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밭고랑을 지나 걸어오고 있었다. 해가 떠서 음지와 양지의 구분이 생기자 언덕의 그림자나 숲의 그늘로 가려진 곳에서는 언 흙이 부서지는 버석이는 소리가 들렸으나 해가 내려쪼인 곳은 녹기 시작하여 붉은 흙이 질척해 보였다. 다가오는 사람이 숲 그늘을 벗어났는데 신발 끝에 벌겋게 붙어 올라온 진흙 뭉치가 걸을 때마다 뒤로 몇 점씩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영달이 쪽을 보면서 왔다. 그는 키가 훌쩍 크고 영달이는 작달막했다. 그는 팽팽하게 불러 오른 맹꽁이 배낭을 한 쪽 얶애에 느슨히 걸쳐 메고 머리에는 개털 모자를 귀까지 가려 쓰고 있었다. 검게 물들인 야전 잠바의 깃 속에 턱이 반 남아 파묻혀서 누군지 쌍통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몇 걸음 남겨 놓고 서더니 털모자의 챙을 이마빡에 붙도록 척 올리면서 말했다.
"천씨네 기시던 양반이군."
...(황석영, '삼포가는 길')
가상공간에서 파도타기를 하다가
낯선 듯, 익히 오래 전 알고 지낸 듯한 동년배를 만났다.
글쓰기의 기본을 말하는 그의 태도가
간만에 찾은 깊은 숲속에서 만난 옹달샘 만큼이나
참신하고 진지하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문장을 잘 만들고,
단락을 잘 만들면 된단다.
단락을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품새가 남다르다.
마치 내가 할 말은 이 한 줄에 다 담았다는 듯이
눈에 스치는 찰나의 광선이 매섭다.
이것은
굉장히 정확하고,
정직하고,
효과적이고,
아주 가벼운 방법이라고
철물점 강력 본드처럼 덧붙인다.
글쓰기 모든 개론서에서 똑같이 언급하는 이 내용이
새롭고 신선한 이유는?
그의 태도이리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바탕 자료가
생명줄처럼 그의 말을 지지한다.
영어 알파벳에 숫자를 붙여
attitude를 합산하면 100이 된다던가.
요즘 나는 20쯤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