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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Nov 30. 2016

[동티모르 이야기] 실망하는 사람들, 실망시키는 사람들

동티모르의 '대실망쇼'

  

9월이었다. 우리 교장이 내게 11월 28일 동티모르 독립기념일 행사 공연 준비를 부탁한 것은. 교장 말로는 우리 상위학교 교장이 시켰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든 춤이든 준비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학년에서 30명 정도를 뽑아 리코더 반을 만들었다.   

  

10월이었다. 그 행사가 대통령도 오는 중앙 정부 행사라는 것을 안 것은. 내가 물었다. 이렇게 큰 행사인데도 우리가 발표하냐고. 교장이 아마 그럴 거라고 했다. 아직 초대장이 오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긴 하다고 했다.     


할지 안 할지 모르는 공연을 위해 나는 애들을 데리고 리코더 연습을 했다. 수업 끝나고도 하고, 휴일에도 나와서 하고. 얘들아, 발표를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아마 할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해, 대통령 앞에서 발표하는 너희들은 참 좋겠다, 얼마나 행운이니. 아이들은 그저 다른 친구들이 구경도 못 해본 악기를 연주하게 됐으니 너도 나도 자랑하고 다닌다.      


11월 28일이 다가올수록 아이들 기대는 점점 커지고 나는 불안해졌다. 혹시 발표를 안 할까봐가 아니라 정말로 할까봐. 내 능력으로는 그만한 행사에 오르는 게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공연을 못 하게 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왕 못 하게 될 거면 미리 알았으면 했다. 무엇이든지 화려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동티모르 사람들의 특성상 실제로 공연을 하게 되면 일이 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2,3일에 한번 거듭 교장에게 물었다. 우리 정말 공연하나요? 초대장은 아직 안 왔지만 아마 할 거예요. 정말로요? 정말로요.     


어느덧 11월 26일이 되었다. 이 날이 최종적으로 공연 여부를 알게 될 날이었다. 학교는 임시휴업일이었지만 선생님들 모두 출근해서 아이들 복장이나 행사일에 몇 시에 모일지,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등을 의논하기로 했다. 그런데, 안 왔다. 누가? 교장이. 전화? 안 받는다. 선생님들 몇 명만 왔다. 결국 행사일 이틀 전인데도 공연 시간이니 준비사항이니 하는 것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아봐 줄 사람도 없으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행사 전날까지 교장을 통해 공연 참가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고 학생들은 일단 당일 아침에 모여서 공연 여부에 따라 이동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거나 하기로 했다.


11월 28일 행사 당일. 나는 아침 8시에 학교에 갔다. 아이들은 벌써 와서 머리도 따고 볼에 국기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 이런 축제에 자기들이 나서서 뭔가를 발표한다는 데, 그것도 남들은 구경도 못 해본 리코더를 연주한다는 게 꿈만 같았을 거다. 아침부터 설레 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한국 애들이 에버랜드 소풍이라도 가는 날처럼 들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지 않았다. 아무도. 나만 애가 탄다. 혹시 공연 시각이 아침이면 어떡하지? 전체 행사는 이미 8시에 시작했다는데.     


9시. 비로소 선생님 한 명이 왔다. 내가 우리 참가 여부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교장은? 전화 안 받는단다. 알아봐 줘야 할 사람이 안 오고 연락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지금 선생님이 오토바이 타고 가서 행사장에 좀 가서 알아보면 안 돼요? 안 돼, 나는 안 갈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기다려야죠. 누구를? 교장을.     


이렇게 말하더니 설사 우리가 실제로 공연을 한다 해도 애들 태우고 행사장까지 갈 방법도 없단다. 차 빌릴 돈도 없단다. 애들 밥이랑 물 사줄 돈도 없단다. 날더러 방법이 있냐고 오히려 묻는다. 3개월 전부터 시켜놓고는 이제야 그게 생각났나 보다.     


아이들은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언제 가냐며 발을 동동 구르며 나한테 따지듯 물어와도 나는 "Hau la hatene(나는 몰라)"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급기야 내 별명이 '하우 라 하떼네'가 되어버렸다.     


10시. 선생님들에게 당신들이 안 갈 거면 차라리 내가 갔다 오겠다고 했다. 행사 담당자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냥 행사장 가서 아무나 붙잡고 EBF No. 3 de Lospalos 학교가 타임테이블에 들어 있냐고 물어보고 오겠다고 했다. 어떻게 가려고? 걸어서. 왕복 1시간 거리. 선생님이 쟤 참 애쓰네라는 듯 허허 하고 웃는다. 나는 굴하지 않고, 내가 갔다 올 동안 기다리느라 지친 애들은 집에 보내서 밥 먹고 오게 하자. 그리고 만약 우리 이름이 타임테이블에 있으면 차 빌리는 값이니 애들 밥값이니 내가 다 내겠다. 당신들은 그냥 집에 가서 찌그러져 있어라. 다 필요 없다. 그랬더니 그제야 다시 교장한테 전화해본단다.    

 

그런데 왜 교장은 그제야 전화를 받은 걸까? 내 귀에 도청장치라도 넣어놓고 내가 돈 낸다고 하니, 혹은 내가 알아서 다 움직이겠다고 하니 그제야 전화를 받은 걸까? 나의 각성을 기다려왔노라 하고는?

     

아무튼 전화를 받은 교장은 행사장에 있던 우리 상위학교 교장에게 다시 연락해본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이 행사는 중앙 정부 행사기 때문에 우리는 참여 못 한단다. 그러니 아이들을 그냥 집에 보내라.

      

왜 교장은 이제야 위에다 전화를 해본 걸까? 아니, 다른 건 다 둘째치고 왜 나와 아이들을 3개월 동안 뺑이 돌렸을까? 왜 상위학교 교장은 우리더러 시켜놓고 나 몰라라 한 걸까?     


같이 있던 선생님이 애들을 불러다 놓고 이야기했다. 너네 공연 안 한대. 이거 중앙 정부 행사라서 그래. 그냥 집에 가. 말투는 마치 니넨 왜 중앙 정부 학생이 아니라서 공연에 못 끼냐는 말투로.     


아이들이 집에 가면서 리코더를 돌려주며 말한다(내 사비로 사기도 했고 원래 공용으로 쓰려고 한 리코더라 발표 끝나고 돌려받기로 했었다). "Lakohi ona(이제 하기 싫어요)." 아이들 눈은 빨개지고, 나는 애들한테 잘못한 것도 없이 미안했다. 평소엔 너도 나도 달려들어 작별 인사를 하던 아이들이 그냥 생까고 집에 간다. 나도 화는 나는데 애들 앞에서 화를 낼 수가 없어 옆에 있던 선생님 들으란 듯이 말했다. "나는 잘못한 거 없지만 너무너무 미안해. 그러니 이 리코더, 그냥 너희가 가져."     


금방이라도 내게 화낼 것 같던 얼굴들이 금세 밝아졌다. 연신 고맙다며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신나게 뛰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화가 났다. 도대체 이 인간들(우리 학교와 상위학교 선생님들)이 원한 건 뭐였을까? 그냥 던져 놓고는 내가 다 알아서 하기를 바랐나? 그렇지만 내가 지금껏 봐온 바로는 절대 이렇게까지 무책임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니면 그냥 외국인이 신기한 거 가르쳐주니까 우리 학교 이름으로 자랑이나 해볼까 하다가 간만 보고 뒷감당은 나 몰라라 한 걸까?     


나는 한국에서 교직에 있으면서도 어린이 싫어하기로는 절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정말이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설렘을 엉망진창 망쳐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적어도 어쩔 수 없이 망쳐 버렸다면 그에 상응하는 위로라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왜 내가 그 위로를 내 돈으로 했어야 했나. 당신들의 아이들 아닌가. 돈이야 십만 원이든 백만 원이든 아깝지 않다. 오늘 나보고 아이들 삼십 명분 밥을 사라고 했어도 샀을 거다. 날더러 노래는 뭘 불러야 하니 내가 번역한 가사가 이상하니 훈수 두던 선생님들 오늘 코빼기도 안 보였다. 도대체 아이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 있었던 걸까 없었던 걸까. 있었더라면 왜 이제와 나 몰라라 한 것이며, 없었더라면 공연 준비는 왜 시킨 걸까.     


그렇게 아이들은 집에 갔다. 나도 터벅터벅 집으로 갔다. 몇몇 아이들은 실망감에 집에 가서 서럽게, 혹은 숨죽여 울고 있을 거다. 싸구려 리코더로도 어찌할 수 없는 실망을 감당해야만 하는 그들의 끔찍한 하루가 슬프다. 실망하는 일과 실망시키는 일은 전 세계 어디서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법이지만 언제나 그 뒷일을 감당해야 하는 건 실망하는 사람의 몫이다. 실망시키는 사람은 실망시키는 자신의 행위로써 자신의 의무를 완수한 것 마냥 실망하는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들, 정말 큰 일을 했다. 30명의 아이들의 인생에 커다란 대못을 박는 일.     


동티모르라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사람들이 개도국민들의 특성 운운할 때마다 동의하지 않았다. 느리고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돈 밝히는 족속들 등등. 그건 그 나라 국민의 일반적인 특성이 아니라 그저 특정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개인이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다만 개도국의 특수한 상항이 개인이 지닌 그런 경향을 강화시키는 것뿐이라고. 개도국민 전체가 다 그렇다는 듯이 일반화해서는 안 되고, 또 그런 일반화 때문에 차별과 경멸의 시선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교장과 선생님들이 단지 동티모르 사람들이라서 무책임하게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들에게 그날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도 아직 모른다. 이 일이 있은 후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이 날 도저히 업무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이해를 다 시도해본 다음에도 나의 실망 역시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이 실망은 다른 동티모르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판단의 일반화로 치닫는다. 실망시키는 사람들은 그 행위의 영향이 엉뚱한 사람에게 간다는 걸 모른다. 실망하는 사람들은 늘 실망하고 만다. 이 일로 나도 그들에게 실망했고, 앞으로는 겪어보기도 전에 믿지 못하고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저 전에 한번 실망했다는 이유로. 슬프게도 이 고리를 깨부수려면 시간과 노력이 좀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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