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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Jun 14. 2016

앤트맨 때문에 슬펐던 회사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앤트맨은 이름 그대로 개미(ant)처럼 몸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무리를 좀 하면 나노(nano) 단위의 크기로도 잔뜩 축소되지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라는 적의 무방비 상태를, 그 틈을 앤트맨은 잽싸게 잡아챕니다. 적의 신체보다는 내부 구조를 공략하는 것이 앤트맨의 전략입니다. 작아서 깊이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이 이 캐릭터만의 매력이자 공격력이지요. 작아져야만 이름값을 하는 캐릭터이므로, 작지 않을 때, 즉 정상의 신체일 때는 사실 별 볼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몸을 줄이는 초능력은 없습니다. 작아지려면 특수 수트를 착용해야 합니다. 이걸 잃어버리는 순간 앤트맨은 앤트맨이 아니게 됩니다. 그의 영웅 놀이는 말하자면 ‘수트빨’인 셈입니다. 이 수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바는, 악당들과 대적하는 것 못지않게 중대한 앤트맨만의 투쟁입니다. 요컨대, 어떻게든 작아지려고 싸우고 방어하는 삶입니다.


얼마 전 독일의 한 작은 출판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는 스위스인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눈과 코와 귀와 손으로 읽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더군요. 다감(多感)한 정서로 책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유통한다는 맥락에서 한 말일 터입니다. 작은 출판사이므로 가능할 수 있는 접근이며, 또한 규모의 작음을 활용한 경영 전략이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감함은 왠지 곤충의 더듬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시적인 관점으로 한 대상을 철저하고 꼼꼼히 파악하는 더듬이 말입니다. 이런 더듬이는 덩치 큰 생명체에게는 없지요. 오직 작은 것들에게만 달려 있는 고유한 기관입니다.

국내에도 ‘작은 출판사’로 분류되는 여러 지역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전문성을 바탕에 둔 서적을 기획합니다. 대형 출판 하우스가 트렌드(대중이 원하는 것)를 겨냥하여 다종의 출판물을 만들어내는(혹은 만들어대는) 것과는 다른 노선이지요. 다양성(wide)보다는 깊이(deep)에 좀 더 집중한다는 방향성입니다. 책 여러 권을 만들 힘을 한 권에 쏟는 셈이 될 텐데, 그래서 작은 출판사들이 내놓는 책들은 디자인과 본문의 질이 월등히 우수한 편입니다. 디자인 저술가와 북디자이너 부부가 꾸려가는 대구의 ‘사월의 눈’, 서울의 500여 대형 출판사를 이기고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라는 아이디어로 출판문화산업진흥원 공모전의 우수 출판 기획안 대상을 받은 통영의 ‘남해의 봄날’ 같은 출판사들이 그런 곳들입니다.

독일에서 일하는 스위스인 인터뷰이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는 세간의 유행이나 경향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몇몇 서점들은 우리 출판사의 책들을 취급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에게 우리 출판사의 책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일원으로서 퍽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답변입니다. 하기야, 한국의 사정도 많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사월의 눈’과 ‘남해의 봄날’이라는 이름은 결코 대중적이지 않으니 말이지요.


© daum movie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에서, 앤트맨은 자신을 ‘듣보잡’ 취급하는 토니 스타크에게 단 한 마디도 제대로 응수하지 못 합니다. 토니 스타크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이고, 그가 직접 고안한 수트는 ‘아이언맨’이라는 타이틀로 이미 대중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전과자로서 옥살이 경험도 있는 앤트맨으로서는 주눅 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요. 작아진다는 것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아서 해낼 수 있는 일들, 대중의 볕이 닿지 않는 음지에서의 전문 활동들, 그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현상은 자연한 것이며, 큼과 작음이라는 물리적 환경의 영향을 따릅니다. 현실의 여러 분야에서 투철히 작업하는 숱한 앤트맨들은, ‘발굴’이라는 형태를 빌어 비로소 양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각종 공모전 및 시상식, 오디션, 대회 따위가 그런 발굴의 모델들이지요. 그런데 이마저 경쟁의 프로세스로 작동됩니다. 애초에 경쟁을 피하고 싶어 자기만의 방, 그 작고 깊은 연구실에 자리를 잡은 앤트맨들은 영영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빌 워>의 앤트맨은 캡틴 아메리카 팀으로 섭외되었으므로, 영웅들과 더불어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과욕이었는지 치기였는지, 심지어 앤트맨은 자기 이름, 아이덴티티를 거스르는 무리수를 저지릅니다. 거인으로 변신해버린 것이지요. 느릿하게 뒤뚱거리며 손발을 휘젓던 그 우스꽝스러운 둔함이라니.


규모와 분류의 세계. 자본주의란 그런 것입니다. 자본을 축적하려면 커져야만 하고, 당연히 몸집이 커질수록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유명한 것, 유명한 인물은 그만큼 큰 것, 큰 인물로서 이 세계에서 공인됩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회 관념이야 어찌 됐든 꾸준히 작은 채로 존재하려는 것, 인물 들이 이 세계에는 줄곧 존재해왔습니다. 앞서 작은 출판사의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작게 존재하기’의 가시적, 상징적 사례로서 요즘의 작은 출판사들의 약진이야말로 가장 시의적절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실은 대단히 투쟁적인 태도입니다. 작아서 보이지 않는 물리적 결과야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고, 이보다 더 고단한 경험은 아마도 주변인들의 시선이 아니려나요. 왜 커지지 않는가, 왜 커지려 애쓰지 않는가, 언제까지고 작으려는 이유가 뭔가, … 이런 질문들의 기습은 가족으로부터건 지인들로부터건 충분히 발화될 만합니다. 특히나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고려해본다면 말입니다. <시빌 워>에서 앤트맨은 (주인공이 아닌 탓에) 몇 장면 등장하지 않으나, 가장 문제적인 캐릭터로서 강렬한 인각을 남겨주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라는, 결국 큰 것들이 주인공을 차지하여 다투는 스토리라인 속에서, 작아졌다가 커져보기도 하며 나름 애쓴 앤트맨은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들을 던졌습니다. 아이언맨의 수트 내부로 침투하여 시스템, 즉 구조에 가 닿았던 무시무시한 전문가이면서도, 왠지 팀원들을 위한다는 타의적 당위성 때문에 어색한 몸집 불리기를 감행한 듯한 애잔함. 회사(정확히 말하면 중소기업체)에 종속된 미천한 직장인으로서는 앤트맨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현재 벌어들이는 수입(연봉)을 기준으로, 더욱 작아져서 나의 본래 작은 사이즈에 맞는 나름의 전문성을 획득해볼 것인가(퇴사를 하여 프리랜서로 전향할 것인가), 불편한 수트를 입어보더라도 ‘큰 인물’이 되어볼 것인가(연봉을 올려 이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하찮은 회사원의 글이라니.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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