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Opioid Crisis와 뉴욕 응급실에서 경험한 나의 약물 이야
약물. 중독.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이 두 단어는,
뉴욕시에서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고 꽤 오래 프랙티스를 하다 이제 완화의학을 하는 나에게 아주 친숙한 단어들이 되었다.
나는 2000년대 후반에 앨라배마에서 내과 인턴으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에도 제약회사의 입김이 닿아 있지 않았나 싶지만 그때는 한창 통증이 제6의 생체징후라고 중요시 여기며, 환자의 통증을 1-10으로 정량화하는 통증 스케일 혹은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찡그림의 정도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스케일을 쓰면서 환자의 고통을 중요시 여겼다(그렇다고 해서 통증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옥시콘틴, 엠에스 콘틴, MSIR 같은 완화의학을 하는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마약성 진통제를 그때 처음 배웠었더랬다. 한국에서 갓 건너와서 사람도 다르고 질병도 다른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던 그 시절, 미국은 진통제를 좀 세게 쓰는구나 싶긴 했지만 여기는 원래 환자의 고통에 이렇게 세심하게 반응하나보다 보다... 하면서 일종의 문화 차이로 여기며, 그저 시키는 대로 Lortab 매 4- 6시간마다 2주 치 처방을 퇴원하는 환자분들께 날려대었다.
그렇게 인턴을 마치고 뉴욕으로 건너와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은 브롱스는 지금도 무서운 곳이지만, 내가 수련을 받던 그때는 더더욱 어마무시한 곳이라 나는 수련받으면서 정말 세상의 오상만상을 다 보았는데, 그때 보았던 환자분들의 생각이 지금도 종종 나곤 한다. 간혹 총 맞고 오신 분들 중에 주머니에 돈다발이 한가득 들어있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분들은 백중백발 약거래상분들이시다(약을 카드로 살 것 같진 않죠...?ㅎㅎ). 총 맞고 피가 펑펑 터져서 당장 수술방으로 가야 하는데 비닐봉지로 둥둥 말은 돈다발을 생명줄처럼 부여잡고 절대 놓지 않아서,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너 죽는다고. 이 돈 누가 안 뺏어가고, 우리가 안전히 보관해 뒀다 너 수술 끝나면 돌려줄 테니 제발 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던 환자분이 생각난다.
응급의학과 교수를 할 때는 마약 중독 디톡스(마약 중독 수준의 환자분이 어느 날 갑자기 마약을 끊으면 금단 현상이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서서히 의료진의 관찰 하에 조금씩 줄여야 한다) 받으러 온 환자가 디톡스 프로그램을 갈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지를 스크리닝 하는 게 내 일 중의 하나였는데(우리 병원에서는 이런 일은 별로 교육적 가치가 없다고 레지던트 안 시키고 교수가 직접 봤다) 그러면 정말 뉴욕 거리의 그 수많은 중독자분들을 다 만나게 된다. 그중 하나 기억나는 중년 남자분은, 정말 그 눈을 보면 영혼이고 뭐고 깡그리 다 죽어버리고 텅 빈 채, 약에 쩌든 몸 껍질만 남아있는 것 같은, 그 공허한 눈빛을 보고 나니 나조차 마음이 서늘~해지던 그런 분이었다. 그 외에도 응급실에 오만 꾀병을 부리며 와서 결국은 마약성 진통제를 요구하는 환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 역시 뉴욕 응급실의 주요 일과 중에 하나다. 간혹 그런 환자 중 몇 분은 '사람이 약 한 번 맞으려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나의 인간에 대한 신뢰심을 갉아 드시던 분들도 계셨다.
최근 몇 년 간 미국에서는 마약 오남용 위기가 공중보건 최대 화두 중에 한 가지인데, Purdue라는 옥시콘틴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만든 회사가 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 몇 줄로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요는 이 회사가 각종 윤리에 어긋나는 방법들을 사용하여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을 지나치게 장려하고 그로 인해 옥시콘틴이 미국 전역을 타고 번져나가면서 이전에는 마약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던- 미국도 예전에는 북동부와 서부의 해안가 중심으로 뉴욕, 엘에이와 같은 대도시에서 갱 집단을 통해서 마약이 유통되었다- 중부와 남부의 소도시들을 강타하여 현재와 같은 전국 규모의 마약 중독 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때마침 침체한 미국의 제조업 경기로 공장이 밀집한 지역에서 발생한 대량의 실업자들을 중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이들의 메디케이드(미국의 의료 보호 제도)를 악용하여 Pill mill(약 공장-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이 주 수입원인 병원)이 양산되는 등 수많은 사회 문제가 야기되기까지, 그리고 그 기회를 멕시코의 깡시골에서 시작된 헤로인 조직이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를 드림랜드라는 책에서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두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https://www.amazon.com/Dreamland-True-Americas-Opiate-Epidemic-ebook/dp/B00U19DTS0
나는 드림랜드의 작가 샘 퀴노네스처럼 열정이 넘치지도 않고, 이 문제의 사회적인 영향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현장에서 환자들을 보는 한 사람의 의사로서 느낀 것은 중독은 정.말.로 심각하고 무서운 문제다. 흔히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민 분들은 나랑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뉴욕의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그 단편을 조금이나마 보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중독은 나와는 관련이 없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약물 관련 문제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다 누군가의 아빠 혹은 엄마이며,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 조금씩 듣다 보면, 나랑은 전혀 다른 딴 세상 사람 같기만 하던 그 사람도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추수감사절 주말, 밀린 신문을 읽다 맥킨지 컨설팅 회사가 Purdue에게 옥시콘틴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마약중독으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약국 체인에 리베이트를 주는 것을 제시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https://www.nytimes.com/2020/11/27/business/mckinsey-purdue-oxycontin-opioids.html. 이런 제안을 한 사람도 마약 중독으로 사람이 죽는 것은 본인과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이인화하고, 물량화하면서 이건 좀 아닌데... 싶은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을까? 양극화로 여러 논란이 일고 있는 미국 사회이지만 다시 한 번 그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