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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May 23. 2021

의사들 왜 그렇게 싸늘한지.

10년 전 그 날, 브롱스의 총 맞은 아이와 나

권순욱 감독의 안타까운 암투병 소식을 접하면서,  

'의사들 왜 그렇게 싸늘한지...' 하면서 환자의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한다는 의사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사를 읽다 문득 옛날 옛적 레지던트 때 생각이 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올라, 때는 내가 브롱스에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를 할 때의 일이다.

내가 일하던 병원은 브롱스 남쪽의 Mott Haven이라는 뉴욕에서도 무시무시한 빈민가에 있는 레벨 1 외상 센터. 영화 조커에 나오는 조커가 사는 동네 분위기라고 하면 실감이 날까...? 그 유명한 조커 계단이 사실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조커 계단-  하이브리지, 브롱스

    

그곳에서 일하는 3년 동안 나는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외상의 종류는 거의 다 보았는데, 오늘 이야기하려는 케이스는 형을 찾아온 동내 갱단이 쏜 총을 맞고 실려왔던 꼬마 아이다.


  어느 날 저녁, 누가 문을 쾅쾅 두드려서 누구인가~ 문구멍으로 빼꼼~ 내다보다 얼굴에 그대로 총을 맞고 온 우리 소년은 보호자도 없고 아무도 없이 급하게 혼자 덜렁 구급차에 실려왔다. 총 맞아 얼굴에 피 철철 나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CT 찍고 외상팀 우르르 뛰어다니고 하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 엄마 아빠도 없이 그 어린아이가 혼자서 겁에 질려서,  나 죽는 거냐고, 두리번두리번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속으로 총알이 문을 뚫으면서 살짝 비껴가 다행히 광대뼈 부위로 맞아서 주요 장기를 다치지는 않아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고 있었지만 그런 나의 의학적 판단에 자신도 별로 없고, 왠지 뭔가 확실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긍정적으로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방어적 자세에 사로잡힌 데다, 지금도 철이 없지만 그때는 더더욱 철이 없던 20대라 인생 경험도 없어 사람의 마음을 만져줄 줄도 몰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옆에서 쭈볏쭈볏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다 그냥 손만 꼭 잡아 주었다.


 내가 그렇게 뚱하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뭇머뭇 멋쩍게 서 있던 그때, 내 옆에 있던 의대생이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 주면서,


"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


그 순간,

왜 나는 그 간단한 말 한마디 해 줄 수가 없었을까...  하는 부끄러움에 휩싸이면서 그렇게 나 자신이 한심하고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근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순간이,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정말 그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멀뚱히 있을 수밖에 없었더랬다.


     그리고 이제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인 완화의학 의사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그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는가를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의사들에게는 환자를 대할 때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에 기반하여 의사소통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인데, 꼭 그렇지많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환자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을 표현할 때, 환자도 이 의사가 자기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거기에서 진정한 rapport( 환자 의사 관계)가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같이 의사결정을 진행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물론 이것 역시, 상황과 과와 환자와 의사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기 때문에 일반화하여 적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게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하면서 직설적이고 말 짧게 하기 화법으로 유명한 나도 우리 교수님의 칭찬을 먹으면서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젊은 나이에 말기암 진단받은 권 감독의 심정은 어떠할까.

의사도 사람이라 실수하고,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리고 내 환자에게는 뭐라도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시점이 오면 자신에 대한 화와 그 상황에 대한 절망을 환자에게 전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집단은 원래 그렇게 말주변이 좋은 집단은 아니라 본심을 오해받기도 쉽다. 나는 얼마 전 환자분에게 연휴 어떻게 보내셨어요? 했다가 "아니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낭떠러지를 걷는 것처럼 힘든데 어떻게 그런 걸 물을 수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록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었지만, 나는 환자분 걱정하는 마음에서 건네 본 말이었다.  


10년 전 그 꼬마는 알았을까.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어리버리 서 있던 그 외국인 의사가 속으로 그 조그만 아이가 아프고 무서워서 발발 떠는 게 너무 안 되어서 얼마나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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