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
봄이라기엔 너무나 겨울같던 하루. 눈이 정신없이 내린 하루. 하루종일 먹는 것 외에는 누워있던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것은, 나의 몸과 정신이 그동안 축적한 피로에 대한 항변 같달까.숫자를 보며 매일 살았지만, 어느덧 봄이 중반에 왔다. 사월하고도 여덟일을 보냈다. 오랫동안 이곳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나는 많이 썼고 많이 감사했음을 기억한다.
지난주엔 콰르텟 팀 친구들과 토요일에, 월요일엔 콩세흐 스피랑 함께한 연주 "아리안 바뀌스", 목요일엔 pergolèse의 statbat mater 까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육체적 한계를 제대로 맛본 시간이었다. 4월이라고 느껴지지 않게.. 3월 중반부터 시작됬던 프로젝트들은 연달아 오늘까지 이르렀고, 그 시간동안 몸이 아픈것을 떠나, 행복했던 기억/음악들이 있다.
연주 기록을 해봐야겠다.
Pergolèse, Stabat Mater, Choeur de la Maîtrise de Paris
4월 7일
Cheour de la Maîtrise de Paris 와 함께한 프로젝트인데, Concert Spi의 Ariane et Bacchus 프로젝트와 겹쳐 갈 수 있는 모든 시간을 갔고, 총 무대까지 세번의 연습+연주를 마쳤다. Concert Spi와 일정이 겹치면서 이것을 못한다고 했는데, 프로젝트 시작 이틀전에 연락와서 '아무래도 너 이거 해야될거 같아. 아주.. sport일꺼야.' 라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메세지를 무시했는데, 쓸떼없는 책임감, 그리고 한 알란이 보내온 메세지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콸텟 친구들과 식사하며 이 프로젝트 지휘자 이야기를 했는데, 별로 큰 도움이나 감흥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 했다. 프로젝트 연습을 가보니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더라. 그는 오케스트라 표현에 대한 자신이 없어보였고, 소리를 만들어 갈때,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음악을 만들어 갔다. 근데 그게 너무 좋았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쉬웠다. 내가 지난 2주동안 프랑스 17세기 음악을 잔뜩 하고와서 모든 소리가 프랑스 같다는것을 어찌 알아채셨는지 "프랑스 음악 아니야, 이탈리아야.. 절절하게, 달게, 흐느끼게.." 등등 여러표현으로 내 소리를 바꿔주셨다. "악기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문장을 반복하지만 않아도, 그녀는 충분히, 오케스트라도 잘 이끌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아. 잊은게 있다. 물론 Statbat Mater가 메인이긴 했지만, 비발디의 심포니와 madrigolèse 콘체르토도 있었다. 나는 거의 초견상태로 무대에 올라야 했고, 음악적인 이해가 전혀 없이 연주했다. 그저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뿐. 어떤 소리가 탄생되어 관객에게 이르렀는지 나는 모르겠다. 지휘자의 오케스트라에대한 자신없음, 전체적 연습량의 부족 등이 이유인 듯 하다.Pergolèse Statbat Mater에서 예상못한 실수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그녀가 원했던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고, 친구들에 의하면, 소리가 잘 표현되었다 했다. 12번 인트로에 내 작은 솔로가 있었는데, 반대편 친구들의 소리가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아서 첫마디를 온전히 소리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렇게 첫 멜로디를 전달하지 못한채 두번째 멜로디로 가야하는 아쉬움. 그렇지만, 두번째 마디를 또 망칠수없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 음에 집중해야 하는 것.. 연주 후에 친구들의 격려에 '나 아까 그 솔로.. 음정 몇개 처음에 먹었잖아.'라는 이야기를 하니 '뭔 헛소리야.'라는 그들의 격한반응이 있었다. 그래.. 다행히 남들은 모르는구나. 나는 스스로 자책이 너무 크구나 생각도 들었다. 기적 중 하나는, 연습때에 그리 세어나오던 기침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연주 중간중간 불안한 마음에 민트맛 사탕을 잔뜩 물고 있어야 했지만, 연주 후에 친구들과 한잔하는 회포.. 연습을 온전히 참여하면서 그들과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지만, 내게는 이 연주를 별 사고 없이 해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 지휘자가 나를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해주었는데, 합창단 아이들이 격하게 환호 박수를 보내주어 놀랐다. 그들을 향해 인사할 수 있어 고마웠다. 그들의 천사같은 목소리, 작은것 하나에도 즐겁고, 멈출 수 없는 수다, 좋은 것은 좋은것이라고 꼭 눈빛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아이들 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잠시 그 아이들 덕분에 나의 교사생활을 떠올렸다. 말과 생김새는 달라도 아이들의 모습이 아주 닮았다.
Concert Spi "Ariane et Bacchus", Hervé Niquet 4월 4일
시작은 매우 훌륭했다. 나는 수많은 지휘자에 루머를 들었음에도, 그를 3-4년전 합숙을 통해 몇번 만나 연주한 적이 있기에, 그를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 되려 너무 기대되고 반가웠다. 재미있던 것은, 그가 학생을 대할때와 다름없이 앙상블 사람들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삼십년이상 함께 연주해온 단체의 작업이란. 그의 한마디에 모두가 펜을 들고 적는 분위기란. 다른 단체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같은 큰 앙상블이지만, Musicien du Louvre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더 많아서 일까? 분위기가 어색해서 입을 닫고 있거나 눈치를 보는 상황은 전혀 없었다. (어쩌면 좀 눈치를 봐야했을지도..) 그래서 사고가 더 있었던 거 같다. 시간 체크가 부족해 긴 식사시간이라는 착각에, 첫날 연습에 1분.. 늦었고, 좀 더 일찍 나갔어야 했는데, (물론 이미 몸 상태가 안좋았던거 같다), 그러지 않고 시간에 맞춰갔다가 눈이 오고 길을 헤매면서 10분 지각한거.. 다 포기한 마음으로 죄책감 가득해 버스에 몸을 싣었는데, 같은 버스에 다른 음악가가 있어서 말을 걸었다. 아 나만 늦은게 아니야. 싶은 죄책감을 나누고 싶었는데,ㅋㅋ 그녀 왈 "아, 우리는 11시 (한시간 후)에 연습 시작해." 한시간 전에 도착하는 그들의 클라스. 이것은 큰 깨달음이었다. 프로와 학생의 차이.. 나는 앞으로 어떤 연주든 삼십분 일찍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나의 건강하지 못함은 월요일에 되서야 빛을 발했다. 연습 기간동안 류간사님이 오셨고, 덕분에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미 헤롱거렸던 몸은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던 일요일을 만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월요일 연주는 콧물과 눈물이 가득한 연주였다. 가까스로 참아보려던 기침에 일분일초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내 짝 에밀리, 반대쪽 짝 오귀스떵은 나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도왔다. 따뜻한 차, 무대에서 마실 물, 코 풀 휴지, 약, 등.. 내가 이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왔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아쉬운 것은 기침을 참아내려는 노력에 온갖 힘을 기울다 보니 음악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샹젤리제의 시간. 나는 샹젤리제에 자꾸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온다. (지난 1월 코로나로 연주 못감..) 연주 후, 녹음작업까지, 이 만남이 처음이자 끝이 아니길 바라면서... ;)
음, 오퀴스텅 얘기를 좀 적어야 겠다. 내 옆자리의 그는 진정 17세기 연주방식으로 연주했다. 가슴에 바이올린을 대고, 활도 연주를 위해 새로 깎아온 (?), 음악의 찐.. 알고보니 비올의 두 어르신의 아들이었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고함이 그 바이올린 소리에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이 연주는 그의 음악세계의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것. 내 선생님 벤자민도 이 단체에서 자주 연주하는데 그가 이 곳 '멤버'이지 않냐는 내 질문에 '멤버가 어딨어 ?멤버라는 이야기는 곧 이 연주만 한다는 뜻인데'라는 모순을 보게해 주었다. 그래. 한곳에만 소속되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것, 음악에서는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4월초 치뤄낸 오디션의 쓰라림에서 나온 깨달음과 비슷했다. 내가 오디션이 있을때마다 나의 구미를 그들에 맞추려 가진 노력을 하기 보다 내길을 파는 것에 더 열심을 내야겠구나. 그러던 중 오귀스텅을 만나보니, 그의 행보가 내가 원하던 이상향을 좇는 것 같아, 더욱이 멋져보이고, 그 길에 대한 확신이 내 안에 더 생기는 것 같다. 그래. 나도 그렇게 살고 싶네.
Quatuor à cordes, Quatuor Libre Ésprit,
3월 26일, 4월 2일
뱅센에 이어 두번째 연주, 지난날 392로 연주하고 줄을 올리지 않았고, 콰르텟 곡은 일주일동안 건들지도 않았다. 연주 두시간전 리허설로 줄을 430으로 올리고, 연주를 하는데, 뭐야. 이렇게 불편한 음색은.. 하는 생각. 내 소리가, 우리의 선율이 너무 어색하게만 들렸다. 음악도 기억에 안나는 기분. 연주 전까지 당황한 마음은 어쩌면 연주에도 들어났을 것이다. 작은 관객들은 우리의 작은 몸짓과 숨소리에도 반응했고, 연주 후, 음악을 하는 한 친구가 가감없는 그의 평을 들려주면서 그냥 좋은게 좋은 것 이라는 내 생각에 조각을 내었다. 생각지도 않게 큰 투자를 하고 있고, 소비가 내 마음의 크기를 넘어서는 상황이다. 두번의 연주를 하기위해, 우리는 큰 돈을 들여 교회를 빌렸고, 그만큼의 인원동원이 되지 않았다. 이 팀과 일하는 것에 대해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거나. 우리 팀에 대한 나의 입장을 좀 더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할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가. 그럴만큼 그들을 신뢰하는가. 그럴만큼 이것이 나에게 의미있는가. 그럴만큼 연주에 만족이 되는가. 무엇이 되었던 간에, 내 친구들이 아홉명이나 와주었다. 마누, 마누의 친구, 마조, 마조의 엄마, 금빛, 금빛의 친구, 조일라, 페도라, 재식.. 덕분에 우리의 연주가 살았다.
아, 벵센에서 연주할때는 내 몸상태가 이미 좋지 않았는데, 보면대를 가져오지 않아 우리 팀이 서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성당 보면대는 내려가지 않아서,,) 연주에 왔던 마리아가, 우크라이나 친구 나탈리아와 함께 와주었고, 덕분에 멋진 영상을 선물받았다. 연주 후 뒷풀이 저녁식사에 마리아도 함께 갔는데, 덕분에 내친구들 사이의 새로운 접점이 생겨서 신기했다. 그리고 존재 자체가 빛인 마리아가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빛을 내는 모습이 나는 경이로웠다. (이것은 마리아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고로 나만 이해하는 문장)
Pastorales, André Campra : Amarillis, Matho : Tircis et Célimène
3월 17, 19일
음. 가장 기분 좋았던 3월의 프로젝트였다. 학교에서 주어진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내게 악장 자리가 맡겨졌던 것이라, 더 애정이 생겼던 것도 같다. 늘 자신없는 바로크 음악에 내가 중요한 자리라니. 하는게 어색하면서도, 덕분에 많은 책임을 배운 시간. 줄을 마추고, 활을 정하고, 다른 파트와 음악을 공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휘자와도 생각을 교류하는 (이건 잘 안됨) 자리임을 배웠다. 일주일동안 베르사유에서 연습하면서, 오고가는 기차에서 읽은 이어령의 마지막 강의 책도 너무 좋았고, 연습실로 사용했던 교회 강당도 너무 따뜻했다. 같이 연주한 CMBV 친구들도 편안하고 좋았다. 내가 소극적이게 멤버로만 있을때 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던 것을, 어쩔 수 없이 되었던 악장이라는 적극적인 자리에서 누리는 것들. Yoann moulin이라는 클라브상 연주자가 Tours에서 도와주러 왔었는데, 나랑 같이 연주하는 친구들보다 사실 나와 비슷한 또래임을 (그도 알진 모르겠지만) 알고 나니, 그와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 덕분에 듣지도 않던 클라브상 음악을 한참을 들었던. '파리에서 종종 연주하니?' 라는 물음을 그가 내게 되물으면서, 나와 그의 차이를 느끼며, 치아키샌빠이를 바라보던 노다메처럼 선배를 다시 만나기위해, 선배와 같은 선상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하 하 하. 베르사유에서의 하늘은 잊지 못할 것이다.
연주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잘 하고 있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