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8

“가수는 입을 다무네, 가수는 입을 다무네, ······.”

by 임재훈 NOWer



우성그룹 광화문 사옥 십오층 회의실에는 한 변이 일미터쯤 되는 정방형 시스템창호가 대여섯 나 있었다. 전부 진회색 시트지로 덮인 채여서, 안팎의 시야가 서로 내통할 일은 없었다. 개폐가 가능한 문들이기는 했다. 창호 윗변의 레버를 당겨 젖히는 방식이었고, 최대 개방 각도는 팔뚝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이었다.

창 하나를 열 경우, 안에서 확보 가능한 바깥풍경의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젖혀진 문 틈으로 아래를 내다볼 때, 시선은 늘 수직하강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세로로 긴 전자기기의 상판을 아주 조금만 열어 안(밑)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김은 매번 느꼈다. 외부가 내부처럼 여겨지는 기묘한 기분이었고, 그래서 김은 이 십오층짜리 건물이 마치 광화문을 덮은 거대한 케이스 같다는 생각도 몇 번 했다.

오늘도 김은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시스템창호 하나를 열었다. 동행한 기도 김을 따라 다른 창을 열고 밑을 보는 중이었다.

지상의 노랫소리와 고함이 십오층으로까지 치쳐 들어왔다. 내려다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노랫소리는 왼편의 촛불들 속에서 올라왔고, 고함은 오른편의 국기들 틈에서 울리고 있었다.

저 아래는 꼭 콘서트장 같다고, 광화문역 우성그룹 본사 회의실은 에스석이나 에이석쯤 되겠다고, 김은 생각했다. 무대 위 얼굴은 식별할 수 없었지만, 음색을 들으니 어린 왕자라 불리는 그 가수였다.


······거기에 들리게끔,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야.


노란 마이크를 든 가수는 말하고 노래했다. 따라 부르는 촛불들을 국기들이 휘저었고, 노랫소리는 밑에서 위로 펄럭이며 떠 왔다. 회의실 안에 당도했을 때 대부분의 노랫말은 흩뜨러져 있었다.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야, 라는 가사만을 김은 설핏 알아들었다.

오래된 그 가수는 김이 대학 시절 때 들었던 것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음을 깨끗이 올리지 못했고, 자주 목을 긁으며 노래했다.

실장이 사무실 음악 재생을 규제하기 전, 황 과장의 스피커에서도 이따금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표는 안 냈지만 김은 가수의 음성이 거슬렸다.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목소리가 많이 바뀐 것 같던데? 우리 대학 때 듣던 그 목소리가 아니야. 고음이 버거운가 봐. 아무리 동안이라도 나이는 못 속이나 봐. 김의 박한 평가를 선배는 공감하지 않았다. 그로울링 창법이라는 거야. 난 더 사나워진 것 같아서 좋던데? 선배는 시를 설명할 때처럼, 또 긴 말들을 뽑아냈다.


뭔가, 사랑 노래든 인생 노래든, 적대적으로 부르는 느낌이지 않아? 짐승들이 혼자서는 으르렁대지 않잖아. 눈앞에 천적이 있을 때만 그러잖아. 혼자 있을 때 나오는 목소리는 하울링이지. 청승맞게 하늘로 띄우는 거. 그로울링은 정면으로 내보내는 목소리고. 애초에 위로 띄운 목소리는 지상에 닿을 때 갈앉게 마련이지만, 정면에 댄 으르렁거림은 침잠되는 법 없이 전후방 측방 상하향으로 쭉 뻗잖아. 고승들의 설법을 사자후라고 하잖아. 후가 부르짖을 후, 으르렁댈 후잖아.

남자들 군대 가면 영점 사격이라는 거 한다며. 영점이라는 게, 말하자면 조준점을 초기화시킨다는 개념이라며. 가늠자 재조절해서 조준선 다시 맞추는 거. 그래야 실거리 사격 때 명중률이 높아진다며. 그 가수 목소리도, 그런 영점 사격 같은 세월을 거친 거잖아. 말끔하게 위로만 띄우던 고성을 점점 정면으로 긁어 내렸잖아. 조준점이 확실해진 거.

그거 알아? 똑같은 총기여도 사격자가 바뀔 때마다 영점을 다시 설정하는 이유. 얼굴이 다 다르기 때문이래. 얼굴을 총체에 붙여놓고 격발하잖아. 안면근육 발달 정도나 골격 차이에 따라서 총기 반동 패턴이 달라진다며. 반동에 흔들리지 않는 얼굴은 없잖아. 결국 각자 생김새를 반영해서 표적을 겨누는 거.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거, 진짜 살 떨리는 일이잖아. 그 떠는 얼굴을 떠안고 기어이 말이 닿아야 할 곳에 목소리를 명중시키는 거. 그런 게 진짜 목소리고 시잖아.


못 알아듣겠는 저 아래의 노랫말들은, 선배의 묵은 말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선배는 식자 유형은 아니었지만, 사물이나 현상의 꼬투리만 잡아 제 식대로 해석을 펼치는 데 능했다. 허풍이기보다는 창의력에 가깝고, 그렇다고 완숙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 약간은 치기 어리지만 썩 건전한 상상력을 담은 그 말들이, 김에게는 선배의 자기 목소리로 여겨졌다. 미숙하고 등단되지 못한 그 목소리 덕분으로, 선배 특유의 만만하고 불숙한 시 해설과 시적 발상의 영향으로, 시인 한 명 시 몇 편 주워섬길 만큼의 극미한 소양이나마 갖추게 된 것이라고, 선배와 헤어진 지금도 김은 순순히 인정했다.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촛불들을 내려다보며, 김은 선배를 따라 시를 읽던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주문을 외워보자는 가사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저 가수가 작사한 것일 테고, 그걸 따라 부르는 촛불들 안에는 수준급이지만 가수급은 아닌 가창력과 음치와 박치가 뒤섞여 있을 것이며, 그럼에도 이 십오층 회의실에서 저 아래의 혼성과 중창이 한 목소리로 들리는 까닭은, 각자가 미숙하든 완숙하든 입을 다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김은 해석했다. 우성그룹 온라인 홍보팀 대리와 팀장이 들어오고 나서야 김은 겨우 창에서 눈을 뗐다.


주말에 나오시라고 해서 죄송해요. 저희 쪽에서 미팅 뺄 수 있는 시간이 오늘밖에 없더라고요. 합격자 오발송 건이랑 체육대회가 엮이는 바람에 신임 부회장님 완전 격노하셨거든요. 저 지금 둘째 임신 중인데 진짜 애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인사팀은 말할 것도 없고, 홍보팀도 왕창 혼 뽑히고. 홍보 업무 전반을 갈아엎어야 해요 지금. 기자 관리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다요. 싹 판 갈이를 해서 새해 일월부터 바로 실무 적용이고요. 어휴, 오늘이 벌써 십일월 십이일이잖아요. 두 달도 안 남은 시점이라 주말에도 계속 나와야 할 것 같아요. 내부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이달 기획회의를 부득불 오늘 저녁으로 잡았어요. 내달도 아마 주말이 될 공산이 크고···.


대리는 몽쉘 두 포와 종이컵 녹차 두 잔을 내주며 사측의 사정과 토요일 여덟 시 미팅 일정을 길게 얼뜨렸다. 많이 피곤해 보이신다고, 김은 짧게 대꾸했다. 대리 옆에 앉은 팀장이 갑자기 소리 내 하품했다. 담배 냄새와 은단 향이 섞인 구취가 김의 코앞까지 훅 불어왔다. 두 분 다 너무들 고생하신다고, 김이 정중히 말치레를 했다. 팀장님이랑 기 대리님도 고생이시죠. 대리가 바로 맞대답했다. 대리 소리 듣기가 민망한지 기는 상반신을 오그리며 웃었다.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고, 기는 얼른 백팩 안에서 아이패드를 꺼냈다.

다음주 십일월 삼주차부터 십이월 말까지 진행할 격주 단위 퀴즈 이벤트 네 건과 경품 종류 및 예산, 연말연시 사회공헌 활동 취재 계획을, 우성그룹 두 실무자는 쓸어 넘기고 터치하고 확대하며 면밀히 검토했다. 부정 여론의 단계적 상쇄 및 기업 이미지 긍정화 제고를 위한 커버 콘텐츠 기획안이었다. 이런 불편한 물건이 어떻게 나라를 뒤집어놓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팀장은 디지털 기기를 어려워 했다. 김 팀장님, 앞으로 회의 자료는 그냥 인쇄물로 가져와주세요. 팀장 옆에서 대리가 싹싹히 맞소리를 보탰다.

취재 일정은 잘 짜 오셨네. 독거노인 김장김치 배달, 한부모가정 난방기기 설치, 장애인복지회 일일 도우미, ···. 소외 계층 대상 사회공헌들로만 고르신 거죠? 좋네요. 농촌 제설 작업이니 나눔 바자회니 같은 것들보다는 취약층 봉사 활동이 딱 시에스아르 느낌이니까. 김 팀장님 이제 우성 사람 다 되셨네? 그런데 요 퀴즈들은, 지금 이게, 문제들을 두 분이 직접 창작하신 건가?

팀장이 열 손가락으로 정수리 부위를 지압하며 물었다. 우성그룹 각 사업 부문과 관련한 퀴즈들이고, 블로그 콘텐츠를 읽어야만 정답을 맞힐 수 있는 방식이라고 기가 설명했다.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회사 직접 관련 문제는 피했으면 싶은데. 괜히 또 퀴즈 이벤트에 악플 달릴까 봐. 인사팀 애들 싼 똥이 어지간해야지···.

이 말에는 아무 곁장구도 붙지 않았다. 현안의 본질을 오물 처리로 규정한 팀장의 해학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듯, 담당자는 도리질을 하며 눈감고 웃었다. 기도 따라 웃었고, 그런 기를 김이 나지막이 주의시켰다. 넌 안 웃어도 돼.

난센스나 퍼즐처럼 가벼운 퀴즈들로 고쳐주시고, 늦어도 다음주 월요일 오후부터는 진행 들어가는 걸로 하죠. 그리고 경품은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말고, 좀 더 가격대 높은 거 뭐 없겠어요? 만 원 선은 돼줘야 많이들 달라들지.

커피와 조각케익 세트, 먼치킨 세트, 이런 것들이 무난하겠습니다.

김이 팀장에게 대답했다.

엘이디 초는 어떨까요? 요새 사회적기업들 보니까 이벤트 경품으로 많이 쓰던데요.

기가 옆에서 말했다. 팀장이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고, 김은 아쓱해서 녹차 한 모금을 마셨다.


기획회의는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리는 몽쉘 한 박스를 챙겨줬다.

김 팀장님하고 기 대리님은 바로 퇴근하시죠?

사무실 들러야죠. 작업물 빨리 드리려면.

김의 대답에 대리가 눈썹까지 구부리며 죄스러워 했다.

인사팀 똥이 아니라 우성 똥이잖아요. 이게 팩트죠. 괜히 두 분까지 생고생하시고. 죄송해요 진짜. 저는 요 밑에 이따 가보려고요. 남편도 애 데리고 온댔거든요. 잠깐이라도 서 있다 가야죠.

그러시냐고, 김은 웃었다. 기는 웃지 않았다.


와, 어마어마하네요. 와, 사람들 많은 것 좀 보세요. 와, 저도 한 번은 참석해야 하는데. 이천이년 월드컵 때 생각나네요, 와, ······.

들뜬 운전석 뒤에서 김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집을 펼치고는 싶고 들키기는 싫어 뒷자리를 택한 것이었다.

아까 우성그룹 지하 주차장에서 기는 죄송하다고 했다. 엘이디 초 얘기는 말실수였던 것 같다고, 시의성과 트렌드 반영이 기업 홍보 콘텐츠에 필수라 해도 촛불을 들이끼운 건 무리수였다고, 제가 주제넘었다고, 그냥 옆에 앉으시면 안 되겠냐고, 기는 머리를 조아렸다. 진짜 피곤해서 그래. 다리 좀 뻗고 있으려고. 김은 웃어주었다.

좌우 창밖을 쳐다보는 기의 눈이 이따금 백미러 중앙에 포착됐다. 김은 부러 두 발을 좌석 위에 올리고, 거울의 시야가 닿지 못하도록 시집 머리를 운전석 등받이에 바짝 붙였다.

오십사 오십오 두 쪽의 활자들이 몹시 떨었다. 회사 공용 차량은 연식이 오래돼 제동 시 차체 떨림이 심했다. 교통 통제로 가다 서다 서행하느라 승차감은 최악이었다.


가수는 입을 다무네, 가수는 입을 다무네, ······.


김은 시 제목만을 낮게 반복해 읽었다. 회의실에서부터 계속 생각났던 시였다. 내려다본 장면 속에 단지 “가수”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십오층 아래와 시의 정경 사이에 뭔지 모를 공통점이 감지되었다고, 김은 「가수는 입을 다무네」가 불러들여진 이유를 헤아려보았다. 이 시에 대한 선배의 설명까지는 차멀미 탓에 떠올리지 못했다.

시집을 닫고, 김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광장의 인파 쪽으로 향한 마이크와, 마이크를 뻗은 채 눈과 입을 다문 가수와, 가설 무대 양편에 놓인 대형 스피커가 보였다. 무심코 차창을 내렸을 때, 바깥의 온 노랫소리들이 김의 고막을 직격했다. 다리가 퍼뜩 오므라들 정도의 과중하고 비강도 높은 음파였다. 김은 놀라서 창문을 도로 올렸다.

아홉 시 반경에 김과 기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삼 년차 디자이너와 인턴 디자이너는 각자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의 입사 동기 하나도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힌 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어제 김은 두 디자이너들한테만 저녁 든든히 먹고 열 시까지 출근하라 일렀다. 미팅 과정에서 발생할 대량의 수정 작업을 대비한 조처였다. 동기는 우성그룹 실무 인력도 아니면서 왜 여기 앉아 있는지 김은 의아했다.


사무실 책장에는 추리, 스도쿠, 아이큐 테스트 관련 책들이 대여섯 권 꽂혀 있었다. 사오 년 전 써먹었던 참고서들이었다. 씨엠씨그룹 때도 퀴즈 이벤트가 있었다. 당시 만들어둔 원고 파일들은 황 과장이 사용하던 데스크톱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재활용할 방법이 없었다. 퇴사 예정자들은 본인 하드드라이브의 업무 자료들을 사내 파일서버 내 퇴사자 폴더 안에 제 이름으로 하위 폴더를 만들어 백업해야 하는데, 황 과장은 그걸 할 새도 없이 나갔다. 백업 씹고 그만두는 분들 진짜 민폐라고, 내가 일일이 다 옮겨야 한다고, 바빠 죽겠는데 언제 하냐고, 황 과장의 데스크톱을 회수해가며 기술지원실 막내 사원은 궁시렁댔었다. 그 직원마저 얼마 전 그만둔 터였고 퇴사자 폴더 안에 황 과장 이름은 여전히 없었다.

김은 퀴즈 이벤트 네 건을 새로 짜기로 하고 부사수에게 지침을 제시했다. 책들 보면서 쉽게 풀 만한 문제들 고르고, 텍스트랑 숫자만 바꾸는 식으로 하자. 똑같이 베끼면 저작권에 걸리니까 조심하고. 주관식 말고 객관식이어야 참여율이 더 높아져.

김과 삼년차, 기와 인턴이 각각 한 조를 이뤄 두 건씩을 맡기로 했다. 퀴즈 원고는 엠에스워드 기본 레이아웃으로 반 매도 안 되는 분량이었다. 디자인 품질을 낮추면 건당 공정 시간을 삼십 분까지도 맞추겠다고, 두 시간 안으로는 끝마치겠다고, 김은 예상했다.

기는 휴대전화로 광화문에서의 노래를 틀어놓았다. 실장이 있었다면 제지 당했을 짓이었다. 김 대리가 연차로는 우리 층 최고참이니까, 나 부재 중일 때는 실장 대리예요. 언젠가 실장이 했던 말을 김은 줄곧 어겨왔다. 대리할 일들은 늘 차고 넘쳤고, 거기에 실장 대리까지 추가하기는 벅찼다.

황 과장의 스피커로 듣던 그 가수의 목소리를, 이제는 황 과장의 자리에 앉아 예전 자신의 자리로부터 듣는 것이 김은 어색했다. 부사수와의 친교 못지않게 바뀐 자리 적응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했다. 그래서 기의 파티션 쪽으로 귀를 더 열어보았다. 왠지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기분이라고, 김은 싱거운 생각도 했다.

멀리서 너울대고 펄럭여 못 알아들었던 노랫말이 가까이 꽂혀 들어왔다. “덩크 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늘을 날 듯이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야”. 노래를 듣다가, 김은 회사 차 안에서 여닫았던 「가수는 입을 다무네」를 다시 열었다.


모든 세월이 떠돌이를 법으로 몰아냈으니

너무 많은 거리가 내 마음을 운반했구나

그는 천천히 얇고 검은 입술을 다문다

가랑비는 조금씩 그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한마디로 입구 없는 삶이었지만

모든 것을 취소하고 싶었던 시절도 아득했다


오늘 수업 때 배운 그 시 말야. 그래서 대체, 가수가 왜 입을 다물었다는 거야? 김의 질문에 선배는 술병과 안주 접시를 제치고 테이블 중앙에 시집을 펼쳤다. 이 여섯 행을 잘 읽어보라면서, 선배는 한 행씩 손으로 짚어가며 자기 식대로의 해석을 펼쳤다.


어떤 싱어송라이터가 신곡을 발표했어. 곧장 히트곡이 됐다 치자. 그러면 거리 곳곳에서 들리겠지? 카페든 쇼핑몰이든 이곳저곳 다 그 노래를 틀 테니까. 이어폰 꼽고 듣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 가수의 본거지는 한곳인데, 노래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떠다니는 셈이지.

불교에 법신이라는 게 있대. 법의 몸. 부처의 육신은 하나지만, 법신은 한계가 없어서 세상 천지로 나투어진다는 개념이야. 가수의 법신은 노래지. 자기 노래로 온 거리를 떠돌 수 있잖아. 게다가 그 노래가 자작곡이야. 가수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노래가 널리 퍼져나갈수록, 시구처럼 많은 거리들이 가수의 마음을 운반하게 되는 거잖아. 그런데 법으로 몰아내졌다? 금지곡 판정을 받은 거 아닐까?

노래가 금지됐으니 가수는 입을 다물겠지. 안 다물면 위법이잖아. 함부로 노래했다가 제 입이 머리카락처럼 잘려나가는 상상이라도 한 걸까? 장발 단속처럼 말야. 그래서 얇고 검은 입술이라고 표현했을까? 가랑비가 조금씩 머리카락을 적신다? 젖는 대상이 머리칼과 입술 둘 다일지도 모르지.

한마디로 입구 없는 삶. 이거 재미있지 않아? 입 구. 띄어 읽으면 한자 훈독이잖아. 삶의 입구가 닫히는데도, 입 구가 없는 것처럼 말 한마디 못했다는 후회겠지. 역지사지해봐. 자기 노래에 금지곡 딱지가 붙는 걸, 그저 입 다물고 바라봐야 하는 심정.

취소하고 싶었던 시절. 말 그대로 없었던 셈 치고 싶은 시절일 것 아냐. 금지될 노래들일랑 아예 안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입 다물 일도, 삶의 입구가 닫힐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아득하지.

인기 가수가 돌연 은퇴하면 팬들이 엄청 상심하잖아. 복귀 선언만 기다리면서 계속 그 가수의 동향을 주시할 거고. 노래에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가수의 다물린 입에 집중하는 셈이지. 언제쯤 다시 노래할까, 언제쯤 저 다물린 입이 열릴까, 자꾸 들썽이면서. 그러다 결국은 못 참고 감정을 발산하잖아. 돌아와요! 다시 노래 불러줘요! 입 다문 가수 덕분에 팬들의 입이 열린 거지.

「입 속의 검은 잎」도 그렇고, 「가수는 입을 다무네」도 마찬가지고. 두 시 모두 다물린 입에 대해 얘기하잖아. 입 속에는 혀 대신 검은 잎을 집어넣고, 노래해야 할 가수의 입은 다물려버렸어. 왜 그랬을까? 혀를, 입 열기를, 독자들의 몫으로 넘긴 게 아닐까? 당신의 혀도 검은 잎인가, 아니라면 내보여봐라. 당신의 입은 한 번이라도 열린 입인가, 그렇다면 증명해봐라. 노래해봐라. 이렇게 묻고 있는 게 아닐까?


열변이기는 한데 강론은 아닌, 그렇다고 강변이라 치부할 수도 없는, 선배의 취기 어린 시론이 김은 지금도 버거웠다. 제목에 “입”이 들어가는 두 시를 얘기할 때 선배는 유독 흥분했다. 가르쳐주기보다 가르치려 드는 말투, 반론도 부언도 불허할 기세인 말본새. 선배의 말뿐 아니라 어조까지 생생히 기억나버린 탓인지, 김은 조금 주눅들었다. 아까 본 광장의 풍경에 「가수는 입을 다무네」를 오버랩해보려던 시도도 덩달아 소침해졌다.

그 키 작은 가수도 노래 부르는 동안 자주 입을 다물었지, 입을 다물고 노란 마이크를 인파 쪽으로 뻗었지, 가수가 입 다물수록 노래는 너울댔고 국기들은 펄럭였지, 가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너울대고 펄럭이는 노래를 입 다물고 듣기도 하면서,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야, 모두의 노래를 주문으로 여물렸지, ······.

이 설은 감상이 스스로도 민망스러워, 김은 단상의 대상을 우성그룹 밖 광장에서 안 회의실로 급선회했다.

기가 이벤트 경품으로 엘이디 초를 초들었을 때, 김은 회의 내내 기가 광장의 주문을 외우고 있었음을 알아챘다. 그렇다 해서 광장 사람들의 시공간 안에 기의 존재도 뭉뚱그려지지는 못할 것이었다. 기도 자신도 광화문역 우성그룹 사옥 안에 있었던 거라고, 광화문에 갔었어도 광화문에 있었다고 얘기하기는 모호한 입장이라고, 회사에 있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광장의 노래를 틀어놓고 일하는 지금도 여전히 회사 안일 뿐이라고, 김은 과단하며 퀴즈 원고에 다시금 집중했다.

열한 시 반 조금 넘어 주말 근무는 끝났다. 디자이너들이 모니터 전원을 끄자 입사 동기도 나갈 채비를 했다. 인턴은 가방 안에서 엘이디 초를 꺼내 작동 시험이라도 하듯 두어 번 켰다 껐다 하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삼 년차가 먼저 퇴실했고, 오 분쯤 지나 인턴이 나갔다. 두 손으로 종이백을 떠받든 입사 동기도 뒤따라갔다. 양 손잡이 사이로, 흰 고래가 그려진 노란색 하드보드지 일부가 길쭉이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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