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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Aug 27. 2016

어떤 책을 읽고 쓰는 글

요즘 전자책을 사용하고 있다. 전자책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전에 가끔씩이라도 쓰던 독후감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다. 독후감을 쓰려면 책을 좀 뒤적이면서 생각을 되새김질해야 하는데 전자책은 그게 영 힘들다. 전자책은 검색이 가능하니 더 유용하지 않은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독후감을 쓰는 데 검색 같은 건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냥 아무 페이지나 주르륵 넘겨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단을 만난다. 읽었는데도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괴로워하며 다시 책을 뒤적이면서 그새 잊어버린 글뭉치들을 다시 불러온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을 주로 쓰곤 했다. 전자책으로는 잘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전자책을 이용한다. 동티모르에선 한국어로 된 종이책을 쉽사리 구할 수 없으니 전자책으로라도 읽는 수밖에. 이럴 줄 알고 처음 들어올 때 종이책을 몇 권 가져오긴 했다. 일부러 오랜 시간 읽으려고 두꺼운 것만 골랐다. 종이책의 위력은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종이책은 그 두께만으로도 감히 책을 펴보지도 못하게 만든다. 가져온 책이 너무 두꺼워서 저걸 읽다 보면 나의 동티모르 생활이 저 책 한 권으로 끝날 것만 같다. 2년 후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펴보기나 할지는 영 모를 일이다.


'전자책이 나은가, 종이책이 나은가'하는 논쟁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듯하다. 대체로 둘 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읽어야 책이지 안 읽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차라리 '전자책은 종이책을 사라지게 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좀 더 고민해볼 만하다. 사실 이 문제도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니긴 하다. 아직 내가 읽지도 못한 종이책이 지천에 널려있고, 그걸 다 읽기 전에 나는 죽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는 전자책으로든 종이책으로든 무슨 책을 어떻게 읽을까를 생각할 일이다. 


내가 늘 꿈꿔온 독서 방식이 있다. 방에는 큰 창문이 있다. 낮에는 햇살이 한 가득 들어와 따로 전등을 켜지 않아도 된다. 약간은 허름한 나무 책상에 책을 펴놓고 옆에는 역시 허름한 노트 한 권을 둔다. 책을 읽으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상념을 노트에 적어둔다. 영어가 아닌데도 글씨는 따로 배워야 쓸 수 있는 필기체 같다. 때로는 그림도 그린다. 어떤 페이지에는 피카소 뺨 때리는 추상화가 있으며 다른 페이지에는 의학 서적을 방불케 하는 해부도도 있다. 그렇게 책에 관한 또 다른 책을 써가며 한나절 책을 읽는다. 


그런데 실상은, 내게는 큰 창문이 딸린 방 같은 건 없고 차 마실 작은 책상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지 못한다. 벽에 등을 기대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 없다. 책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버스 뒷자리다. 좌석 등받이에 파묻혀 한 5분쯤 읽다가 잠들 때의 기분은 세상을 다 가진 것과도 같다. 그런 상황에서 독서 노트를 꺼낸 들 뭘 쓰랴. 그저 버스 타서 자리에 앉으면 책부터 꺼내 들어 읽거나 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 벽에 기대어 몇 페이지 읽을 뿐이고,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남아돌 때야 오후쯤부터 침대 한 구석에서 읽다 말다를 반복하곤 한다. 가까스로 한 권씩 떼어낸다는 기분으로. 그마저도 여기선 버스를 탈 일이 없으니 요즘 내 독서 장소는 오로지 침대뿐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떼어내려고 종이든 전자든 손에 집어 든다. 


앞에도 말했듯 전자책이니 어떻니 종이책이 어떻니 하는 건 실은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종이책이 있으면 더 잘 읽을 것 같고 큰 창문이 달린 방이 있거나 허름한 책상과 노트가 있으면 더 잘 읽을 것 같다. 독후감도 마찬가지다. 저런 환경에선 독후감을 쓰기만 하면 불후의 독후감이 나올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전혀 없다. 환경이 어떻든 매체가 어떻든 그저 꾸역꾸역 읽을 일이다. 독서노트가 있든 말든, 책 내용이 기억나든 말든 꾸역꾸역 쓸 일이다. 쓰면서 뒤적이면 된다. 실은 전자책으로도 그렇게 못 할 건 없다. 익숙하지 않아서 안 할 뿐이지. 한 권씩 읽어 치워내듯이 한 장이라도 어서 써서 치워버리면 된다. 내가 무슨 논문이나 평론 쓰는 사람도 아니니 내 글의 퀄리티는 나 스스로 부끄럽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쓰기를 염두에 두고 읽을 때 더 잘 읽게 된다. 이건 내가 직접 체험한 바다.


실은 이 글도 어떤 책을 읽고 난 후 쓰는 독후감이다. 요새 책을 읽고도 아무 글도 쓰지 않은 탓에 오늘은 무엇이든 써야지 하고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두드렸다. 넋 놓고 보니 읽은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 되었다. 바로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다. 그렇지만 <소설가의 일>이 아닌 다른 책, 이를테면 <로마인 이야기>나 <모비딕>을 읽고 썼다면 이런 독후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전적으로 <소설가의 일>에 대한 독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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