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히어로임에도 모자라 ‘슈퍼’이기까지 한 캐릭터들. 총탄에 맞아도 끄떡없고, 어마어마한 자본가이며, 트럭 한 대쯤 쉽게 던져버리는 괴력을 자랑하고, 하늘을 날아오르는가 하면 은하계로 순간 이동을 하기도 합니다. 마블(Marvel)이라는 코믹스 브랜드가 창조한 이 슈퍼히어로들은 단어 그대로 초인이며, 지상의 나약한 소신민들에게는 구원(salvation)과도 같습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토르는 “나는 신이다”라고 두어 번 말하기도 하지요. 방정맞은 자인이지만, 공인된 사실이기도 합니다.(본래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천둥신, 정말로 ‘신’이니까요.) 그런 그와 언쟁을 벌이거나 파티를 즐기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블랙위도우, 호크아이 등은 신적 존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범한 캐릭터들입니다. 요컨대 토르는 인간 히어로들과 절친한 사이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신(토르 자신)과 동등한 위치로 설정시켜주는, 신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마블은 마치 21세기판 그리스로마 신화를 그려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현실 세계에도 어벤져스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종교적 구원일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마다 저마다의 종교가 있고, 그에 따른 구원의 독트린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신적 존재가 이 세상에 재림하리라는 예언, 그러한 정언명령을 신앙인들은 신실히 믿으며 현실화의 순간을 희원합니다. 마블과 DC코믹스를 필두로 한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들이 폭넓게 사랑받는 이유는 어쩌면 소시민들의 구원 희구 본능을 스크린에서나마 충족시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으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슈퍼히어로들―어벤져스 멤버들의 신성에 흠결을 냅니다. 덕분에 캐릭터들은 더욱 인간적으로 묘사되고, 이야기는 복잡하게 전개되지요. 당연하지 않은가요. 신의 세계는 확정적이지만, 인간의 세계는 불확정적이니 말입니다. 풍성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시종일관 신나지만은 않은 까닭입니다
이 같은 음울함을 형성하는 극적 요소들은 영웅들의 어두운 과거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캐릭터 스칼렛 위치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내면 저변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토니 스타크, 스티브 로저스, 브루스 배너, 나타샤 로마노프, 토르는 그녀로 인해 오랫동안 마주하기 두려워 했던, 그래서 회피했던 스스로의 그림자를 목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서로에게 털어놓기까지 하지요. 그룹테라피 같기도 한 이 과정을 거쳐 어벤져스 멤버들의 단결력은 보다 견고해집니다. 잠깐, 한 사람이 빠졌군요.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빠졌습니다. 코드네임 호크아이, 클린트 바튼입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주제를 상징하는 핵심 캐릭터로 주저 없이 이 사람을 꼽고 싶습니다. 프롤로그 격인 하이드라 기지 습격 시퀀스를 떠올려보지요. 적진의 수장이 어벤져스 멤버들 가운데 가장 약한 녀석을 집중 공격하자고 말할 때, 여러분은 누구를 떠올리셨는지요.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호크아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블랙위도우, 비전, 퀵실버, 스칼렛 위치, 호크아이. 개별 전투력(혹은 살상력)만으로 서열을 매긴다면 호크아이는 하위권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본가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니며, 신은 더더욱 아닌,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물입니다. 이런 면면은 블랙위도우와도 엇비슷해 보이는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둘의 차이가 극명히 대조됩니다. 블랙위도우가 가진 진짜 능력은 놀라운 격투 실력과 지략이라기보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는 자조(self-deprecation)가 아닐까요. 이런 내적 결함은 그녀의 호전성을 배가시키는 요인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영웅성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처럼 적극적이지 않으며, 어벤져스의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범위에서만 발휘되는 모양새입니다. 그녀는 요원 사관학교에서의 '졸업식'을 회상하며 자조 섞인 말투로 "효율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하지요.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인지하고 있으므로, 주체성을 띈 도덕적 모티브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연인 브루스 배너에게 무작정 떠나자고 보채는 모습은 더없이 그녀다운 행동이지요.(물론, 다른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블랙위도우 역시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마주한 뒤 내적 성숙을 이루며 능동적인 ‘히어로’로서 활약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호크아이는 블랙위도우와 어떻게 다른가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통해 확인되는 호크아이의 내밀한 능력은 다름 아닌 가족입니다. 어벤져스 멤버들 가운데 유일한 유부남이었음이 이 시리즈에서 밝혀지는데, 이러한 범속성은 오히려 호크아이를 돋보이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인 그는 자신의 안식처로 어벤져스 멤버들을 피신시켜놓고 돌보아줍니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그의 성정은 집 안에서조차 발발되는 멤버들의 다툼마저 다 품지요. 멤버들 또한 그런 호의를 잘 알기에 거친 언쟁은 삼가며 행동을 조절합니다. 울트론과의 최후의 전투에서, 잔뜩 겁에 질린 스칼렛 위치를 독려한 캐릭터 역시 호크아이입니다.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그는 가히 신적 존재라 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 캐릭터들보다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더 나아가 그들 모두를 알게 모르게 보위하는 것입니다. 스칼렛 위치의 염력에 걸려들지 않은 유일한 멤버로 호크아이가 설정된 점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가족과 인류를 위해 투쟁하는 그의 주체적 정서는 그리 쉽게 타인에 의해 조종될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호크아이의 휴머니티야말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백미입니다. 이 영화가 그리는 슈퍼히어로들의 영웅성 혹은 신성은 호크아이의 휴머니티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서적 결함이 비범과 평범의 균형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지요. 아니, 오히려 어벤져스 멤버들의 비범함은 호크아이의 평범함에 귀속됨으로써 영화 속 "함께(Together)"라는 구호의 설득력을 강화합니다.
호크아이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주체성은 공격적이고 압제적인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희망으로 읽힐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저 엎드려 구원과 구세주를 바라는 미숙에의 탈피를 촉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며, 자신의 범속성을 용감히 받아들이는 데에서부터 한 개인의 영웅적 모험은 시작된다는 낭만 어린 무용담이기도 합니다. 보통의 존재는 그렇게 슈퍼히어로가 되었다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평범한 관객들을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지요.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