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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Jun 14. 2018

종수의 화(火·話) "판토마임에 속지 말라"

<버닝>








이 글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사건 개요

시민 신고 접수. 경기도 파주 농가 인근 공터에서 불길에 휩싸인 차량 발견. 소방대원과 지구대 경찰 인력 현장 출동. 현장 도착 시 화염 분출 규모로 보아 방화 예상 시점은 1시간 전. 차종은 포르쉐, 운전석에서 시신 1구와 가정용 식도 발견. 사망자는 삼십대 초반 남성으로 추정. 복부에 자상으로 보이는 흔적. 타살 의심. 피의자가 차량 운전석에 시신 방치 후 증거 인멸 위해 방화 가능성.


신고자인 화물차 운전 기사 A씨 진술. 방화 예상 시점인 시간에 사건 현장을 운전 중이었으며, 고급 외제 승용차 1대와 용달차 1대가 세워진 것을 목격.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외제차의 운전석 문 앞에 상반신을 바짝 기댄 채 서 있었음. 뭔가 이상하다 느껴 운전 중에도 유심히 쳐다봤음. 신고자 증언에 따르면 해당 남성의 인상착의는 키 약 180센티미터, 스포츠 머리, 후드티와 청바지 차림, 나이는 이십 대 중반. 용의자 의심. 사건 현장 반경 10킬로미터 이내 주변인 탐문 수사 진행. 48시간 만에 범행 현장 인근 주택에서 용의자 검거.


관련 기사(일부 발췌)

「파주 방화살인범, 알고 보니 아버지도 폭행 전과」  

(…) 범인은 살해 현장과 불과 20분 거리인 자택에서 붙잡혔다. (…) 부친 또한 최근 파주시 공무원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피의자 부자를 10년 넘게 알고 지낸 마을 이장은 “아버지도 평소에 화를 잘 못 참는 성격이라 결국 사고를 내더니, 피는 못 속인다”라며 “주민들 전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는 폭행범, 아들은 살인범인데 피해 당사자가 자신이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작가 지망생’ 살인범, “내가 불태운 건 사람 아니라 세상”」

검거된 파주 방화살인범은 현재 무직으로, 소설가 등단을 준비하던 이십 대 작가 지망생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범인은 “내가 불태운 건 피와 살점이 아니라 메마르고 생명력 없는 세상”,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대상에 불을 붙인 것일 뿐”, “소시지를 잘 굽기 위해 칼집을 내듯이 나도 세상이 잘 타도록 (피해자의 몸에) 칼질을 한 것”, “논밭 해충 박멸 위해 불 놓듯 판토마임에 현혹된 세상 소진시킨 것” 등 끔찍하고 괴상한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 전문가들은 소설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보이며, 따라서 정상인에 대한 법적 심판을 적용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십 대 살인범, 범행 동기는 “개인의 욕망을 액세서리 취급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

(…) 차분한 태도로 살해 과정을 재현했다. 특히 그는 “범행 동기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살해 현장뿐 아니라 그 이전(범행 전) 장소들도 가봐야 한다”라며 “플롯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집”이라고 소개한 서울의 한 빌라 안에서는 자위하는 시늉을 해 현장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가끔 여기 혼자 들어와 그녀를 생각했다. 창문 너머 보이는 남산타워(현 N서울타워)처럼 꼿꼿이, 사랑을 받으며 일어서길 바랐다. 내 페니스가 아니라 내 삶이. 저 타워를 보며 그녀가 나를 떠올려주길 바랐다.”라고 진술했다. (…) “그녀는 내 모든 욕망이고,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어느 날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남자는 그녀 말고도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그 여자들은 돈 많은 그 남자에게 언제든 교체 가능한 액세서리로밖에 남지 않을 존재들이었다. 그녀가 액세서리로 전락하는 게 싫었고,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내 욕망도 액세서리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그 남자들과, 그 남자들이 돈을 써대며 욕망을 수집할 수 있게 허용한 이 세상을 태워버리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 daum 영화


「소설 같은 막장 살인극 피의자 “판토마임에 속지 말라, 실종된 여자친구 찾아달라” 횡설수설」

삼각관계였던 남성을 살해한 ‘소설가 지망생’ 범인이 “여자친구가 실종됐다”라며 수사를 요청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피해자의 권유로 대마초에 손을 댔고 극심한 정서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범행 며칠 전부터는 여성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범인은 여성의 가족, 지인 들을 만나 행방을 물었다. (…) 피해자가 여성을 납치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다소 장광설이지만 독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전문을 옮긴다.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녀가 보이지 않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그 사람(피해자) 때문에 그녀는 보이지 않게 된 거다. 그 사람은 줄곧 그녀를 없는 존재처럼 대했다. 분명히 귤이 탁자 위에 있는데, 귤이 없다는 듯 판토마임으로 귤 먹는 시늉을 해댄 거다. 귤을 앞에 두고 귤 먹는 연기를 하듯이, 그녀를 앞에 두고 그녀와 함께하는 판토마임을 한 거다. 그녀의 실재는 잊히고, 그녀와 함께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행위 자체가 주목받게 되는 상황인 거다. 실물인 귤보다, 없는 귤을 있는 듯 먹는 판토마임이 더 극적일 테니까. 사람들, 관객들은 그런 걸 원하지 않나. 실재와 실물이 액세서리로 전락하는 해괴한 상황이 펼쳐지는 거다. 나도 일용직 알바 하면서 많이 겪었다. 노동자들이 분명히 실재하는데, 고용주들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우리의 실재와 전혀 다른 우리와 함께하는 시늉을 한다. 판토마임이다. 대한민국 어디에나 이런 판토마임 배우들은 존재한다.

그래서 그녀가 사라진 거다. 분명히 있는데 없다고 여기니까, 심지어 없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니까, 실재와 실물이 정말로 사라져버린 거다. 내가 그 사람한테서 발견한 그녀의 흔적은 두 가지다. 내가 선물한 손목시계가 그 사람의 집에 있었다. 액세서리함 속에 다른 누군가들의 액세서리와 함께 섞여 있었다. 또 하나가 고양이다. 장기간 집을 비운 그녀를 대신해 나는 그녀 집을 찾아가 고양이를 돌봐줬다. 실제로 보진 못했다. 똥만 봤다. 짐승의 똥이었다. 한 번도 고양이의 실체를 목격하진 못했지만 나는 믿었다. 고양이는 분명히 있다고. 없지 않다고. 그래서 그릇에 사료와 물을 담아줬다. 처음엔 그녀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 집주인 아주머니도 고양이는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없는 고양이를 있는 것처럼 판토마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있었다. 고양이는 실재했다. 지금 그 남자의 집에 있다. 그 고양이가 그녀의 고양이임을 나는 믿는다. ‘확실히 그녀의 고양이가 맞다’라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왠지 이 언표가 확실하지 않고 맞지 않는 무언가를 확실하고 맞는 것으로 꾸미는 판토마임처럼 보일까 봐 걱정스러워서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고양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하겠다.

사라진 그녀를 찾아달라. 다시 있게 해달라. 보이게 해달라. 이건 중요한 일이다. 있다는 걸 잊으면 없는 게 돼버린다. 판토마임에 현혹되지 말아달라. 그리고, 범행 현장 부근, 그러니까 내가 사는 집 가까이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다. 그것도 찾아달라. 어쩌면 그녀는 그 우물 밑에 있을지도 모른다.”


「파주 방화살인범, 이번엔 “비닐하우스촌을 잘 봐라” 황당 주장」

파주지검은 지난 OO일 파주지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파주 방화살인’ 피의자 유종수(가명) 씨의 결심공판에서 무기징혁을 구형했다. (…) 유 씨는 재판장에서 뜬금없는 발언으로 담당 판사의 호통을 들어야 했다. 그는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보이는데 안 보이는 것처럼 살면 안 된다. 사람이 판토마임 하듯 살면 안 된다.”라는 취지의 최후 진술을 해 담당 변호사를 난감하게 했다. 유 씨는 “주소도 없는 비닐하우스촌이 많다. 거주민들은 분명히 그 안에서 살고 있는데 명부 상엔 없는 걸로 돼 있다. 이렇다 보니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전부 잊힌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게 된다. 있지도 없지도 않으니까 쉽게 불타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닐하우스촌 화재 사건 기사를 늘 정독한다며 “방화로 소멸돼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아니지. 다 아는데, 그런 일 없는 것처럼 다들 산다. 그런 장소는 전혀 이 세상에 없다는 듯 산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비닐하우스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누군가들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 운운하는데, 그거 다 판토마임이다. ‘모두’에 끼지 못한 존재들을 앞에 두고 ‘모두’를 말한다. ‘모두’란 없는데, ‘모두’가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 또 ‘모두’가 있는데, ‘모두’란 없는 것처럼 ‘모두’를 연기한다.”라고 덧붙였다. 최후 진술을 마무리하는 발언 또한 논란거리였다. 유종수 씨는 “당신들이 세상을 불태우고 있는데, 불타는 세상은 없다는 듯 판토마임 하는 모습을 없는 걸로 여길 수 없어서 내가 불을 놓았다. 내 불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해미를 찾아달라. 내가 살던 집 근처의 우물도 찾아달라.”라는 황당한 말을 남겼다. (…) 한편 유 씨에 대한 선고공판은 다음달 OO일 열린다.


ⓒ daum 영화




글_나우어(NOWer)

   _글 쓰는 일을 합니다

   _저작 및 공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소셜 피플>(12부작)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사)

      <소셜 피플>(12부작) 카카오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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