 갑자기 사회가자 리코더를 현지에서 부르는 말인 플라우따!Flauta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모아서 중앙 단상 앞에 줄을 세웠다. 


이때 첫번째 멘붕. 나는 당연히 단상을 등지고 관중들을 보게끔 해서 세워놓았는데, 줄을 다 세우고 음악을 틀러 믹서 앞으로 가는 동안 교장선생님이 단상쪽에 앉아있는 주빈들을 보게끔 바꾸어놓았다. 어쩐지 줄을 세우는 동안 아이들이 머뭇머뭇한다 싶었다. 어쨌든 이렇게 설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도 멘붕이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외국인 선생님이 줄을 이상하게 세워서 멘붕이었을 테다.


핸드폰에 선을 연결하여 반주 음악을 틀었다. 생각보다 음악 소리가 컸다. 아이들이 반주에 맞춰 연주를 시작하자 음악 소리를 조금 줄였다. 내쪽에서는 리코더 소리가 영 크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연주가 점점 빨라졌다. 두번째 멘붕. 평소에도 조금 빨라지는 경향이 있긴 했는데 이때는 긴장해서 그런지 연주가 다 끝나고도 반주가 한 소절은 남을 만큼 안 맞았다. 두 번째 곡에서는 음악을 조금 크게 했다. 그래도 미친듯이 빨랐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반주를 그냥 껐다. 마지막 세 번째 곡은 잘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서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들 앞으로 갔다. 그러니까 주빈석과 아이들 사이에 반 무릎을 꿇고 나름 지휘를 하려 한 것이다. 현지인들은 무슨 퍼포먼스인 줄 알았을 것이다. 첫 곡과 두 번째 곡에는 안 보이던 외국인이 갑자기 나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연주를 시작했는데, 아뿔싸, 음악이 거의 들리질 않았다. 가까스로 시작 부분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만 들리고 리코더를 불기 시작하니 음악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못 맞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도 저어보고 '하나 둘 셋 넷!'도 외쳐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퇴장하는데 아이들 표정이 안 좋았다. 서로를 탓하기도 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탓하기도 했다. 사실 연주 자체는 잘 했다. 반주 음원이랑 빠르기가 안 맞은 게 문제였을 뿐이다. 구경하던 현지인들은 정작 아무것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실망했다. 계속 너희들이 정말 잘 했다고 말해주었지만 지난 11월 28일부터 시작된 6개월의 기다림이 허무하게 끝난다고 느끼는 듯했다. 덩달아 나도 미안했다. 아이들이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상황을 확인하고 여건을 만들어줬어야 했다. 물론 현지 선생님들이 더 도와줬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들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 도와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약간은 허탈하게 다시 안구나에 탔다. 좀 더 행사 구경을 했어도 좋았겠지만 교장 선생님은 그저 할 일을 다 했으니 얼른 집으로 가자는 듯 안구나를 다시 불러서 애들을 태웠다. 나도 거기서 아이들의 실망감을 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굳이 반대하지 않고 같이 안구나에 탔다. 그냥 뒷 짐칸에 지붕이 없는 1톤 트럭이어서 아이들과 선생님 30여 명이 뒤에 서서 갔다. 덜컹거리는 트럭 위를 위태위태하게 서서 버티고 있을 때 갑자기 아이들이 우리 학교 이름인 Filial Tres!를 연호했다. 마치 축구팀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옆을 보니 다른 학교 학생들을 태운 다른 안구나가 지나갔다. 그냥소속감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이 외침이 갑자기 흥겨운 노래 대잔치로 전환되었다. 독립과 관련된 동티모르 노래를 한 곡 목청껏 부르더니 내가 가르친 노래도 신나게 부른다. 90년대 한국의 초등학교 운동회 응원석에서 쉬지 않고 동요와 만화 주제가를 부르던 풍경이 떠올랐다. 그냥, 이유없이 아이들의 기분이 좋아졌고 나의 기분도 좋아졌다. 공연의 결과에 대한 실망감은 더이상 없었다. 그저 트럭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 좋았거나 아니면 다른 학교 아이들은 할 수 없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기뻐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그냥 고마웠다. 아이들 스스로 잘 넘겨낸 것 같아서.


아이들에겐 주빈과 관중들 앞에서 했던 공연보다 트럭 위에서 멋대로 불렀던 노래가 더욱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히 그럴 것 같다. 로스팔로스 들판 위에 울려퍼진 목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학교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린 아이들의 표정은 무슨 대회 우승이라도 한 것 마냥 밝았다. 지난번 어른들이 뿌린 실망과 한을 마침내 풀어내기라고 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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