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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Aug 11. 2021

마약 이야기 2.

슬기로운 뉴욕의사의 조곤조곤 뉴욕 응급실 이야기

    환자의 마음을 만져주는 일이 주가 되는 완화의학 트레이닝을 마치고 다시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응급의학과 의사의 옷을 입고 잠시 일하던 어느 날, 시끌벅적 시장바닥 같은 응급실에서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던 와중에 접수대에서 간호사가 와서 나를 찾았다.  보통 이럴 때는 환자분이 진료 거부를 하거나 뭔가 까다로운 요구를 할 때인데, 가 보았더니 역시나 911(한국의 119)에 실려온 환자분이 진료 보지 않고 집에 가겠다고 하고 계셨다.


 " 환자분, 무슨 일이세요?"


    이렇게 물어볼 때 차근차근 본인의 병력을 잘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자꾸 나 괜찮다는 말씀만 하시길래 다행히 아직 옆에 안 가고 있던 환자분을 싣고 온 구급대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신고받고 출동했더니 길에 정신 잃고 쓰러져서 누워 계셔서 날록손(아편 길항제. 마약성 진통제의 효과를 일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약으로 주로 마약성 진통제 남용으로 의식저하 및 호흡저하가 온 분들에게 사용하는데 효과가 짧기 때문에 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줬더니 깨어나셨는데 이렇게 치료 안 받겠다고 하시고 계시단다. 옆에 듣고 계시던 우리 환자분, 친구들이랑 뭘 좀 했는데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깨어나 보니 자동차 밑이고 지금은 괜찮다고. 전에도 이런 적 있다고 괜찮으니 집에 갈 거라고 하신다. 팔에는 주삿바늘 자국도 좀 있으시고.


" 환자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전에도 이런 일 있었던 것 잘 알겠고 괜찮으실 거라고 생각하는 거 저도 이해는 하는데, 환자분 맞고 깨어나신 그 약은 효과가 짧기 때문에 조금 있다 다시 호흡저하 오실 가능성이 있어서 저희가 좀 더 관찰을 해야 합니다. 특히나 환자분 같이 약물 관련 경우는 심신상실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진료 거부하시면 저희가 물리적인 힘을 써서라도 환자분 끌고 들어가야 하니 협조해 주세요. 그러면 저도 빨리 최대한 진행하겠습니다. "


옆에서 구급대원 총각 #1,

"그러니까, 이렇게 실랑이하는 시간에 접수했으면 벌써 들어가고 남았잖아요~"

하면서 거들어 주시고.


    다행히 이 분, 그 정도의 이성은 남아있는 분이셔서 순순히 접수하겠다고 하셔서 접수 간호사에게 넘기고 내 자리로 돌아와 좀 더 찬찬히 차트 리뷰를 해 보았더니 이 분, 췌장암 3기로 항암치료받고 계시는 분이셨다. 암 환자 중 중독 환자분들은 암 하나 만으로도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가 중독 문제가 겹치면서 더욱더 복잡해져서 웬만한 의사들은 관여하기 두려워하는 케이스가 되어 본의 아니게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환자분, 차트 리뷰해 보니까 췌장암 진단받으셨던데 치료는 받고 계세요?'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고 계신단다.


    원래 응급의학과 의사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직접적으로 진료에 도움 되는 말 아니면 안 하기로 유명한데, 왠지 환자분의 인생의 고뇌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 괜히 자꾸 뭘 더 물어보고 싶어 졌다. 이 분, 삶도 꽤나 고단하셨을 텐데. 그런데 완화의학 의사의 옷을 입고는 술술 잘 나오던 질문들이, 응급의학과 의사의 옷을 입었을 때는 뭔가 어색하다. 그리고 환자와의 거리도 확~ 더 멀게 느껴진다.


    뉴욕에서 저소득층 이민자로 살아오신 그분의 인생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중 암 진단을 받으시고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항암 치료받으시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마약으로 손을 뻗치신 걸까? 이 분께 지금 제일 필요한 건 어떤 것일까? 내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는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내 안에 있었지만 이상하게 뭔가 어색한 것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환자분,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중독으로 먼저 돌아가실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라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그분의 관찰 시간이 끝나기 전에 내 쉬프트는 끝이 났고 나는 응급실을 떠났다.





     완화의학 수련을 받고 일어난 내 안의 변화는 표면에 드러나는 의학적 문제보다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예전 같으면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자잘한 의학 외적인 요소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는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사시는지, 환자분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건지 등등. 그래서 환자 한 분 한 분을 총체적으로 알게 되면 거기에 좀 더 적합한 케어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의료 시스템은, 특히나 응급의학과에서는 그런 의사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힘이 든다.

  

    어떤 완화의학 의사분께서 완화의학 트레이닝을 받고 나면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은 의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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