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정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물질의 영향을 받아 그 결과로 나타날 뿐이죠. 그러니 몸으로 익히세요. 필사하세요. 몸이 먼저 기억합니다. 머리보다 더 정직하고 정확해요...."
귀한 말씀을 받들어 필사로 읽기를 시작했다. '맡겨진 소녀.' 눈으로 건성건성 읽고 영화도 두 번이나 보았다. 읽고 난 후기도 한 번 더 수정했다. 놓칠 뻔했던 에드나 이모 부부의 결핍 요소를 상기하며 슬프고 아픈 감정의 깊이가 더해졌다고.
필사로 다시 읽으며 묘사가 잘된 부분은 처음 읽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묘사가 섬세함에 놀라는 강도는 달랐으나 부담없이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다른 감각적 묘사가 눈에 띄었다. 처음 눈으로 읽을 때는 시각묘사를 유심히 봤다면 필사로 읽을 때는 후각적 묘사나 인물의 심리나 사건의 배치와 역할을 발견하여서 반가웠다. 돌봄과 배려하는 태도에서 양극화된 인물들의 성격까지.
브릿지 선생님은 하루 삼십 분 필사로 몸을 작가의 신경세포로 바꾸라고 하셨다. 신경 회로가 작가처럼 움직이도록. 되도록이면 아주 좋은 작품을 골라서 따라쓰기를 하라고. 처음 선택한 '맡겨진 소녀'는 부담없는 분량이나 섬세하고 간결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내용과 구성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대로 따라쓰기를 하며 작가를 흉내내었으니 내 몸의 시냅스는 벌써 클레어 키건을 닮아 있으리라 믿는다.
통찰이 뛰어난 문장을 읽으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나 인물의 심리, 사물의 현상과 관계, 움직임이나 변화와 흐름... 무딘 시선과 감각으로 지나칠 뻔했던 찰나를 더 예민해진 눈으로 읽는 일은 축복일까, 형벌일까.
크하하. 오늘은 괴로운 시인의 경지를 논할 형편이 아니다. 쓰지 않는 요즘은 있던 회로도 막힐 지경이니 무조건 읽고 쓰며 달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