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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Sep 18. 2016

처음부터, 신앙이 물음표로 머물러 있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5838

<뉴스 앤 조이>에 어떤 '가나안교인'의 인터뷰가 실렸다. 가나안교인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추측컨대 과거에 신앙을 가졌다가 지금은 방황하는 기독교인을 일컫는 듯하다.


이 사람, 인터뷰의 전반부는 내가 겪었던 똑같은데 후반부는 아니다. 나는 교회를 떠났어도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한 마디로 배교자다. 어쨌든 '너는 이번 주에 어떤 하나님을 만났니?', '하나님은 네게 어떤 말씀을 주셨니?' 같은 질문에 뜨악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몸 담아온 교회 공동체 사람들에게 '나는 신 같은 건 만난 적이 없소'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그런 용기는 없었다. 거꾸로 이 두려움은 또 다른 행동을 할 용기를 낳았다. 거짓말할 용기. 첫 거짓말은 중학교 1년 때 중고등부 수련회에서였다. 수련회 마지막 날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공개적으로 내게 물었다. 


"OO이가 만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니?" 


그 상황에서 '전 그런 사람 못 만났는데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이요."


거짓말이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건 설교와 교리 공부를 통해 배워 알았다. 그렇지만 그런 존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 생활 열심히 하는 착한 주일학교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실망시킬 용기 없어 거꾸로 거짓말할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고 나를 속여야만 했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목사님의 질문에 답하던 순간 내가 느꼈던 심장의 벌렁거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일생일대의 거짓말을 하면서 느껴야 했던 불안과 수치의 벌렁거림. 


물론 그때는 '아직' 어쩔 수 없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하나님은 나를 만나줄 것이며 아직은 내가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일 뿐이다. 다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신이 느껴지지 않음을 솔직히 말할 수 없으니 잠시만, 진짜 체험을 하기 전까지 잠시만 거짓말을 하자는 좋은 뜻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단 한 번도 나는 나 자신에게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네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니?'라는 질문에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소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믿음의 당위와 의심 사이에서 일종의 전쟁을 치렀다. 고등학교 기독교 동아리를 거쳐 대학에서도 기독교 동아리를 잠시 했다. 교회에서도 당연히 훌륭한 신앙을 지닌 학생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나 이는 나의 불행감을 감추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불행감의 원천은 나의 '불감증'이었다.  나는 신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믿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그걸 티 낼 수도 없었다. 이미 교회와 기독교는 내 삶의 기반이기도 했다. 그걸 부정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진심은 별개로 치더라도 눈에 보이는 행동(교회 일, 기독교 동아리 활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열심히 노력했다. 모두가 나의 믿음을 칭찬할 정도로. 그러나 행동은 믿음을 보증하지 못했다. 어느덧 나는 겉과 속이 다른 뼈속까지 거짓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믿음에 관해서만 속이는 게 아니라 감정도 속였다. 결국 속이는 게 삶의 태도가 되었다. 무슨 일에든 기뻐도 기쁜 티를 잘 못 냈다. 화가 나도 화를 못 냈다. 속을 드러내다가 신앙의 밑천을 드러내고 말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정말로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신앙인을 연기하는 자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다 (보통 간증이라면 이 대목에서 '그러다 울고 있던 내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따위의 문장이 나와야 하지만 이 글에는 그런 거 없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교회에서 나왔다. 어떤 계기가 있진 않았다. 나를 속이는 일이 너무도 역겨웠다. 느낄 수도 없는 무지의 대상에게 삶을 바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불경한 속마음을 드러내 놓고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신앙을 부정하면 나의 청소년기를 부정하는 셈이기도 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어영부영 붙잡고 늘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때려치울 용기가 생겼다.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도 더 만나게 되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생긴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싱겁게도 그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나이를 먹도록 그것 하나 결심 못 하는 인간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더는 못 해 먹겠다고. 28년 다닌 교회를 떠나는 건 그렇게 순식간이었다.

교회와 신앙을 떠나자 그제야 비로소 행복을 배웠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때에야 나를 속이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내 마음 한 구석을 끈질기게 붙잡고 질척거리던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흔히 말하는 십 년 묵은 체증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 싶을 정도였다. 내 삶을 되찾았다. 불행이 와도 신의 섭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행복을 배웠다'는 건 덮어놓고 행복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행복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는 의미다. 행복하면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면 그만이고 불행하면 '나는 불행하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거기에 신의 뜻이라는 복잡한 함수까지 도입하는 건 내게 너무 벅차다. 그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 인생인데 말이다. 느껴지지 않고 만나주지 않는 신의 오묘한 섭리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즐기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결정의 가치는 충분했다.


작년에, 나는 무척 힘들었다. 신을 떠나 삶의 자유를 얻었다고 불행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항변이라도 하는 듯 힘든 일들이 1년 내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계속 교회에 있었다면 나는 정말 미쳤을지도 모른다. 신앙으로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그걸 내 마음속에 푹 눌러놓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을 게 분명하다. 물론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권장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속을 드러내다 불신이 드러날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미 그런 걱정을 떨쳐낸 나는 온몸으로 나의 불행을 표현했다. 세상은 정말 거지 같다며 불평, 불만을 있는 대로 했다. 거기에 신과의 인격적 만남 문제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저 내 갈 길, 살 길 찾으려 노력했다. 불행과 분투하는 동안 적어도 신이여 정말 살아계시나이까, 하는 문제까지도 떠안을 필요는 없었다. 그건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불행은 곧 지나갔다. 지나가면 잊히는 법이다.

정작 나는 기독교가 모두 허위고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악한 신일 것이다 따위의 주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마음 한 구석에선 기독교의 교리가 진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여호수아 때 해와 달이 24시간 동안 멈춘 사실을 NASA가 증명했느니 예수 믿으면 부자 되느니 하는 그런 멍청한 소리만 안 한다면 모두의 신앙을 존중한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그런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 사실을 인정하고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일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나와 같이 심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있다. 교회와 공동체가 책망할까 봐 혹은 그들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 자신을 속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맘 한구석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다. 신이 아무리  위대해도 우리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는다. 혹은 신을 믿는 형제자매들이 대신 살아주지도 않는다. 인생은 사는 자의 것이다. 믿음이 없다고 괴로워말자. 우린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까. 억지로 하지 말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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