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어온 선인장 하나, 둘, 셋

선릉 게발선인장

by 다섯손가락

계절마다 찾아드는 꽃이 다르다. 이른 봄에 매화로 시작하여 진달래, 목련, 민들레, 개나리를 지나 산수유, 벚꽃, 라일락, 앵두, 살구꽃이 그렇다.


내겐 특별한 녀석도 있다. 꽃이 귀한 한겨울에 피기 시작하여 여름 문턱 유월까지 피고 지기를 이어달리기하는 게발선인장이 그렇다. 생김새에 따라 '게발'을 앞머리에 붙이거나 '가재'를 놓기도 한다. 그러니 게발선인장라고도 하고 가재발선인장아라고도 부른다. 아마도 그 잎이 뾰족하고 날렵하게 생긴 모양대로 가재, 게발을 붙였을 게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재이고 어떤 게 게발인지 항상 헷갈린다. 이 녀석이 좀 갸름하여 게발이라 하였다가 저 녀석을 보면 또 게발 같기도 하고 짧고 통통한 가재발 같기도 하여 그렇다. 좀 더 뾰족하고 날렵하고 덜 뾰족하고 둥그스럼한 외양으로 구분할 뿐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엄마한테서 들은 대로 '게발선인장'으로 통칭할 수 밖에 없다.


이 게발은 이미 말한 대로 엄마 선인장이다. 엄마는 게발선인장을 잎이 무성하게 키워내고 숨이 간당간당 넘어가듯이 힘이 없는 녀석도 싱싱하게 기운을 차리도록 살려낸다. 한 포기 이식하면 한두 해만 지나도 동네 입구에 서 있는 정자나무처럼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 화분으로 키운다. 서너 해가 지나면 그런 화분이 너댓 개로 불어나니 방문객마다, 이웃들마다 부러움과 탐심을 감추지 못한다.


엄마가 잘 키운다는 칭찬은 잎 성장보다 꽃이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할 때 깨알같은 연분홍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에는 절정을 이루며 송이송이 열린다. 가지 끝마다 꽃송이가 한두 개씩 달리니 화분 하나는 거대한 꽃바구니로 변신한다. 한겨울 거실에 배달된 대형 꽃바구니. 누가 보냈을까.


그 개화 시점에 맞추어 일명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까 포인세티아와 경쟁자인 셈이다. 꽃말이 포인세티아는 성탄절에 맞게 '축복'이고, 게발은 '불타는 사랑'이다. 엄마의 사랑은 누구를 향해, 무엇을 향해 그렇게 불탔을까. 분홍이나 빨강으로 발갛게 피어오르는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살피노라면 그 열정을 읽을 만하다. 부드러운 가지 끝에 매달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축축 늘어져서는 온 힘을 다해 꽃잎을 벌린다. 얇디얇은 꽃잎을 천사 날개처럼 한껏 뒤로 젖히고 하얀 꽃술은 앞으로 내밀며 치켜세운다.

’이래도 나를 안 볼 거야.‘

’이만큼이나 너를 사랑한다고.‘

활짝 가슴 열고 이토록 너에게로 가고 싶어.‘

...

이제 봄이다. 뜨겁게 불타던 크리스마스 선인장은 잎을 모두 떨구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던 나에게는 또 다른 게발이 찾아왔다. 유월에 피는 녀석이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벌써 꽃눈을 내민다. 이번 셋은 지난 일월 마지막 모임 때 점심을 먹었던 추어탕집에서 업어온 녀석들이다. 싸륵싸륵 창밖 눈 내리는 선릉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녀석 중, 유난히 데려가 달라고 아우성치는 아이. 업어오지 않을 수 없다. 주인장 허락을 받아 곱게 티슈로 감싸서 가방에 담았다. 따뜻한 남쪽으로 달리고 달려 뿌리내린 이 봄. 삼총사는 다정하게 봄 인사를 건넨다.

방가방가

하나, 둘, 셋.

KakaoTalk_20240401_게발선인장.jpg

맺힌 꽃눈 개수가 다르다. 마치 출간 순서를 정하고 출판 횟수를 알려주는 예언자 삼 남매 같다. 느티나무, 찰나, 윈스턴. 아니다. 글자수로 말하자면, 찰나, 윈스턴, 느티나무인가?!

’불타는 사랑‘

그 이름대로 유월에는 뜨겁게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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