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섬 진달래
미완성 이십 절.
삼월 하순이면 진달래가 지천인 곳이 있다. 솔섬. 이름으로는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그곳을 찾는 이들은 소나무가 아니라 진달래를 보러 들른다. 이름처럼 소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진달래가 가득한 그 작은 섬을 모자처럼 푸르게 가득 덮고 있는 것은 소나무였나 싶다.
소나무 아래로는 연분홍, 진분홍 진달래가 가득하다. 바닷가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봄의 전령사 진달래를 편하게 만끽할 수 있다. 키보다 웃자란 큰 무더기도 있고 이제 막 새 삶을 시작한 어린 나무도 있다. 섬 전체가 진달래 천국이니 탄성은 자연스런 꽃 인사가 되고 상춘객들은 연신 카메라를 들이댄다.
남쪽 바다로는 더 작은 새끼 섬도 있다. 조개껍데기가 잘게 부서진 해변을 따라 걷다가 곧 도착하는 작은 섬에는 벼랑끝 위에 연분홍 꽃무더기가 살랑살랑 매혹적인 손짓을 건넨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방문객은 꽃을 머리에 이거나 꽃받침을 하는 손동작으로 봄꽃의 프러포즈를 받는다.
그 아래로는 굴밭이다. 볕바른 물가로는 파래 뜯는 아낙들이 열심이다. 차르르르 차르르르 파도가 발밑으로 넘실넘실 춤을 추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해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봄은 들판 쑥이나 달래에만 온 게 아닌가 보다. 어느덧 바구니마다 푸르고 싱그러운 파래가 소복소복 차오른다.
어릴 적 시골에서 굴을 까 본 적이 있는 나는 적당한 돌멩이 들고 다닥다닥 붙은 굴 눈을 찾는다. 단단하게 입을 닫고 있는 꽁무니를 향해 돌을 내리치면 뽀얀 굴이 나온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수확하기는 힘들다. 서너 번은 정성을 들여야 굴 한 마리를 입에 넣을 수 있다. 겨울철 생물이라 그늘지고 시원한 곳이 싱싱하고 맛나다. 그 맛을 혼자만 즐기겠는가. 동행한 남편을 우선 챙기랴 수고한 나도 한 점 먹으랴 분주하다.
해변을 나와 다시 진달래 사이로 난 외길로 오른다. 온통 분홍이다. 물감을 뿌린 듯, 그림을 그린 듯, 색종이를 다닥다닥 오려 붙인 듯 꽃잎만 눈에 가득 담긴다. 꽃에 취하고 봄기운에 취하고 폭신폭신 흙길에 취해 섬을 한바퀴 돌고 나면 진정 봄처녀가 된다. 나이는 상관없다.
철없이 즐기기만 했을까. 허전한 구석이 있어 둘러보니 가방이 없다. 계절에 맞게 꽃무늬가 수놓인 손가방을 챙겨서 출발했는데 없다. 차에서 내릴 때만 해도 있었고 첫 사진을 찍고 나서도 손에 들려 있었다. 마실 물이랑 커피가 든 가방이다.
'좀 무거운데 저 사람한테 맡기나 어쩌나...’
고민했던 순간도 기억이 난다. 해변으로 내려갈 때 손에는 손전화밖에 없었다. 예쁜 조가비를 주워서 담을 것이 없어서 자켓 주머니에 넣었으니 그렇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한참을 가다가 깨달았으니 되돌아가는 길도 멀다. 심리적인 거리는 수십 키로가 될 것만 같다.
부랴부랴 달려간 솔섬에는 소나무와 진달래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꽃가방은 흔적도 없다. 행인도 모를 터. 귀신이 가져가지는 않았을 것인데...
‘시골 할머니가 예뻐 보이니 들고 갔을까.’
‘마음씨 착한 여행객이 친절하게 파출소에 갖다 놓았을까.’
가방 잃은 주인은 고민이 많고 생각이 번잡하다. 운전하는 우리집 살림꾼은 큰소리 내는 나팔이 터졌다. 이 순간을 몇 년 전부터 호시탐탐 노린 사냥꾼처럼 쉬지도 않고 화살을 쏘아댄다.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느냐,
산책하러 나가면서 가방을 뭣하러 들었냐,
귀중한 건 집에 두고 간편하게 다니지 이게 무슨 꼴이냐.
통장도 모두 정리하고 카드도 없애라.
빨리 분실 신고를 해라.
카드랑 통장을 다시 만들라모 얼마나 귀찮냐.
요즘 세상에 가방이 왜 필요하냐.
이제 나이가 들수록 정신이 흐려지니 소지품을 줄이고 최소화해라.
물건을 잘 간수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을 나쁜 사람 만든다.
가던 길을 돌아오니 연료비는 두 배로 든다.
점심시간 지난 지가 한참이다.
주말인데 공무원 누가 근무하고 있겠냐.
멍청하니 곁에 같이 사는 사람도 힘들다.
꽃 구경하러 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
...
꾸지람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빼고 있을 때 가방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면사무소 직원이 순회하다가 인근 파출소에 습득물로 접수했으니 가져가라는 전화였다. 이런 소식을 듣고도 칼국수를 후루룩 먹으면서 타박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하겠다’라는 남편 말을 따라 복창을 하고서야 기나긴 잔소리는 멈추었다. 남편의 미완성 이십 절 사연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