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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Feb 19. 2016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하루의 끝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흘러갔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사무실의 불을 끄고 어떠한 무게 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선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아무것도 아닌 생각들은 탁한 안개가 되어 발 앞에 흩어진다. 탁한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남아있는 잡념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한 걸음에 흩어지고 무뎌진 나를 그러모은다.

 내 이름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나의 꿈은, 내 희망은, 나의 슬픔은, 나의 두려움은, 나는, 나는, 나는.

 따뜻한 가로등 아래를 지나며 조금씩 부풀어가는 내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렇게 다시 나를 쌓아가는 과정은 서글프고, 처연하다.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말한다. 비어있는 도로를 한 줄기 빛이 되어 쏘아진다. 이리저리 덜컹거리는 대로 몸을 맡긴다. 으르렁거리는 엔진은 힘이 넘친다. 신호에 멈췄다가 튀어 나갈 때 마다 몸이 시트에 파묻힌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그저 이끌려 갈 뿐이다. 나는 시속 120km의 빛이다. 반짝이는 조각으로 부서지며 하늘로 떠오르는 한 줄기 빛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이제 누구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탁한 안개와 부딪혀 타버리며 희미해지는 것도, 작은 빛이 되어 지평선으로 넘어가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밤은 깊어가고 아무런 말이 없다.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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