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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l 04. 2024

10년 쓸 생각으로 물건을 고르는 마음

 나는 4인용 식탁 테이블을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확한 구입 날짜를 기억할 순 없지만 아마 10년을 훨씬 더 넘었을 것이다. 넓은 책상을 갖는 것은 오랫동안 생각했던 내 작은 바람이었고, 비싸지 않으면서도 좋은 테이블을 고르고 싶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오래 쓸 거니까 잘 골라야지’하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재질, 색깔, 심플한 디자인을 살폈다. 나무의 따뜻한 질감을 좋아하는 나는 세라믹이나 다른 소재보다는 원목 소재의 테이블을 찾았고 가격과 디자인까지 살펴 마침내 고무나무로 만들어진 이 테이블을 선택했다. 고무나무는 습기와 햇빛에 잘 견디고 단단해 가구의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나무 무늬가 그대로 살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밝은 색상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얼룩이 묻어도 물걸레로 닦을 수 있어 관리하기도 편하다. 그렇게 구입한 이 테이블은 내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원두를 갈면, 커피숍의 넓은 테이블이 되고, 밥을 먹을 땐 넉넉한 식탁이 된다. 깔끔하게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이 책 저 책 펼쳐놓기도 하고, 노트며, 볼펜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테이블이 넓어 여유 있게 책도 읽을 수 있고, 컴퓨터 작업도 할 수 있다. 비싼 테이블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잘 사용하고 있다.  


 테이블과 달리 내가 오래 사용하지 못하기도 하고 늘 고민인 물건이 있다. 바로 옷이다. 계절이 바뀔 때면 늘 옷장을 열어보며 고민한다. ‘작년에 뭐 입었지?’ 마땅하게 입을 옷이 항상 없다. 키가 작고 왜소한 나는 내게 꼭 맞는 옷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사이즈와 디자인 선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옷을 고르게 되고 오래 입을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작은 물건을 사더라도 10년 쓸 것이라 생각하며 고르는 것과, 1, 2년 쓰다 버릴 것이라 생각하며 고르는 것은 다르다. ‘좀 쓰다 버리지 뭐’ 하는 마음으로 고른 물건은 정말 한두 해 밖에 쓰지 못하고, ‘이번 여름에만 입자’라는 마음으로 구입한 옷은 다음 해 여름에는 입지 못할 상태로 변해 있다.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옷을 고른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냥 한 철만 입지 뭐’라는 생각으로 옷을 구입했던 건 아닐까? 한두 해 입고 말 옷이라 생각하면 아무래도 섬유의 재질, 촉감, 바느질 상태 등을 대강 보게 된다. 오래 입을 옷이 아니므로 상대적으로 덜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다.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단순히 물건뿐만 아니라 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잠깐 하고 말 일이니까, 오래 볼 사람은 아니니까, 좀 쓰다 버릴 물건이니까’라는 마음은 대상을 향한 마음을 쉽게 만든다. 오래 볼 사이, 오래 쓸 물건에 비해 ‘잠깐’이라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접근하고, 쉽게 그만두는 것이 가능하다. 조심스레 물건을 다루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질 것, 길게 생각해야 할 것이 없으니 간단하고 편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원했던 물건, 내가 하고 싶거나 원했던 일이 아닐지라도, 함부로 다룰 일은 아니다. 결국 옷이건, 테이블이건 가격이 아니라 물건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 문제일 지도 모른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인연이 있어야 내게로 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잠깐의 인연으로 내게 온 무엇이라 할지라도 오래 쓸 물건, 내일 또 볼 사람처럼 소중하게 다루고, 진심을 다한다면 언젠가 그 인연은 돌고 돌아 또 다른 좋은 인연으로 나와 연결되지 않을까? 오래된 나의 테이블에서 막 내린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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