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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이 어쩔 수 없이 수평이 되는 삶에 대하여

<일대종사>

by 임재훈 NOWer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 상당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일대종사>에서 엽문(양조위 분)은 말합니다. 쿵푸(工夫)는 수평(水平)과 수직(垂直), 두 글자로 설명된다고. 지는 자가 수평이고, 승리하는 자가 수직이라는 진언(盡言)입니다. 영화 초반, 빗속에서 펼쳐지는 엽문과 장정 무리의 장중한 일 대 다 결투씬과 맞물리며, ‘일대종사’ 엽문은 누군가―아마도 까마득한 무림 후배―에게 이렇게 타이르는 것입니다. 크고 화려한 기교보다는, 작고 빠른 손놀림으로 정확한 단타를 노리는 영춘권 고수다운 ‘한 방’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 엽문의 삶은 어쩐지 ‘수직’보다는 ‘수평’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비단 엽문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아내 장영성(송혜교 분), 그에게 연정을 품었던 궁이(장쯔이 분), 그를 새로운 무림 1인자로 추대했던 전임자이자 궁이의 아버지인 궁대인(왕경상 분), 궁씨 집안의 비기 ‘궁가64수’를 욕망했던 비열한 고수 마삼(장즈린 분), 조직을 배신한 뒤 개업한 이발소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문파를 꾸려나가는 일선천(장첸 분), 그리고 극중 숱하게 등장하는 권법 고수들. 이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격랑의 세월을 살아내며, 서서히 수직에서 수평이 되어가는 모양새입니다.


엽문은 그의 대사처럼 “가난을 걱정해본 적 없이” 젊은 날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엽씨 가문은 상업으로 크게 흥했던 집안이었지요. 말수는 적지만 노래 듣기를 즐겼던 고아한 아내 장영성 역시 고관대작 아버지를 둔 귀공녀였습니다. 부와 덕을 두루 타고난 엽문 부부는 순탄히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명망도 높았습니다. 김용의 대하소설 <신조협려>에는 외팔이 영웅 양과와 미녀 소용녀의 혼례를 “신랑은 재주 있고, 신부는 아름답다”라고 묘사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엽문과 장영성의 모습도 양과 소용녀 부부 못지않았습니다.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엽문 집안은 시련을 맞습니다. 대저택을 일본군에게 빼앗기고 엽문 가족은 허름한 가택에서 근근히 살아가게 됩니다. 식구들이 단란하게 가족사진을 찍고 조상의 위패를 모셔두었던 옛 보금자리에, 이제는 일본군들이 들이닥쳐 득의양양하게 기념사진을 촬영합니다. 권법 고수들을 차례로 이기고 무술계 1인자로 곧추섰던 엽문의 수직의 삶이 기우는 순간입니다. 그의 가세(家世)가 기울어짐을 기점으로, 극중 주변 인물들의 삶 또한 천천히 아래로 눕기 시작합니다.


남방과 북방의 무술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했던 궁대인. 그는 북방의 궁가권법 고수로, 궁가64수를 통달한 인물입니다. 남방의 영춘권 고수 엽문을 새로운 후계자로 지목하며 자신의 숙원을 풀고자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여러 권법 고수들이 이합집산하는 바람에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설상가상, 궁가64수를 전수해달라며 하극상한 제자 마삼의 공격에 절명하고 말지요.

마삼은 또 어떤 인물인가. 엽문이 궁대인의 추대를 받기 전, 후계자 자리는 본래 마삼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성적인 오만함과 호전적 기질로 인해 대사부 궁대인으로부터 파문 당합니다. 중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친일을 택했지요. ‘스승에게 한 번 꺾였던 최고수의 꿈을 반드시 이루리라’ 다짐한 듯, 마삼은 일본군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태도로 고수가 되어갑니다.(물론 정치적으로도.) 하지만 궁가64수의 유일한 계승자인 궁이(궁대인의 외동딸)에게 패하면서, 마삼의 욕망은 쓸쓸히 스러집니다.


ⓒ daum movie


궁이는 엽문과 함께 <일대종사>에서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된 인물입니다. 닿을 듯 말 듯 오가는 두 사람의 교감은 이 영화의 주된 정서인 ‘애잔함’을 배가합니다.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아버지’를 둔 딸로서, 그녀는 당당한 금지옥엽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엽문이라는 자에게 아버지가 패하고, 심지어 그자에게 패권을 전승하니 잔뜩 부아가 날 수밖에요. 결국 호기인지 치기인지 모를 자신감으로 엽문과의 일전을 치르나, 통쾌한 승리감이 아닌 묘한 연모지정을 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요. 속 넓은 엽문은 자신에게 1인자 자리를 내준 궁대인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고, 그의 여식에게 슬쩍 져주는 아량을 보이는데, 궁이가 그랬듯 엽문 역시 그녀를 내심 사모하게 됩니다. 엽문이 고향 불산에 식구들을 놓고 홍콩으로 돈을 벌러 와 있는 동안, 궁이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술 공부에 전념하다 낯선 사내와 혼인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세월속에서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애타는 감정을 전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형이나 다름없는 마삼에 의해 아버지가 변을 당하고, 궁이는 즉시 혼인을 파해버리며 복수를 감행하지요. 자기 삶의 거대한 수직의 존재였던 아버지가 쓰러졌으니, 궁이로서는 복수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터. ‘마삼을 쓰러뜨려야만 나의 수직이 다시 올곧아질 것’이라는 확신이었을까. “복수를 하면 다시는 결혼할 수도 없고 아이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충복 강씨(상철룡 분)의 당부에도, 궁이는 기어코 그 길을 갑니다. 마삼을 이겨 부친의 명예를 회복한 뒤,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것이 오로지 궁가64수뿐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녀는 마삼과의 결투에서 입은 내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듯합니다.) 궁이는 여자입니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인 것이지요. 엽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녀는 한때 그를 마음에 품었던 적이 있었노라고 고백하며 먼 곳으로 떠납니다. 이별이 두려운 사람들은 늘 먼저 이별을 고한다고 했던가요. 콧대 높은 규수였던 궁이는 그렇게 아편에 중독되어 천천히 누워갑니다. 수직이었던 것을 수평으로 누이는 삶의 처연한 단면이, 영화 속 궁이를 통해 절절히 나타납니다. 태우다 만 머리칼 몇 올만을 남긴 채 그녀는 삶이라는 대기 속으로 소멸하지요. 그녀가 끝내 궁가64수를 아무에게도 전수하지 않은 까닭은(심지어 엽문에게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그것을 그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던 여자로서의 마지막 소망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 소망이야말로, 그녀 인생의 마지막 ‘수직’이었을 테니.


ⓒ daum movie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엽문이 중국식 의복을 벗고 양복을 입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 렌즈를 응시하는 그의 경직된 표정에서 삶에 대한 일말의 원망과 새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납니다. 그리고 더없이 애잔한 얼굴로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그의 얼굴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첫 장면의 빗속 격투 장면이 ‘수직’이라면, 마지막 시퀀스는 ‘수평’이지요. 이름처럼 화려한 기방 금루(金樓)에 모여 권법을 논하는 고수들은 이제 없습니다. 궁가64수도 없습니다. 강호의 1인자 자리를 탐하던 무인들의 욕망도 다 사라졌습니다. 수직이었던 것들은 모두 수평이 되었습니다. 그 세월을 다 견뎌내는 것, 수직이 어쩔 수 없이 수평이 되는 애달픔을 다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일대종사>의 엽문은 읊조리는 것이 아닐는지. 이성복의 시 한 수가 영화 속 엽문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으려나요.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염려 마세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_「편지 3」 마지막 두 행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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