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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May 20. 2018

세상 수치스러운, 나의 소중한 타자

<나의 아저씨>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03.21~05.17)가 끝났습니다. 극중 대사처럼 “정진”하듯 작품에 빠져들었던 듯합니다. 최근 읽었던 한 리뷰 기사의 제목이 ‘마음 가난한 이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헌사’였습니다. 깊이 공감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 정진하는 내내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이 참 가난했다는 걸. 제 경우, 이 깨달음의 기저엔 ‘타자’가 있었습니다. 지안(아이유 분)과 동훈(이선균 분)을 비롯한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깨우쳐준 가치입니다. 이래본 적이 별로 없지만, <나의 아저씨>로 제가 깨달은 바를 적어보겠습니다. 내용이 수치스러울지라도, 다 까놓고 공유하고 싶습니다.



 숨고 숨기는 '삼안', 다 까놓는 ‘정희네’


 <나의 아저씨>는 4개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삼안E&C(이하 삼안), 정희네, 지안네, 동훈네. 둘씩 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삼안/정희네, 지안네/동훈네. 전자는 다르고, 후자는 비슷합니다. 우선 후자 쪽을 보면, 지안네와 동훈네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못 말하고 못 듣는 할머니 봉애(손숙 분)와 이따금 수화로만 의사소통하는 지안의 집, 아내 윤희(이지아 분)와 거의 대화하지 않는 동훈의 집. 두 공간 모두 말이 없습니다. <나의 아저씨>의 주요 인물인 동훈과 지안은, 살아온 환경은 다르나 살아가는 환경은 비슷합니다. 둘 다 말없이,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말없이 조용히 사는 이유를 캐묻기보다, 말없이 조용히 살게 돼버린 사정을 서로 공감하는 선에서, 동훈과 지안의 접점은 생겨납니다.


 삼안과 정희네는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삼안은 숨고 숨기는 곳이죠. 횡행하는 사내 정치, 계파 간 알력 다툼, 사옥 곳곳의 CCTV, 존재만으로도 위압적인 감사실. 이렇듯 삼안은 감옥처럼 묘사됩니다. 임직원들은 휴대전화 문자 확인도 몰래 합니다. 화장실에서는 가급적 목소리를 낮추죠. 사적인 대화는 대체로 몰래 나눕니다. 직원 몇은 몰래 바람도 피웁니다. 업무 외 용건은 대부분 몰래 보고 있습니다. 근속년수 이십, 박동훈 부장을 파견직 사원 이지안은 이렇게 부릅니다. “성실한 무기징역수”.


 정희네는 다 까놓는 곳입니다. 주인 정희(오나라 분), 동훈의 큰형 상훈(박호산 분)과 막내동생 기훈(송새벽 분), 그리고 다른 손님들(아저씨들). 기훈의 말에 따르면 “다 망한 사람들”. 후계동이라는 동네 이웃들인 이들은 서로를 잘 압니다. 한때 잘나갔었고, 그러다 망했고, 지금은 이러고 있고. 이 사정을 서로 다 압니다. 다 아니까 다 까놓습니다. 다 까놓고 술 마시고 웃고 떠듭니다. 특히 상훈과 기훈을 비롯한 아저씨 손님들은 일주일 내내 다 까놓고 지냅니다. 평일엔 정희네서 술판, 주말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한 판. 서로가 서로의 술친구이자 ‘후계조기축구회’ 회원들인 아저씨들.


 그런데 동훈은 ‘아저씨’였던 적이 없습니다. 이때 아저씨란 ‘후계동 아저씨들’, ‘정희네 아저씨들’ 일원을 칭합니다. 정희네를 드나드는 손님들 중, 가장 자기 얘기를 안 하는, 즉 다 안 까놓는 사람. 기훈은 “저 인간이 언제 자기 얘기 하는 거 봤어?”라며 둘째 형을 핀잔하죠. 그러거나 말거나. 정희네의 후계동 아저씨들은 동훈 앞에서 잘도 자기 얘기들을 다 까놓습니다. 동훈이 제 얘기를 안 깐다고 배척하지도 않죠. 내 쪽에선 까놓고 말하는데 상대는 입 다물고 있다? 서운할 법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법’ 따위, 후계동의 정희네 아저씨들은 어겨버립니다. 까든 안 까든, 그냥 같이 술 마시고 웃고 떠들고 공 차며 놉니다. 오히려 아저씨들은 동훈이 아저씨가 아니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입니다. 자기들처럼 망하지 말기를, 사회에서 따돌림당하지 않기를, 회사에 오래 붙어 있기를, 모친(고두심 분) 여읠 때까지 잘 모시기를. 동훈은 자신에게 물린 이 의무를 무덤덤히 수행해왔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출가한 친구(박해준 분) 앞에선 속엣말을 실토합니다. “희생”이라고. 후계동 정희네에서 까놓지 못하는 속내, 성실한 무기징역수에서 맘 편한 아저씨로 출옥 못하는 죄목. 지안에게서 ‘부장님’이 아닌 ‘아저씨’라 불릴 때, 동훈은 얼마간 자유롭지 았았을까요.


ⓒ <나의 아저씨> 공식 홈페이지(http://program.tving.com/tvn/mymister) / 이하 출처 동일



 도청, 수치심, 사르트르


 사르트르의 타자론에 ‘수치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서 <존재와 무>에 기술된 대목 하나. 지금 나는 열쇠 구멍으로 누군가를 몰래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밖에선 나의 존재를 모릅니다. 이 순간 나는 오롯이 주체입니다. 문 저편의 누군가는 오롯이 객체죠. 그런데 갑자기 문 이편에서 인기척을 느낍니다. 나는 당황합니다. ‘문밖을 엿보는 나’라는 주체를 들킨 것이죠. 이때 나는 객체(바라봄을 당하는 자)로 전락합니다. 나를 당황시킨 자, 남몰래 오롯한 주체였던 나를 객체화시켜버린 자, 즉 타자 탓입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타자는 이렇듯 우리에게 수치심을 선사하며 부지불식간에 등장하는 존재입니다. 예기치 못한 타자의 시선으로써, 나는 달라집니다. 열쇠 구멍에서 눈을 떼거나, 다시는 남을 엿보지 않게 되거나 등등. 나는 내 등뒤의 타자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고, 오로지 인기척―시선만으로 태도 변화를 자행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죠. 타자의 존재 자체가 문제시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서동욱은 “[타자로 인한] 나의 수치가 [내가 존재하게 되었음에 관한] 하나의 자백이다”라는 사르트의 말을 “사르트르적 코기토”라 정의한 바 있죠.(<차이와 타자>, 문학과지성사, 2000, p.188)


 지안은 동훈을 도청합니다. 동훈의 대학 후배이자 직장 상사, 아내와 외도 중인 도준영(김영민 분)의 지시로. 도덕적 흠결을 잡아내 퇴사시킨다, 아내와도 이혼하게 만든다, 그녀와 편히 관계를 이어간다. 도준영의 계획을 돕는 수하로서 지안은 도청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일이 틀어지죠. 지안이 수치심을 느끼면서부터.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래서 불쌍해.”


 동훈이 직원들 데리고 술 마시다 한 말. “걔”로 지칭되는 대상은 지안입니다. 도청 중이던 지안은 이어폰을 집어던지죠. “개새끼….” 혼잣말로 욕도 합니다. 지안이 동훈에게서 처음 수치심을 느낀 순간, 도청 대상에 불과했던 동훈이 타자로 엄습해온 첫 순간입니다. 이 수치스러움이 지안한테만 온 것은 아니었죠. 종종 지안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동훈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겁니다.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알 것 같고. (…) 나를 아는 게 슬퍼.”


 정희네서 동생 기훈과 술 마시다 한 말. 작은형 특유의 모호한 화법. 결코 다 까놓는 법이 없는. 둘의 대화를 엿듣던 지안은 이렇게도 이해했을 것 같습니다.


 “아저씨가 날 알아. 나도 아저씨를 알 것 같고. 나를 아는 게 슬퍼.”


 동훈이 지안을 알고, 지안이 동훈을 안다. 이것은 앞서 인용한 “사르트르적 코기토”와도 연관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안으로 인한 나의 수치(“나를 아는 게 슬퍼”)가, 내가 존재하게 되었음―나를 다 까놓게 되었음에 관한 하나의 자백’입니다. ‘지안’ 대신 ‘동훈’을 넣어도 이 문장은 틀리지 않습니다. 지안과 동훈 모두, “나는 보여지고 있다. 고로 존재한다”(위의 책, 같은 쪽)인 셈이죠.


 내가 나를 보여준 적 없는데(다 까놓은 적 없는데) 누가 나를 안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 <나의 아저씨>의 도청은 이렇듯 지안과 동훈에게 ‘수치심’을 부여하고, 이로써 둘이 서로의 타자로 조우하는 접점을 생성해준 것입니다. 즉, 두 사람은 수치심을 공유한 타자들이 된 겁니다.



 수치심 공유. 아마도 이것이 <나의 아저씨>가 제안한 ‘희망’의 실체 아닐까 싶습니다. 수치심을 동훈의 대사를 빌어 ‘슬픔’, 혹은 ‘부끄러움’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지안·동훈뿐 아니라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도 수치심 공유 문제에 물려 있습니다. 외도 사실을 들켜버린 준영과 윤희, 연인 관계였음을 상기하고 싶지 않았던 정희(오나라 분)와 겸덕, 각각 영화감독과 배우로서 망한 진짜 이유를 드러내지 못한 기훈과 유라(권아윤 분), 지안이 “걔는 나를 좋아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 나는 걔가 착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라 했던 대부업자 광일(장기용 분).


 한 사람이 빠졌죠. 삼형제 첫째 상훈. 16부작이었던 <나의 아저씨>를 돌이켜보건대, 상훈은 주요 등장인물들 중 가장 지속적으로 수치심 공유에 힘써왔던 듯합니다. 반 세기 가까이 살았는데 먹고 싼 기억밖에 없다, 우리 엄마 빈소 휑할까 걱정된다, 망한 아저씨들만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 …. 상훈이 내뱉은 흰소리들은 스스로를 까발리는 ‘찌질한’ 언사였죠. 너무 다 까놓고 얘기한 게 문제였던지, 동생 기훈은 큰형이 아무리 울어도 별 걱정 안 된다고 합니다.(반면 둘째 형의 울음에 대해서는 “큰일 났어. 피난 가야 돼.”라고 진중히 받아들이죠.)


 상훈은 마지막 회에서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동생들 데리고 “기똥찬 순간” 보내려고 모은 목돈을 다 써버린 것이죠. 지안의 조모 장례 비용으로 말입니다. 자신의 수치심을 끈질기게 공유해왔던 이 찌질한 후계동 아저씨는, 자기가 두려워 하던 미래의 수치심(우리 엄마의 휑한 빈소)을 지안이라는 타자의 삶에서 확인했고, 직접 그 수치심을 지워주었습니다. 한방에. 나의 수치심을 끊임없이 털어내왔고, 동생들과 정희와 정희네 아저씨들에 의해 제 수치심이 매번 (술과 함께) 공유되는 경험을 축적한 인물이기에, 조문객이라는 주체를 벗어나 상주라는 타자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감지하기에 이르렀고, 곧장 지안의 슬픔을 즉각 공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상훈은 지안을 잘 모르죠.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후계동에서 몇 번 마주치고 정희네에서 한두 번 본 게 다입니다. 상훈은 그저 ‘텅 빈 빈소에 작게 서 있는 어린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바라봄으로써, 지안의 슬픔을 체감했던 것입니다.


 문상 온 춘대(이영석 분) 노인은 지안을 안아주려 다가가다 멈춥니다. 그러고는 빈소를 둘러보죠. 떠들썩한 조문객들, 잘 차려진 장례상, 웃고 있는 영정 사진. “복 있으시다. 할머니가 복이 있으셔.” 지안을 포옹하는 일을, 춘대 노인은 타자들에게 양보한 것이죠. 할머니와는 일면식도 없는 이 타자들을 지안에게 안겨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누군가의 곁에 기꺼이 존재해주는 이 타자들을.



 타자라는 달 앞에, 합장  


 네가 나에게 이리 눈부신 건 내가 너무나 짙은 밤이기 때문인 걸


 <나의 아저씨> OST 수록곡 중 ‘Dear Moon'의 가사입니다. 지안이 살아온 삶, 그 삶의 영향에 따른 성격이나 성향, 주변인들의 평가. 노랫말처럼 “너무나 짙은 밤”인 인생.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다는데, 상훈의 행위도 그렇습니다. 상훈은 밤이 왜 짙은지(본질)를 따지지 않고, 그저 그 밤 자체(실존)를 밝혀준 달이었던 셈이죠.


 마지막 회에서 보여준 상훈의 행위야말로, 지안·동훈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궁극적으로 이르게 되는 지점, ‘지안(至安)’의 실천 아닐까 합니다. 밤이 왜 짙은지, 밤이 왜 밤인지 묻기보다, 그냥 그 밤 위에 달 하나로 떠 있기.


 “아무 것도 아니야”, 동훈이 지안에게. “파이팅”, 지안이 동훈에게. 이 말들이 오갈 때, 두 사람의 짙은 밤하늘 위엔 크고 둥근 달이 떴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달을 띄워줄 때, 우리는 서로의 소유격인 특별한 타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박동훈 부장이 아니라 아저씨, 그것도 ‘나의’ 아저씨가 되듯. 이름 부를 수 없었던 상원(겸덕)이 “우리의 추억”으로 떠오르듯. 타자라는 커다란 달 앞에, 합장-




글_나우어(NOWer)

   _글 쓰는 일을 합니다

   _저작 및 공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소셜 피플>(12부작)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사)

      <소셜 피플>(12부작) 카카오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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