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봄날,

달래와 진달래

by 다섯손가락

달래를 캤다. 흙을 털고 물로 씻는다. 마른 나뭇잎이나 솔잎은 가려낸다. 흐르는 물에 삼십 분 가까이 손질하니 말끔해진다. 푸른 잎은 잎대로 길다랗게 제 자태를 자랑하고 흰 줄기는 뽀얀 살을 길게 뽑으며 날씬한 미인의 목인양 으스댄다. 잔뿌리를 긴 수염처럼 달고도 둥근 뿌리는 귀찮은 줄 모른다. 단지, 아직도 통통하게 살이 더 올라 더 성숙한 모습이 되려는데 어느 무지막지한 손에 납치되어 이 모양으로 공개된 게 애석할 뿐이다.


“에고. 내가 이 한 주먹 캘라꼬 얼매나 고생했는 줄 아나? 마른 가시에 찔리감시로 검불숲을 다 걷어내고, 흙덩어리는 찰찰 수십 번이나 씻고, 생기다만 이 작은 걸 일일이 손으로 다 가맀다.”


그러니 고생한 걸 생각해서라도 하나도 안 버리고 다 먹어야 한다고 엄마는 다짐을 두었다. 오늘 아침처럼 엄마 목소리는 생생하다.


봄철이면 엄마는 제일 먼저 어린 쑥을 캐러 간다. 뒷산 너머 하촌리, 드무실까지 다녀오는 등에는 봄나물이 한가득이다. 날마다 그 양은 늘어가고 냉이, 쑥, 쑥부쟁이, 달래, 머위가 한 달이나 지나면 미나리, 두릅, 오가피순, 제피로 이어진다.


봄나물은 들이나 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옥상 통통이 들어앉은 엄마 밭에도 뒤질세라 키 자랑을 하며 올라오는 봄 채소가 파릇파릇하다. 겨우내 추위를 견디고 의기양양하던 겨울초와 대파는 개선장군처럼 큰 키를 떡 버티고 섰다. 부추가 먼저 고개를 쏘옥 내밀면 물이 자작한 통에 미나리도 연두빛 새순을 밀어올린다. 잔파 사이로 뿌려놓았던 씨앗은 다시 어린 시금치를 낳고 키운다. 봄은 온통 새싹 축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입맛을 돋우는 녀석은 달래다. 엄마 정성일까. 엄마 추억 때문일까. 채소들이 간택받은 달래를 질투하거나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그 만큼 봄엔 달래를 따를 봄나물이 없다.


달래장, 달래무침도 하고 된장국에 봄 내음 가득 넣어도 좋다. 하지만 그 향 그대로 즐기기엔 달래무침이 최고다. 요리도 간단하다. 먹기 좋은 길이로 종종 썬다. 집간장 적당히 혹은 약간 모자란 듯이 끼얹는다. 색감좋게 고춧가루를 적당히 뿌리고 고소한 깨소금 분쇄하여 넣는다. 단맛은 기호에 맞게 즐겨 쓰는 것으로 맞추면 된다. 곧바로 비벼 먹으려면 참기름도 좋다. 하지만 반찬통에 넣어두려면 참기름은 뺀다. 먹기 전에 첨가하면 되니까.


오늘은 고향 산천 중허리를 누볐다. 지난주에 마저 못한 달래를 캐고 밭을 확장하려고 서너 군데 모종을 옮겨 심었다. 약간 그늘지고 땅이 폭신폭신 부드럽고 사람 눈길이 잘 가지 않는 곳이 제격이다. 정구지밭 옆 비탈이나 머위순이 올라오는 뒤쪽으로 군데군데 심었다. 때마침 보슬보슬 봄비가 사흘씩이나 내린다고 하니 오늘 모종은 천복을 누리는 셈이다.


진달래 묘목도 심었다. 진달래가 지천인 자그마한 솔섬으로 놀러 갔다가 어린 몇 포기를 안고 왔다. 어제 일이다. 관광객과 순례객이 연이어 꽃길을 밟았지만 그들 눈에 띄지는 않았다. (지금은 글로 그 증거를 남기지만) 순회하는 공무원이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만나지 않았으니 무사했다. 얼마나 다행이고 행운인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진달래가 우리 품에 안기려고 기회 포착을 아주 잘한 것 같아 웃음이 벙글벙글 터진다.


두 해 전에는 인터넷으로 묘목을 고가에 구입했다. 그때 심은 열 그루는 두 녀석만 생존 상태다. 진달래 습성이 그렇다. 약간 그늘진 곳, 시원한 곳을 좋아한다. 볕바르고 하늘이 훤히 보이는 땅에는 자라지 못했다.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다. 그러니 더욱 마음이 간다. 어쩜 자기를 심은 주인을 요렇게나 닮았을까 싶다.


오늘은 개화를 시작한 여섯 그루다. 여름에도 그늘이 들어 시원한 곳으로 여섯 군데 자리를 잡았다. 뿌리가 쉽게 안착하도록 깊게 팠다. 새로 산 호미가 너무 뾰족하다고 투덜거렸는데 오히려 땅 파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비가 촉촉이 내린 땅에 심고 보슬보슬 천연 물뿌리개가 골고루 비를 뿌리니 단비도 이런 단비가 없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면 우리 산도 진달래 동산이 될 것이다. 그럼 조상님들도 흐뭇해 하실테고 지나다니는 길손도 방실거리며 찾는 이도 많아질 테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래. 오늘 식목은 잘한 일이다. 비록 몰래 업어온 여섯 식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