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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Jul 10. 2016

아내라는 타인

<레볼루셔너리 로드>

신혼부부 프랭크 윌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 윌러(케이트 윈슬렛). 두 사람은 결혼 후 뉴욕 맨해튼의 교외 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남편 프랭크는 사무기기 제조회사 녹스(Nox)의 영업부 직원입니다. 이 회사는 그의 선친이 장기 근속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내 에이프릴은 결혼 전 연극 배우였습니다. 그리 뛰어난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연극이 끝나면,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를 비판하며 수군거렸죠. 에이프릴은 결혼 후 연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종일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들(아들과 딸)을 돌보는 일상의 반복. 주부의 삶이 이제는 에이프릴의 무대입니다. 


집(house)에 있는 아내(wife)는 주부(housewife)가 됩니다. 그래서인지 남편들은 종종 아내와 집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합니다. 아내가 곧 집이고, 집이 곧 아내라는 신념. 또한 남편들은 '가장의 책임'이라는 미명 아래, 처자식을 '부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자신의 부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을 위해 자기 삶의 일정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죠. '내가 그들을 먹여 살린다.' 이런 믿음은, 남편으로 하여금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본질적으로 '타인'임을 망각하게 합니다. 아내와 자식들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부여되었다는 착각이며, 세대'주(主)'의 권리로 식구들을 통솔하려는 오만입니다.


프랭크는 아버지가 다녔던 회사의 직원으로, 아버지가 살았던 것과 비슷한 삶―성실히 회사에서 일하며 식구들을 부양하는 가장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듯하나, 사실은 아버지가 살았던 것과 똑같은 삶―성실히 회사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가 다정히 반겨주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몹시 쓸쓸해 하고 있습니다. 또 그는, 장기 근속자였음에도 회사에서 쉽게 잊힌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어 합니다. 잠깐의 외도로 만난 여인 앞에서, 회사 사장과의 접견에서, 뜬금없이 내 아버지가 이 회사에 다녔던 사실을 아느냐고 묻는 까닭이죠. 


© daum movie


프랭크의 정체성은 '가장'입니다. 가장으로서 그가 겪는 불행이란, 아내 에이프릴로부터 가장의 대접을 못 받는 것입니다. 이 불행이 그를 폭력적으로 만듭니다. 그는 줄곧 집과 아내를 동일시하는데, 아내가 주부의 소임을 다하지 않고 집 밖에서의 삶, 그러니까 결혼 전 배우로서의 자유분방한 삶을 그리워하는 기색을 보일 때마다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그때마다 남편과 아내는 격렬히 반목합니다. 


파리로 이주해 새 삶을 시작하자는 아내의 제안에 프랭크는 동의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자유의 도시 파리에서 잠시 쉬면서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라. 생활비는 내가 벌어 올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이것이 아내의 제안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아내의 들뜬 모습. 파리에 가면, 그토록 바랐던 행복한 가정을 완성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프랭크는 선뜻 동의했고, 자신 역시 지금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회사에서 승진하게 되자 모든 게 분명해집니다. 굳이 파리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여기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승진 후 받게 될 돈이라면, 구태여 파리에 가지 않아도 이곳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선친의 명예를 드높이고, 훌륭한 가장이 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결국 파리 이주 계획은 한때의 판타지로 격하됩니다. 아내 에이프릴은 남편의 귀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가 꺾임과 동시에 정체성을 잃죠.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세계로부터 온전한 '타인'이고 싶었던 그녀의 정체성 찾기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아내에게는 또다시 우울이 찾아오고. 잠깐의 평화가 감돌았던 부부의 세계는, 예의 격랑으로 휩쓸립니다. 프랭크는 에이프릴에게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말라고 채근하는데, 이런 보챔은 공허합니다. 가장의 부양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고, '닥치고 행복'하라는 강압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남편에게 아내란, 여전히 타인이 아닙니다. 아마도 남편은, 영원히 아내를 타인으로 대하지 않을 듯합니다. '아내'라는 타인에 대하여 남편은 무지하고, '남편'이라는 욕망에 대하여 아내는 무력합니다. 부부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란 멀기만 합니다.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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