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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에 대한 드라마적 담론

M.나이트 샤말란 감독 ⟨싸인⟩(2002) 이야기 구조 분석

by 임재훈 NOWer



신의 존재에 대한 드라마적 담론

— M.나이트 샤말란 감독 ⟨싸인⟩(2002) 이야기 구조 분석



알려드립니다 ①

[스포일러 주의] 영화 줄거리와 장면(캡처 화면)이 포함된 리뷰입니다.


알려드립니다 ②

2009년에 썼던 글을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2025년 2월 현재 시점과 맞지 않는 표현들이 있지만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이 글을 처음 발표했을 때의 시의성과 현장감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알려드립니다 ③

해당 글은 영화 ⟨싸인⟩의 이야기 구조를 분석한 텍스트일 뿐 필자 개인의 종교적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시작하며

영화 ⟨싸인⟩(2002)은 ⟨식스센스⟩(1999)의 전 세계적인 성공으로 주목받게 된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작품이다. 훌륭한 반전(反轉)극으로 호평을 거두었던 ⟨식스센스⟩ 이후 그의 행보는 한마디로 반전극 일로라 할 수 있다. ⟨언브레이커블⟩, ⟨싸인⟩, ⟨빌리지⟩, ⟨레이디 인 더 워터⟩, 그리고 ⟨해프닝⟩까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이 글이 분석할 ⟨싸인⟩의 반전은 필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인한 정서적 변화에 대해 딱히 부인할 방도가 없기에 필자 개인에게 ⟨싸인⟩은 특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군인들이 총기를 다루듯 지금부터 이 작품의 분석을 시작해 본다.



1. 플롯 분석


1-1. 폐쇄형식(closed form)의 선형적 플롯(linear plot)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현재(present day)이고, 공간적 배경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州)의 한 마을이며, 주동인물은 그 마을의 전직 신부(성공회)였던 그레험(멜 깁슨 분)이다. 그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종교생활에 회의를 느껴―신을 증오하게 되었기에―신부복을 벗게 된 인물이다.


그의 가족 구성원을 살펴보면 천식을 앓는 아들 모건, 주변의 모든 식수가 오염되었다고 믿는 딸 보,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그만 둔 경력이 있는 언청이 남동생 메릴까지 모두 비정상적인 면모를 띤다. 주동인물 그레험의 모든 행동의 동기는 이처럼 비정상적인 식구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가부장적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그레험의 집 근처 옥수수 밭에서 발견된 크롭싸인


TV 위에 먹다 만 물컵들을 올려 놓은 보. 그레험은 그런 딸을 나무란다.


어느 날 아침, 그레험의 집 근처 옥수수 밭에서 크롭싸인이 발견되면서 극은 시작된다. ⟨싸인⟩은 소위 ‘미스터리 서클’로 알려진 크롭싸인(crop signs)을 외계인들이 지구 침략을 위해 세계 각지에 새긴 일종의 이정표라고 규정한다. 뉴스를 통해 외계인들이 침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외계인들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려는 그레험의 일관된 액션은 결국 성공을 거둔다. ‘외계인의 침략’이라는 한 가지 주된 사건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진행되고, 부수적 사건들이 서사적 인과율로 구축되며, 행동의 동기와 목적이 뚜렷한 주동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싸인⟩은 폐쇄형식을 갖춘 선형적 플롯에 속한다. 아래는 극적 흐름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표 1


폐쇄형식의 구조를 가진 드라마의 결말은 앞선 사건들의 필연적 결과로 빚어진다. 이 작품의 경우, 발단에서 절정까지를 잇는 일련의 사건들은 주인공 그레험이 신앙심을 되찾게 되는 데 필요한 명분들인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드라마가 ‘외계인의 침략’이라는 중심사건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것과는 무관해 보이는 ‘신앙심의 회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종결부에 이르렀을 때 다소 어리둥절해질 수도 있다. 여태껏 드라마를 이끌어온 중심사건과 거기서 파생된 부수적 사건들이 일종의 장막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데에서 오는 충격과, 그것이 걷혔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전혀 새로운 실체와의 생경한 조우 때문이다.


이처럼 작품의 주제와는 상관없는 사건이나 사물, 혹은 인물을 마치 중요한 것인 양 교묘히 극에 배치시켜 관객의 주의를 끄는 기법을 맥거핀 효과(MacGuffin effect)라고 한다. 요컨대 ⟨싸인⟩은 대담하게도 드라마의 중심사건 자체를 맥거핀 효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동시에 크롭‘싸인’과 ‘신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싸인)’의 중의적 표현인 ‘싸인(Signs)’이라는 제목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단서를 제공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1-2. 거시구조 분석 및 갈등 규명: 아리스토텔레스적 구조 분석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들의 거시구조를 분석해 공통된 플롯 구조를 발견해냈다. 보통 사람보다 도덕적·신분적으로 월등한 인물이 ‘하마샤’에 의해 죄를 짓고, 나중에 그것을 인지하고 후회하다가 운명의 역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➀ 월등한 인간 → ➁ 하마샤(hamartia, 인간적인 실수) → ➂ 인지와 후회 → ➃ 운명의 비극적 역전


물론 비극에서의 ‘운명의 역전’이란 지상 최고의 행복을 누리던 주인공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싸인⟩은 결코 비극이 아님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이 플롯 구조와 잘 맞아떨어진다. 아래는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재구성해본 ⟨싸인⟩의 플롯 구조이다.


표 2


➃번 항목이 비극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바뀌었을 뿐 ⟨싸인⟩의 플롯 구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비극의 그것과 일치한다. 갈등 양상 역시 고대 그리스 비극과 마찬가지로 신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신을 섬기던 사람이 신을 증오하게 되는 상황만큼 비극적인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아내의 죽음을 ‘신의 탓’으로 돌린 그레험은 집안의 십자가를 치워버리고, 심지어는 “남은 인생의 단 1분도 기도에 낭비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즉 그는 신이라는 존재가 오히려 자신의 행복한 삶을 방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2. 인물 분석


2-1. 갈등 과정에 나타난 행동의 동기 분석: 액션의 심리적 동기


주동인물 그레험이 행하는 모든 액션의 궁극적 지향점은 ‘가족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인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고 현장에 그레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평소 습관대로 숲길을 산책 중이었고, 하필 그때 졸음운전으로 길을 잘못 든 이웃이 사고를 내고 말았다. 이 지점이 바로 그레험의 내적 갈등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당시 그레험은 신부였다. 신부 그레험의 행동 목표는 아마도 ‘(신의 가호 아래) 만인을 지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신은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지 않았다. 그레험의 이 같은 인식은 신에 대한 증오로 확장되어 결국 스스로 신부복을 벗는 행동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앞서 그레험이 행하는 액션들의 지향점이 가족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는데, 더 정확히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가 될 수 있겠다.


기도하고 먹어야죠.


내 인생의 단 1분도 기도하는 데 낭비하지 않을 거다.


신을 찬양하고 신의 가르침을 설파했던 그레험이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신을 부정하는 인물로 바뀌었다는 설정은 두 가지 외적 갈등을 야기한다. 첫째, 아직도 그를 신부로 기억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이다. 본인 스스로는 신을 부정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그를 신의 사제로 여기고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극의 대단원에서 다시 신부복을 입게 되는 그레험의 최종 행동을 염두에 둘 때 대단한 복선이 아닐 수 없다. 그레험이 겪는 마을 사람들과의 외적 갈등 자체가 일종의 신의 ‘싸인’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 싸인이란 ‘아무리 신을 부정해도 신은 존재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외적 갈등은 아들 모건 때문에 일어난다. 외계인의 침략으로 몹시 불안해하는 아들에게는 아랑곳없이 그레험은 최후의 만찬―그레험은 외계인의 침략이 세상의 종말이라 믿고 있으므로―을 준비한다. 식사 전, 모건이 기도할 것을 요구하자 그레험은 강하게 거부한다. 신의 개입 없이 오직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지키려는 액션이 자꾸만 신을 언급하는 아들과 부딪치는 것이다. 이 충돌은 이후 모건이 외계인의 독가스에 중독돼 의식을 잃는 장면을 부각시켜준다. 그토록 신을 찾던 아들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신을 증오하는 그레험의 심리적 상태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신이 아내에 이어 이제는 아들까지 빼앗아가려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제게 또 이러지 말아요. 제발요. 당신을 증오해요!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그레험이 신부였을 때의 액션을 공동체 중심(마을 사람들)이라 보고, 신부를 그만두었을 때의 액션을 (공동체 중심보다는 범위가 줄어든) 가족 중심이라 볼 때, 신을 믿든 부정하든 그레험의 액션은 비개인적이라는 일관적 성향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희생과 헌신이 기저에 깔린 그레험의 이 같은 인물상은 오히려 그를 가장 신과 닮아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신을 부정하면서도 신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고 있는 그레험은, 결국 온몸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2-2. 갈등 과정에 나타난 언어적 액션: 말행동과 인물


비록 신부복은 벗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레험을 ‘신부님’으로 여긴다. “신부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그레험은 “제발 신부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다음은 마을 약국에서 벌어지는 그레험과 직원 트레이시와의 대화 일부다.



트레이시

천식약 찾으시는 거 맞죠, 신부님?

(It was asthma medicine, right, Father?)


그레험

복용자 이름은 ‘모건 헤스’예요. 그리고 이제 신부 아닙니다.

(For Morgan Hess. And it’s not Father anymore.)


트레이시

뭐 하나 부탁 드려도 될까요, 신부님? 제 마음의 불안을 털고 싶어요. 들어주시겠어요?

(Can I ask you a favor, Father? I need to clear my conscience. Will you listen to me?)


그레험

트레이시, 나는 더이상 성직자가 아니에요. 그만둔 지 여섯 달이나 됐어요. 당신도 알잖아요.

(Tracey, I am not a reverend anymore. I haven’t been for six months. You know this.)


트레이시

TV에 나오는 거 있잖아요.. 여자애들 둘이 나와서 세상의 종말에 대해 얘기하는 거.. 전 그냥 좀 무서워요.. 제발요, 제 마음의 불안을 덜어내고 싶어요.

(All this stuff on TV.. two girls came in here talking about the end of the world..

I’m just a little scared.. Please, I need to clear my conscience.)


신부가 아님을 거듭 강조하는 그레험과 그러거나 말거나 고해(告解)를 하려 드는 소녀의 모습이 코믹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신의 가르침과 평안을 전해주었던 ‘신부 그레험’의 ‘액션’을 기억한다. 그들은 외계인 침략으로 마을 전체가 불안에 휩싸이자 과거 그레험이 자신들을 위해 행했던 공동체 중심적 액션을 다시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신부가 아닌 그레험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를 신부님이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액션은 명백히 개인 중심이다. 이렇듯 개인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마을 사람들의 인물상은 그레험의 비범함을 더욱 강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위 장면에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그레험은 결국 소녀의 고해성사를 다 들어주고, 가족과의 약속 시간에 늦고 만다. 신을 부정하려는 내적 행동과 마을 사람들에게 모질게 굴 수 없는 외적 행동이 상충한 결과이다. 그는 가족과의 약속 시간에 늦을지언정 소녀의 고해를 들어주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신을 부정하는 인물의 액션은 개인 중심이 되어야 옳다. 하지만 그레험의 액션은 여전히 공동체 중심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적 분석에 기대건대, 그레험이라는 인물은 신부복을 입었든 벗었든 ‘월등한 인간’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메릴

어떤 사람들은 이게 세상의 종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Some people are probably thinking this is the end of the world.)


그레험

옳은 생각이야.

(That’s true.)


메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Do you think it could be?)


그레험

그래.

(Yes.)


메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How can you say that?)


그레험

너가 원한 대답이 아닌가 보네?

(That wasn’t the answer you wanted?)


메릴

예전 모습처럼 굴 수 없어?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좀 해 줘.

(Couldn’t you pretend to be like you used to be? Give me some comfort.)


— 중략 —


그레험

너한테 단 한 번도 콜린의 유언을 들려준 적이 없었지. 그녀가 말하기를, “보라”. 그러고는 눈빛이 조금 흐려졌어. 또 말하기를, “휘둘러라.” 그녀가 왜 그렇게 말했는 줄 알아? 죽는 순간에 뇌기능이 일시적으로 활발해져서, 때마침 네 야구 경기에 갔었던 기억이 아내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거야.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 같은 건 없어, 메릴. 우리는 다 혼자야.

(I never told you the last words that Colleen said before they let her die. She said, “See”. Then her eyes glazed a bit. And then she said, “Swing away”. You know why she said that? Because the nerve endings in her brain were firing as she died, and some random memory of us at one of your baseball games just popped into her head. There is no one watching out for us, Merrill. We are all on our own.)


2인의 대화(duologue) 방식으로 처리된 장면이다. 동생 메릴의 대사 “예전 모습처럼 굴 수 없어?”를 통해 아내의 죽음 후 급변한 그레험의 심리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신을 부정하려는 그레험의 내적 행동은 말행동과 일치하고 있다. 종말을 논하는 시류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 같은 건 없어”라고 진술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어조로 표현되는 그레험의 대사들은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액션의 선언인 셈이다. 또한 극의 전환점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아내의 유언이 이 장면에서 처음 언급된다. 관객들로 하여금 “보라”, “휘둘러라”에 숨겨진 ‘싸인’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아래는 각 국면별 ‘결정적 말행동’이라 할 수 있는 대사들을 정리한 것이다.(표1 참조)


표 3



3. 시청각적 요소 분석


3-1. 시청각적 분석


⟨싸인⟩의 주제는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신의 메시지(싸인)는 존재한다. 즉, 신은 존재한다’이다. 그리고 이 주제는 극이 전환점에 이르기 전까지 철저히 장막에 가려져 있다. 그 장막이란 이 작품의 시청각적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레험이 크롭싸인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이 앵글 샷(High Angle Shot)으로 촬영된 거대한 크롭싸인의 전경은 관객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이 이 크롭싸인과 긴밀한 연관을 맺게 되리라는 예측을 하게 만든다. 여기에 극의 중심 사건인 ‘외계인의 침략’까지 더해지면서 관객들은 점차 ‘크롭싸인과 외계인’이라는 극적 ‘틀’ 안에 순순히 들어가고 만다. 그 틀 안에서 관객들이 인식하는 영화제목 ⟨싸인⟩이란 ‘외계인이 만든 크롭싸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내의 유언이 바로 신의 메시지(싸인)였음이 밝혀지는 전환점에서 장막은 걷히고, 관객들을 가둬두었던 틀도 깨진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주제와 당면한 관객들은 적잖이 놀랄 것이나, 그 놀람이 극적 개연성을 획득할 수 있는 까닭은 극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삽입되었던 그레험의 회상 장면―아내의 임종—때문이다. 다소 갑작스러운 극적 반전의 순간에 관객들은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리며 재빨리 자신들이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사건들을 재조합해보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남과 동시에 ‘아하!’ 탄성을 내지르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 거대한 크롭싸인


⟨싸인⟩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는 시청각적 수단은 TV와 라디오다. 외계인이 전 세계를 침략한 상황이지만, 이야기의 주무대는 그레험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우주전쟁⟩이나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등장인물들이 보거나 듣는 TV와 라디오의 뉴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한 일반인의 홈비디오에 흐릿하게 찍힌 외계인의 모습이 뉴스 속보로 공개되고, 그것을 시청하던 메릴이 새파랗게 겁에 질리는 장면은 매우 탁월하다. CG를 사용해 외계인의 모습―관객들은 그것이 아무리 ‘리얼’해도 CG임을 안다―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리얼리티를 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외계인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 바로 전환점이다. 전혀 ‘리얼’하지 않은 CG 외계인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이지만, 어쨌든 그레험은 이 외계인과 조우함으로써 아내의 유언이 바로 신의 메시지였음을 깨닫게 된다.(표1 참조)


크롭싸인 관련 뉴스 속보


홈비디오에 찍힌 외계인의 모습


모건의 그림책과 베이비 모니터도 효과적인 시청각적 수단이다. 모건의 그림책은 외계인을 다룬 아동 과학 도서이다. 책에는 ‘외계인들은 모두 적대적이다’라고 적혀 있고, 그에 걸맞은 섬뜩한 삽화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외계인들의 공격을 받아 불타는 집 한 채가 보인다. 그런데 그 집의 모양이 그레험의 집과 닮았다. 게다가 그림 속 집 앞마당에 죽은 채로 누워 있는 가족은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두 자식이다. 책을 보던 그레험, 모건, 보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그림책이라는 소도구를 통한 간접적 묘사만으로 외계인에 대한 두려움을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모건의 베이비 모니터에서 들리는 외계인들의 기괴한 음성 역시 공포감을 높인다.


그림책 속 외계인의 습격을 받고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이 그레험과 두 자녀를 떠올리게 한다.


베이비 모니터를 이용해 외계인들의 신호를 추적하는 모건



3-2. 몽타주 분석


영화의 첫 장면은 주동인물 그레험에 대한 소개(introduction)로 그의 방을 보여준다. 시각적 몽타주 기법의 좋은 예이다. 먼저 화면에 잡히는 것은 가족사진이다. 신부복을 입은 그레험이 아내, 모건, 보와 함께 웃고 있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이어 화면은 경대 위 벽면에 남아 있는 십자가 모양의 바랜 흔적을 보여준다. 무척 오랫동안 십자가가 벽에 걸려 있었고, ‘어떤 이유’ 때문에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화목한 가정에 드리워진 흉조를 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또 사진 속의 모건과 보의 모습이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그레험이 아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레험이 신부이고(였고) 아내와 사별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정보를 제시해주는 가족사진
십자가 모양으로 바랜 흔적이 보인다. 아주 오랫동안 이 집에 십자가가 걸려있었고, 관객들은 이 장면을 통해 그 ‘어떤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된다.


‘외계인의 침략’이라는 중심 사건 양측에는 ‘신은 없다. 그러므로 이건 세계의 종말이다’ 쪽의 그레험과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쪽의 다른 인물들―메릴, 모건, 보, 마을 사람들―이 각각 위치한다. 이것은 반명제(antithesis)와 명제(thesis)―‘신은 없다’와 ‘신은 있다’―의 변증법적 몽타주이며, 관객들의 내면에도 ‘신은 정말 있을까?’라는 질문을 형성하는 극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레험의 내적 갈등이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도 옮아가는 것이다.


외계인에게 붙잡힌 모건


바로 이때 그레험은 뭔가를 느낀다.


아내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아내의 유언: “그레험에게는 ‘보라’, 메릴에게는 ‘휘둘러라’라고 말하라.”


그레험은 ‘본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메릴의 홈런왕 배트가 보인다.


메릴에게 “휘둘러”라고 말하는 그레험.


모건을 중독시키는 외계인.


메릴은 ‘휘두른다.’


컵 안의 물이 쏟아져 피부에 닿자 고통스러워하는 외계인. 물은 외계인의 약점이었던 것이다.


물이 오염됐다면서 거실 곳곳에 먹다 남긴 물이 든 컵들을 올려놓았던 보. 그런 보를 그레험은 나무랐었다.


하지만 그 물컵들이 지금 이 순간, 가족을 지켜주는 결계를 이루고 있다.


물들은 모두 쏟아지고


외계인은 쓰러진다.
천식을 앓는 모건의 폐는 닫혀 있었기에 외계인의 독가스는 모건을 중독시키지 못했다. 이윽고 깨어난 모건이 말한다.


모건

누군가 저를 구해준 건가요?

(Did someone save me?)


그레험

그래. 누군가 너를 구해준 것 같구나.

(Yeah, baby. I think someone did.)



마치며

체호프는 ‘이야기 속에 총이 등장했다면, 그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소도구나 이벤트(event)에는 반드시 극적효과를 꾀하기 위한 의도와 목적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싸인⟩을 분석하면서 체호프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플롯, 인물, 시청각적 요소, 몽타주 등 각각의 분석을 거쳐 분해된 한 편의 영화는 수많은 부품들을 거느린 총기와도 같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다시 신부복을 입은 그레험이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


모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묻자 신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이다(I am that I am).” 기적을 바라며 살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야말로 가장 선명하고도 확고한 신의 메시지임을 알라는 교훈이 아닐는지. 영화 ⟨싸인⟩의 ‘싸인’이 바로 그것이다.






※ 본문 이미지 출처: 개인 소장 중인 ⟨싸인⟩ DVD 화면 캡처

※ 본문 표 출처: 직접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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