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응급의학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올해로 미국 응급의학 전문의가 된 지 10년째다. 내 응급의학 인생은 뉴욕에서 시작하여 뉴욕에서 꽃이 피고 지금도 나름 현재 진행형이긴 하지만, 1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시간을 맞아 한 번쯤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미국 레지던트 지원을 할 당시 막연히 '아, 뉴욕에서 응급의학과 하면 정말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그냥 뉴욕이 좋았다. 당시에는 한국 출신으로 미국 응급의학과에 합격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불러만 주면 미국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생각으로 미 전역을 누볐는데 정말 뉴욕에서, 그것도 미국 전체에서 바쁘기로 손꼽히는 엄청난 레벨 1 외상센터에 매치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뉴욕을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뉴욕만큼 나한테 잘 맞는 곳도 없더라. 사람의 직관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Also,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따뜻한 남쪽나라 앨라배마에서 인턴을 하고 갓 도착한 뉴욕의 응급실은 원래가 압력솥 같이 텐션이 넘치는 뉴욕에서도 평균 압력이 7배는 더 높은 곳이었다. 항상 환자들이 넘쳐서 대기실을 빽빽이 채워 대기 시간이 기본 3~4시간이었던 곳이라 모두들 손대면 뻥~ 하고 터질 것 같은 화를 안은 폭탄들이었다. 한국에서도 응급실 폭력난동이 문제이지만 뉴욕 빈민가의 환자들은 정말 무섭다. 한 번은 한 환자랑 우리 선배가 싸움이 붙어서 환자가 의자로 의사들 스테이션을 다 때려 부수고 경찰에 끌려 나가면서 그 선배에게 "너 밤길 조심해~ "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그 선배는 그날로 머리를 밀어버렸다. 그래서 뉴욕 응급실에는 항상 경찰들이 상주하고 있다. 우리끼리 정글이라고 부르던 그곳에서, 나는 정말 나의 20대를 불태워 열심히 일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환자 얼굴만 봐도 대략 각이 나오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었고 다음과 같은 점들을 배웠다.
하나, 웬만한 일에는 초연한 득도인의 자세를 얻게 되었다
눈앞에서 칼 맞고 총 맞은 사람이 죽어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나는 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유치환 님의 바위 중)가 된다. 그와 함께 얻은 엄청난 문제 해결 능력은 덤. 나는 지금도 자신감이 없어질 때면 내가 살아남은 정글, 뉴욕의 응급실을 떠올린다. 그러면 바닥이 드러난 나의 자신감 바다에 다시금 일렁이는 파도가 치며 자신감이 퐁퐁 샘물처럼 솟아난다. 하지만 인생은 이런 스펙터클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되려 잔잔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의 연속일 경우가 더 많아서 감정의 스케일을 조금 조정해야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완화의학을 하면서 이 부분이 많이 달라졌다.
둘, 인생의 불확실성을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불확실의 연속이다. 그런 우리 인생처럼 의료 시스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그때까지 주어진 정보로 빨리, 좋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각종 검사와 병력을 주우욱 모아 천천히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리는 그런 럭셔리함이 응급의학과에는 없다. 제한된 정보로 최선의, 혹은 차악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까지 최대한 정보를 많이 긁어모아야 하는 정보 수집력과 그 정보의 바다에서 꼭 필요한 옥석을 분별해 낼 수 있는 매의 눈,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그때그때 맞는 또 다른 최선의 결정으로 바꿔야 하는 순발력은 나에게 인생이라는 거친 파도 사이를 유연하게 서핑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었다.
셋,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세상 모두가 나 같은 줄 알고 내 상식이 네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살던 내가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 뉴욕에서도 인간의 민낯 중의 민낯을 보게 되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마약 장수에서부터 가정폭력/아동학대 피해자, 직업여성분들과 그 포주, 정말 비행기에서 갓 내린 듯한 이민자 등등 각양 각계의 사람들을 접하고 그분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나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건 사실 위 두 가지 보다 더 소중한 교훈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지경이 넓어지느라 겪은 성장통도 만만치 않지만 비교적 곱게 자란 그냥 공부 좀 잘하는 평범한 아이였던 나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었다.
평범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꽤 오래전부터 나와 같은 삶의 궤적을 걸어온 사람이 없는 길을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럼 내 삶은 평범하지 않은 걸까. 한국에서 내가 타고 있던 버스를 계속 타고 있었으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을 겪고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그렇게 깔끔하고 세련된 대한민국 버스 대신 때로는 트럭 개조 버스 타고 때로는 럭셔리 리무진 타고 하나 둘 주워 담아둔, 그때는 사느라 바빠서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 이제는 좀 나눠볼 수 있을까.
그리고 진짜 내 자리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