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희 단편소설 「낫이 짖을 때」를 읽다가
구설수 단상: 세이브 파일을 날린 게임 방송 스트리머처럼
— 김덕희 단편소설 「낫이 짖을 때」를 읽다가
“스승은 분명히 백성이 임금을 살찌우고 있다고 썼으나 문하생이 글자 하나를 바꾸는 바람에 임금이 백성을 살찌우고 있다는 문장이 돼 버렸다고 했다. 문하생은 그 대목에서 스승이 실수를 하여 위험한 글을 남긴 게 우려돼 고심 끝에 바로잡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스승은 대노하여 그를 꾸짖었다. 제 흠을 덮으려 스승을 음해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김덕희 지음, 「낫이 짖을 때」, 『급소』, 문학과지성사, 2017, 131쪽)
단편소설 속 ‘문하생’은 불행히도 “글자 하나를 바꾸는 바람에” 흠씬 매질을 당하고 스승에게 쫓겨난다. 과연 원문은 무엇이었을까. “백성이 임금을 살찌우고 있다”와 “임금이 백성을 살찌우고 있다” 중 옳은 쪽은 뭘까. 스승의 오기(誤記)는 과연 실재하였을까. 문하생은 “제 흠을 덮으려 스승을 음해”하고자 거짓을 고했을까. 아니면 정말로 교열을 했던 것일까. 스승은 제자의 파문을 후련히 여길 것인가, 못내 꺼림칙하게 속에 담아 둘 것인가. 문하생은 죽도록 억울할 것인가, 후회막급하며 뉘우칠 것인가. 사제지간을 파탄에 이르게 할 만큼 글월에 적힌 ‘백성’과 ‘임금’의 순서가 그리도 중차대한 문제였을까. 그 뒤바뀜이 몰고 올 문젯거리는 인간 관계의 싹을 잘라 내서라도 예방해야 할 절대적 파국이었을까. 성난 스승과 매맞는 동료를 바라보는 다른 문하생들은 뭐라고 뒷말을 주고받을 것인가. 그들의 뒷공론은 어떻게 각색되고 또 어디까지 바람결에 실려 세인들의 귀에 가 닿을 것인가.
소설가 김덕희가 그린 이 짤막한 장면은 실로 공포 그 자체다. 작중 의도와 무관한 다소 뚱딴지같은 감상일지 모르겠는데, 작품 속 스승과 문하생 이야기는 현실의 생활인들이 겪는 각종 구설 스트레스를 떠올리게 한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상대가 오해해서, 하지도 않은 말이 풍문으로 돌아서 누군가의 울화를 돋운다. 일단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뒤에는 구설의 가부가 무의미해진다. 교실에서 도둑으로 몰렸던 학생이 이후 또 다른 분실물의 절도 용의자로 지목되듯. 임금이 백성을 살찌웠든 백성 덕에 살쪘든 상관없이 한 사람의 존재는 타인들에게서 ‘심리적 열외’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소설 속 문하생의 입장을 상상해 본다. 인간 관계든 사회적 평판이든 다 끝장난 상황. 이제 어쩔 것인가. 다시 스승님을 찾아가 해명 또는 석고대죄를 해야 하나? 동료들을 붙잡고 애고대고 하소연이라도? ⋯⋯부질없는 일이다. 이미 매를 맞아 버렸고 버림받았다. 매맞고 버려지던 모습이 타인들의 눈과 뇌리에 이미 각인된 상태다. 한 사람에 대해 굳어진 이미지는 쉽게 초기화되지 않는 법. 제아무리 억울병을 호소하고 사죄를 하고 넋두리를 늘어 놓아 봤자 ‘매맞고 버려졌던 사람’이라는 인물평만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역시, 매맞고 버려졌다더니, 소문이 사실이었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는 없다. 출방을 출발로 삼기. 문하생이 지닌 패는 오직 그것 하나다. 마치 세이브 파일을 날린 게임 방송 스트리머처럼.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스포츠 경기 중계만큼은 즐거이 시청하듯, 내 경우는 게임기도 없고 ‘스팀’ 같은 게임 플랫폼 유저도 아니지만 게임 스트리밍 방송은 열렬히 챙겨 본다. 주로 ‘고전 RPG’라 불리는 1990년대 국산 롤플레잉 게임(⟨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포가튼 사가⟩, ⟨창세기전⟩ 등등) 영상을 좋아한다. 스트리머가 끝판왕을 깨기까지는 게임 시나리오에 따라 짧게는 대여섯 시간, 길게는 수십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전 RPG 스트리밍 방송은 일일 연속극처럼 10부작, 20부작 등으로 장기간 이어진다. 왕왕 방송 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제일 심각한 것이 바로 컴퓨터 오작동으로 세이브 파일이 날아가는 일이다. 극강 난이도를 자랑하는 ‘던전’을 겨우 정복하고 ‘보스전’까지 마친 상황. 갑자기 PC가 문제를 일으킨다. 스트리머는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고 게임을 종료했다가 다시 실행한다. 그런데 세이브 파일이 안 보인다. 몇 번을 재실행해 봐도 세이브 파일은 온데간데없다. 망연자실한 스트리머. 덴겁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실시간 시청자 수는 뚝뚝 떨어지고⋯⋯. 스트리머가 결연히, 그리고 조금은 뻔뻔함을 가장하며 선언한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함께해 주실 거죠?
방송 초반의 시청자 수가 회복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엔딩’까지 끝끝내 남는 이들이 늘 있다. ‘레벨 30’만큼의 ‘플탐’을 깨끗이 잃고, 분연히 ‘뉴 게임’ 버튼을 누르는 스트리머. 또 한 번 ‘레벨 1’이다. 센스 있는 스트리머는 남아 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약속한다. 자, 다시 하는 김에, 아까 ‘스겜’ 하느라 건너뛰었던 ‘히든 아이템’들을 전부 ‘겟’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번 판에서는 주인공의 모든 필살기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기대 바랍니다!
「낫이 짖을 때」의 문하생이 자기 삶의 ‘리겜’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임금이 백성을 살찌웠는지 백성이 임금을 살찌웠는지와 두들겨 맞고 축출된 기억과 자신을 둘러싼 세간의 수군거림 일체를 ‘날려 버린 세이브 파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의 거듭될 레벨 1이 한방에 일군 ‘만렙’보다 더 다채로운 ‘스킬’을 보장하리라 격려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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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희 소설집 『급소』 읽기
글 임재훈(작가, 디자인 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